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군경과 교전하던 중 순국한 김상옥 의사를 기리는 '일대 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이 31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행사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윤홍근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김상옥 의사는 1890년 서울 출생으로 20세에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하는 등 사회계몽ㆍ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면서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윤익중(尹益重), 신화수(申華秀), 정설교(鄭卨敎)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기관지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했다"고 밝혔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軍政署員) 김동순(金東淳)과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제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열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계획하였고,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1920년 10월 상해로 망명, 김구ㆍ이시영ㆍ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국 독립을 위한 의열투쟁 의지를 키웠다.
1922년 겨울, 의열단원으로 폭탄ㆍ권총ㆍ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안홍한(安弘翰), 오복영(吳福泳)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하여 거사 기회를 노리다가 이듬해인 1923년 1월 12일 밤, 일제 식민통치의 근간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1,000여 명의 일본 군경에 홀로 맞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뒤, 1월 22일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총탄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으셨던 김상옥 의사님의 의로운 생애는 100년의 긴 세월을 넘어, 여전히 우리 후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