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9일 오후 8시 정각,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재심판정 결과를 기다리는 회의실엔 정적만이 가득했다. 자동 전송 문자가 와야 할 시간이 2분 가까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자 긴장은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혹시라도 인터넷 접속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대화가 오간 순간, 필자의 스마트폰 화면에 드디어 문자가 도착했다.
모든 이의 시선이 필자의 손끝에 집중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자를 열어본 필자가 꺼낸 첫마디, "맥주 한 잔 하실래요?" 바라던 결과가 나오면 맥주로 축배를, 반대로 진다면 소주로 서로를 위로하고자 했던 것. 모두가 환호성과 울음을 터트렸다.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처음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마산MBC 방송작가들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라는 법률상 지위를 확인받기 위해 법원에서 다투다가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지 20년 만이었다.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중노위에서 최초로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야 할 근로자'임을 확인받은 두 명의 작가는문화방송 보도국에서 10년 가까이 동일한 코너의 원고를 작성했다. 일주일에 5~6일 매일 새벽 3시 반에 방송국에 출근해 생방송을 준비하고, 처음 입사할 때 계약상 정한 업무 외에도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시키는 부수적인 업무까지도맡아야 했다. 그러나 초심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작가는 노동자가 아니라 창작자'라는 견고한 도식에 갇혀 간단히 이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작가가 근로자로 인정받은 선례가 없죠?", "(수정 지시를 받더라도) 결국 대본을 쓰는 행위는 작가들이 하는 것 맞죠?", "프리랜서 계약서의 내용을 다 읽어보고 동의한 것 아닌가요?" 지방노동위원회는 심문회의에서, 작가들이 수행했던 업무 실질을 상세히 살피는 대신 '작가는 당연히 프리랜서'라는 고정관념을 재확인하기 위한 형식적 질문에 급급했다.
문화방송 초심에서 등장한 질문들은 방송 제작 현장에서도 수십 년간 상식처럼 여겨졌던 것들이다. '작가는 원래부터 프리랜서'라는 도식은 유연한 인력 운용과 제작비 절감을 위해 사용자인 방송국이 만든 것일 뿐 실제 다수의 작가는 사용자에게 종속된 '근로자'로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긴 세월 '작가는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연차휴가가 부여되지 않고, 4대 보험 가입대상이 아닌 자'로 위장되었다. 그 허울을 부수는 데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막상 '선례'가 만들어지자 작가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인정 사례는 속속 이어졌다. 문화방송 작가들에 대한 판정 이후 지역 작가 사례로는 처음으로 전주KBS 보도국 생방송 시사토론 프로그램 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었다.
전주KBS 작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전북지방노동위원회는 문화방송작가들의 선례에 힘입어 더욱 전향적인 판단을 내렸다. 심문회의에서는 형식적 질문을 모두 생략하면서, '더 이상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대법원 판례의 부수적 요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무려 71쪽에 달하는 방대한 판정문에서 두드러진 가장 선명한 문구 중 하나는 "신청인이 용역계약의 당사자라기보다는 소속 팀원 내지 부하직원으로 취급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였다. 서울 본사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지역 방송국 작가가 사용자에게 강력히 종속되어 일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문장이었다.
노동자들의 법률 대응으로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이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면서 고용노동부도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노동부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근로감독이 시작된 지 70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 3사에 대한 동시 근로감독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보도·시사교양 분야 작가 152명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이후에도 법률 대응의 성과는 계속 축적되었다. 비단 작가 직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 2년간 방송 제작 현장 '무늬만 프리랜서들'의 법률 대응 성과를 보면서 그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떠올려 본다. 문화방송 사례를 시작으로 적지 않은 이들이 용기를 냈고, 법원·노동위의 판단 기준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상식적인 방향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독립되어 재량껏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어느 날 방송 제작 현장을 방문한다면 과연 그 속에서 누가 정규직 노동자이고, 누가 프리랜서 또는 도급 사업자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방송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방송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해, 최종 결정권한을 쥔 PD의 지시에 따라, 방송 편성 일정에 맞춰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일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용자가 '프리랜서', 혹은 '위탁·도급·용역 계약서'로 위장하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다. 방송 제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동자성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문과 노동위원회의 판정문 등에 매번 '방송 제작업의 특수성'이라는 공통된 문장이 새겨지는 이유다.
또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잇따른 노동자들의 승소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비정규직을 향한 방송국의 무책임한 태도다. 그동안 상시지속적 업무에 비정규직을 남용해온 방송사들은 법적인 문제 제기 때마다 '선례가 없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제 선례는 쌓이고 있지만 여전히 지상파방송사들은 제작 인력의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 법률 사건의 결과에 대해 편법적인 대응으로 일관한다.
그렇다보니 힘겨운 법률 투쟁 이후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로서' 원직 복직하는 노동자들은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법원·노동 위에서 법적으로는 근로자로 판명된 이후에도 '작가들을 절대로 정규직 직군으로는 받아들일 수없다'고 공언하는 사용자에 맞서기 위해서다.
실제로 방송사들은 작가들의 복귀 이후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 정규직과의 차별을 공고히 하고, 기존 고정석을 없애고, 패소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이상의 사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방송 제작 현장의 법률 투쟁은 이제 시작이지만, 그에 맞선 사용자들의 대응은 한층 노골적으로 진화 중이다. 법률 대응은 또 다른 법률 대응을 낳고, 그 과정에서 다수는 포기하고 다수는 냉소한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방송 비정규직 토론회'에서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을 마주했다. 현장 증언자로 무려 6인의 비정규 노동자가 참석한 것. 오랜 기간 숨죽이며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던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사용자들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대응에 맞서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바닥'의 비정상을 바로잡을 주체는 노동자일 것이다. 그 거대한 저항의 물결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비록 어렵더라도, 한참을 돌아가더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다수가 상식이 무엇인지 이미 알게 된 이상 이 싸움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 노무사가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12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