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말] |
"길 가다 교통사고 당했다고 생각하세요.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마시고요."
2018년 여름, 대형 정신병원에서 조현병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증상이 호전되어 2019년에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가게 된 뒤에도, 저는 제가 잘못해서 정신질환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제 발병에 유전적 요인이 없었기에 전부 제 잘못 때문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위의 말을 했을 때 발병의 책임이 저에게 있다는 죄책감이 상당히 사라졌어요. 몇 년 뒤 조현정동장애(조현병+우울증)로 진단받았을 때 즈음에는 마침내 탓하기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진 후에도 여전히 억울함이 마음 구석에 남아있긴 했습니다. 발병이 정말 교통사고와 같다면 잘못 운전한 누군가를 탓할 수 있으니까요. 조현병의 증상이 뇌의 화학물질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니까, 결국 불행의 근원이 나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돌아왔어요. 내가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야, 내 뇌가 이상해서 그런 거야, 전부 내가 문제야, 라면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내게 이런 '나쁜' 일이 생긴 걸까?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열이 난다고 아픈 척을 자주 했습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잘못이라는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조현병으로 진단받고 나니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전부 내 탓 같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괜히 어릴 때 꾀병을 많이 부려서 벌 받았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다 큰 어른들도 회사 가기 싫다고 병가 내고 거짓말 할 때가 있는데, 어린 애가 몇 번 꾀를 부렸다고 그 업보로 정신질환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조현병을 가진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잘못이라는 건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이상한 일이죠. 다른 질환을 가지면 보통 자기 자신 탓을 잘 하지 않는데 말이에요. 예를 들어 감기 같은 질환은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 그 자체를 두고 잘못이라 하지는 않잖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다 질환에 대한 시각과 생각의 중심에 내가 아닌 타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스스로 질환에 대해 고찰하고 관찰하기보단, 질환에 대한 타인의 시선과 선입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대한민국 사회에서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는 살인이나 폭행 사건과 연관해 생각되곤 합니다. 뉴스와 미디어에서 말하고 보여주는 질환자들의 모습은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에요. 사람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를 보며 조현병에 걸린 게 아니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합니다. 조현병에 걸린 모든 질환자가 반드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님에도요.
저 또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비판 없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저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고통의 흔적을 역사로 만들기
이런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들을 걷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조현병에 대한 생각, 나 자신의 정신질환자로서의 정체성, 질환에 걸린 내 상태를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웠어요. 그 기간 동안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비슷한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환우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한동안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환우들의 글을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이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처음 글을 읽을 때는 나만 괴로운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어요. 일부러 부정적인 글만 골라 읽으면서 환우들의 고통과 내 고통을 비교하기도 했죠. 그러나 모든 사람의 고통은 같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느끼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있을 뿐이었지요.
남들과 나의 고통을 나란히 놓고 보면 남이 나보다 더 아프지 않아 보이기도 해 억울하고 질투심이 들기도 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순수하게 반응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지금은 그런 의도가 부질없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깁니다.
시작 동기는 좋지 않았지만, 환우들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정신질환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어요. 끝없는 투병과 반복되는 재발과 멈추지 않는 증상으로 고통받고 좌절하면서도 많은 환우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고통의 흔적 또한 역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복용하는 약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개수를 기록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도, 사회에서 소외된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존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실도요. 그 덕분에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벗겨내고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저는 가끔 환우들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면 예전의 저처럼 발병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환우들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발병은 당신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죄책감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 시기가 가능한 빨리 오기를 바라며 제 이야기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