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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 위치한 '염경선의 령'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 위치한 '염경선의 령'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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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5.18민주묘지에 안치된 5.18관련자들의 묘비 뒷면에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남긴 글귀가 있다. 한 5.18행방불명자의 묘비에는 "무등을 오르는 사람들이 너의 조객들이구나. 옥환아, 이제 나오너라. 이 땅에 일어나 말하여라. 암매장된 너의 육신을 깃발처럼 흔들며 천둥번개로 말하여라"라고 새겨져 있다. 그러나 5.18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염경선씨의 묘비 뒷면에는 그 어떤 글귀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굴된 유골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염경선씨의 것으로 최근 확인된 가운데,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가 28일 이와 관련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5.18행방불명자 242명에 대한 전수조사',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기간 연장' 등을 촉구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실종돼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그러나, 5.18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는 사건으로부터 10년 뒤인 1990년에 시작됐다. 이때 시민 147명이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정부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는 근거가 비교적 명확한 39명 만을 5.18행방불명자로 인정했다. 이후 추가 접수와 심사 등을 거쳐 중복 신고를 제외한 242명에 대한 행방불명이 특정됐고, 정부는 이중 70여 명 만을 5.18행방불명자로 인정한 상태다.

정부는 광주 북구 운정동에 위치한 국립5.18민주묘지 제10묘역에 '행방불명자 묘역'을 조성해 5.18행방불명자들을 추모하고 있으며, 해당 묘역에는 봉분 없이 비석들만이 늘어서 있다. 1957년 5월 6일에 태어나, 1980년 5월 24일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염경선씨는 5.18 당시 고향인 화순과 광주를 오가며 광주 충장로의 한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묘지번호는 '행방불명자 묘역 10-22'이며, 해당 위치에 세워진 비석에는 '염경선의 령'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3공수여단 11대대 신순용 소령이 시민 3명을 사살한 후 광주교도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양심선언한 일이 있었다"며 "이번에 DNA 조사를 통해 암매장 사실이 확인된 염경선씨 외에도 다른 두 분 유골의 5.18 관련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조사하고 확인해야 할 사안이 많다. 5.18행방불명자 분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려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기간은 당연히 연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7년, 5.18 당시 광주교도소 앞에서 사살된 시민 3명을 직접 암매장했다고 양심선언한 신순용 소령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5.18 당시 야전삽으로 파묻은 학생이 지금도 떠오른다"고 밝힌 바 있다.
 
 28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8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김동규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 ⓒ 김동규

황일봉 회장은 "지난 42년간 전두환, 노태우 등 반란군부 측이 펼쳐온 주장이 거짓으로 확인됐다"며 "그들은 그동안 반란군에 의한 헬기사격이나 암매장 등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DNA 검출 등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5.18 관련성이 깊어 보이는 행방불명자 242명에 대한 DNA 전수조사가 많은 인력과 장비를 통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가족의 실종 사실을 밝혔으나 가족이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나 미처 신고조차 하지 못한 분들을 대상으로 오늘부터 5.18 행방불명 관련 신고를 접수받고자 한다"며 "접수된 내용은 즉시 5.18진상조사위와 범정부 합동수사단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며 "이를 통해 6.25전쟁 당시 있었던 양민학살이나 여순사건, 4.3사건 등의 억울함들도 정의롭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최승철씨는 "5.18 당시 아버지가 실종된 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예순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자식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하고 아버님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꼭 찾을 수 있게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고문인 강길조 교도소생존자협의회장은 "5.18 당시 광주교도소 가마니 창고에서 매일 고문 끝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5월 27일 직전에는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교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군인들이 부상당한 사람들만 데리고 들어왔다"며 "밖에서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매일 헬리콥터가 오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보안이 잘 되어 있는 군 관련 시설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이제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고 있으니 당시 지휘관들이나 장병들을 조사해서 행방불명자 분들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1800여 명을 조사한 5.18진상조사위는 계엄군의 시민 암매장은 사실이라고 결론지었다. 암매장에 참여한 군인 3명은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1982년부터 1985년 사이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5.18 암매장 관련 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5.18민주화운동#5.18 실종자#국립5.18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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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일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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