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을 비판한 기자가 고발을 당했다는 소식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이 직접 고발에 나서고, 강도 높은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권력기관의 고소고발로 인해, 고초를 겪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울러 비판 언론을 수사로 입막음 하려는 권력은 정당한가를 묻는다. [편집자말] |
윤석열 정부 들어 크게 늘어난 언론사 및 기자들에 대한 권력기관의 고소·고발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
온다. 판례를 보면 대통령실과 주요부처 등 정부기관이 명예훼손 주체로 인정받기 어려운 데다, 공익 목적의 보도는 헌법 21조에 적시된 언론 자유의 핵심 가치라는 점도 무시되고 있다.
아울러 비판적 보도에 대한 고소·고발 남발은 언론인들의 취재 활동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자유까지 침해할 여지도 있다.
판례 살펴보니... 권력기관은 훼손될 명예가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이 언론사 기자를 고소·고발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내세우는 이유는 '명예훼손'이다.
대통령실이 역술인 천공의 대통령 관저 선정 개입 의혹을 보도한 <한국일보>와 <뉴스토마토> 기자들을 집단 고발하고, 김건희 여사가 관저 선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에 대한 수사도 모두 '명예훼손' 혐의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명예훼손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법원 판례로 굳어진 사실이다. 개별적인 고위 공직자의 명예훼손도 공적 사안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법원에서 인정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대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는 광우병 보도로 한국 협상단 대표와 농림수산부 장관 등 주요 고위 공직자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고발을 강행했고, MBC에 대한 압수수색 등 떠들썩한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1년 9월, PD수첩 '광우병 보도'의 명예훼손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보도 내용이) 공직자인 피해자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악의적인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PD수첩 '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로 확인된 원칙
이 판결은 또 정부 및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원칙도 확인했다.
지난 2019년 1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PD수첩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에서도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명시됐다. 또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이 공적 인물의 공적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에 관해 매우 좁고 엄격하게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은 지난 2013년 "국정원이 무능력하다"는 내용의 신문 칼럼을 썼던 표창원 전 의원을 상대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지만, 검찰은 수사도 않고 각하 처분했다. 검찰 스스로 "수사에 착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국가기관은 명예가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 고소 자체가 불가능하고, 대통령실이나 장관 명의로 명예훼손 고소, 고발이 들어온다면 수사기관은 신속히 각하시켜야 한다"면서 "그런데 지금 정부가 고소, 고발하면 경찰이 각하를 하지 않고 지체하거나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로 인해 언론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고소·고발 남발은 언론 취재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자유도 심각하게 제약할 우려가 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측이 스토킹범이라고 고발한 <시민언론 더탐사> 기자(관련 기사 :
한동훈 장관 취재 후 무너진 신입기자의 일상),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인사의 사무실을 취재차 방문한 기자 사례(관련 기사 :
대통령 40년지기 취재한 기자, 수사·재판에 시달린 450일)가 대표적이다.
취재 위축시키는 법적 대응... "언론 감시 싫으면 공직 내려놓으면 돼"
우선 한동훈 장관 측이 문제 삼은 <더탐사> 기자의 취재 행위는 한 장관의 관용차를 3차례 추적 취재한 것이다. 3번의 취재 과정에서 해당 기자는 한 장관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고 한 장관의 거부 의사 역시 듣지 못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추적 취재는 언론사 기자라면 한번쯤 경험해본 취재 방식이다. 만약 이 취재 행위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다면 앞으로 기자들의 권력 감시 취재 영역과 방식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과거 취재를 할 때 나도 며칠씩 잠복도 하고 쓰레기통도 뒤졌다, 장관 관용차 역시 기자가 취재를 위해 따라다닐 수 있다"라며 "고위공직자가 그런 언론의 감시 활동이 불편하고 싫으면 공직을 내려놓으면 된다, 공직자들은 언론의 감시가 필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스토킹방지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볼 때 해당 취재 행위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진다"면서 "언론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인데, 이런 고발은 언론의 공적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UPI뉴스 기자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 40년 지기인 황하영 동부산업 사장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고발당했고,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해당 기자가 사무실 내부에 있는 황 사장의 집무실을 잠시 들어간 것을 주거침입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현재 1심 판결에 대한
항소가 진행 중인데, 이 판결이 확정되면 기자들이 취재를 위한 사무실 방문 등에 심각한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 일반 국민들이 회사 관계자의 동의를 얻어 사무실을 방문했음에도, 사무실 내부에 있는 일부 공간을 동의 없이 둘러보는 경우도 처벌 받을 여지가 생긴다.
박록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은 "당시 취재 상황을 놓고 봤을 때 해당 기자의 사무실 취재는 도를 넘어서는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취재 관행상 일정 부분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서 "기자의 이런 통상적인 취재까지 촘촘하게 법의 잣대로 재단을 하면서 제약을 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항소심에서 상식적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발 남용하는 권력기관, 헌법적 가치도 무시
언론사를 상대로 한 권력기관의 고소·고발전은 권력 남용의 소지도 있다. 특히 언론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돼 있는 법률적 장치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법률 조항이 형법 310조에 적힌 '위법성 조각 사유'다.
형법은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조항을 규정하고 있지만 310조를 통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공적 비판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보호 장치이자, 언론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실현하는 조항이기도 하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언론기관의 활동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위법성 조각 사유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기 때문에, 국가기관이 언론사 기사를 문제 삼아서 고소·고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국가기관이 이렇게 고소·고발에 전면으로 나서는 것은 권력 남용이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도 "현재 권력기관들이 문제 삼는 비판 보도들은 충분히 보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공적 영역에 대한 언론 비판은 위법성 조각사유를 비롯해 언론자유 보호 장치들이 법률적으로 마련돼 있다"면서 "형사 처벌에만 익숙한 검찰 출신 인사들이 이런 법적 장치들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고소·고발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남근 변호사도 "형사제도나 재판 등은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 강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이 돼야 하는 것인데, 권력기관이 언론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삼게 되면 이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정부 비판을 탄압 수단으로 법을 활용하는 것은 결코 법치주의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