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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5일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아에서 구조대와 실종자 가족이 모닥불 옆에서 몸을 데우고 있다.
 2023년 2월 15일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아에서 구조대와 실종자 가족이 모닥불 옆에서 몸을 데우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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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당신은 형제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잖아."

튀르키예가 아직은 터키로 불리던 10여 년 전. 서부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동부 도우베야짓까지 튀르키예 여러 도시를 1개월쯤 여행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형제의 나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32시간을 타야 했던 기차에서 사과와 빵을 건네던 할머니에게 "괜찮다"며 사양의 의사를 표했을 때도, 온종일 찾아 헤매던 이란 영사관 가는 길을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가면서까지 안내해준 사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을 때도, 생전 처음 만난 영감님의 집에서 식사와 홍차를 대접받았을 때도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이니 이 정도 친절과 환대에 어색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계를 73년 전으로 돌려보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동족 사이임에도 총칼을 겨눠야했던 비극의 역사가 우리 땅에서 벌어졌다. 죽음과 삶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게 전쟁이다. 무엇보다 귀한 목숨이 한순간에 동백꽃처럼 떨어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땅이었던 한국.

하지만, 튀르키예는 망설이지 않고 한국으로의 파병을 결정했다. 수많은 튀르키예 청년들이 끔찍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로 왔다. 미국, 영국, 캐나다 군인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한때 지구의 1/3을 지배했던 강위력한 군사제국 오스만 튀르크의 후손답게 튀르키예 군대는 용맹했다. '작전상 후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내장되지 않은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투가 벌어지는 최일선에서 '전진 앞으로'만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래서다. 한국전쟁 참전국 중 파병 군인 대비 전사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튀르키예다.

총탄이 쏟아지는 참혹한 전쟁터였지만, 튀르키예 군인들은 한국전쟁 와중에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만들어냈다.

전쟁 고아가 된 한국의 어린 소녀를 자신의 딸처럼 보호했던 튀르키예 군인은 눈물바람으로 이별한 지 6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소녀를 잊지 않고 온갖 노력 끝에 다시 만난다. 튀르키예와 한국이 공동 제작한 영화 <아일라>에 그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튀르키예에선 600만 명의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내가 경험한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고, 낯선 사람에게도 진심이 담긴 친절을 베푸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민족성이 어디에서 발원한 것인지는 인류학자가 아니기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바로 그 튀르키예,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70여 년 전 우리를 도왔고, 그 이후에도 제 나라를 찾아온 한국인을 환한 웃음과 따스한 손길로 반기던 튀르키예가 예상치 못한 큰 지진으로 국가 전체가 초비상 상태에 빠져 있다.

벌써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일부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인간이 일으킨 홀로코스트'였다면, 튀르키예 지진은 '자연재해가 일으킨 홀로코스트'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73년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튀르키예는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인의 핏속엔 환난상휼(患難相恤)이란 단어가 흐르고 있다. 주위의 어려움을 모른 척 눈 돌리는 건 인간만의 특성인 휴머니티를 배반하는 행위다. 바로 오늘,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이들을 힘 닿는 데까지 돕는 건 인간애의 생활 속 실천이 아닐지.
 
2023년 2월 15일 튀르키예 하타이,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2023년 2월 15일 튀르키예 하타이,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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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튀르키예 지진, #아일라, #형제의 나라, #한국전쟁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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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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