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3일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검사 6명이 각각 낸 '법률안 가결 선포행위 무효 확인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점은 인정했다.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이 아니라는 것이냐'라면서 헌재를 강력히 비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결정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25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5대 4로 이뤄진 결정, 헌재의 정치성 드러나"
-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헌재가 23일 각하했는데 이 결정 어떻게 보셨어요?
"헌재의 결정은 네 가지였습니다.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의 법사위 처리 절차는 법사위원들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법률은 유효하다. 또, 법무부 장관은 검찰청법에 대한 권한 여하를 다툴 적격이 없으며, 검사들의 경우 적격은 있으나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헌법상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를 총괄적으로 평가하자면 네 개의 결론은 일반적인 헌법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반면에 모든 결정이 5대 4로 이뤄진 점은 헌법재판소의 정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 왜요?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 등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인용이 될 수 있지만, 권한쟁의 심판은 과반수 즉 5명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이 사안의 결정들이 모두 5대 4로 나뉜 것은 매우 팽팽한 견해 대립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찬성과 반대 측이 모두 자신을 지명하거나 추천한 정치분파의 이해관계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이 5대 4라는 의견분포는 청구인 측이든, 피청구인 측이든 완승, 완패가 아니라 나름의 정치적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합니다. 양쪽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숫자라는 것이지요. 즉 헌법재판소가 객관적으로 헌법 이론이나 법리에 따랐다기보다는 자신이 속해야 하는 정파적인 이해관계나 현재 정세의 추이를 감안하면서 판단했다는 느낌 주게 됩니다."
- 헌재가 헌법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건 문제 아닌가요?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합니다. 사실 이상적만으로 보면 순수하게 법이론에 따라 판단하는 게 맞다고 하겠습니다만, 사법 행태 주의의 지적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재판관들이 이렇게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나름의 정치적 성향이 법 판단, 특히 헌법 판단에 스며 나오기 마련이었습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설치된 초기부터 그런 성향을 두드러지게 보여왔습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충돌이 있는 사안에 대해 7대 2의 결정을 내린 경우가 많았던 것도, 대통령 지명 3명,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의 추천 3명, 그리고 국회 추천분 중 여당몫 1명이 일관되게 정부 측 입장에 충실한 의견을 내면서 7명이라는 다수의견을 구성해 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이 옳으냐 그르냐의 판단은 일시 접어두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여태까지 정치적인 판단을 해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 결정에 대해서 유독 헌재가 정치화됐다고 문제 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헌재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의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국민의힘에서는 재판관 5명이 우리법연구회나 민변 소속이라며 재판관들 성향을 문제 삼는데.
"그렇게 보면 나머지 재판관 4명은 '우리법연구회나 민변 출신이 아닌 사람'이라 꼬집을 수 있을 겁니다. 재판관이 어떤 집단 출신이나 소속인지는 재판관이나 법관의 판단을 설명하는 하나의 변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경력의 소유 여부가 판결이나 법적 판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판단을 할 소지가 있는 사람이 그런 집단에 소속되거나 그런 경력을 구축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실제 미국의 연방 법관들도 외형적으로는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의 정치 성향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헌재가 나름의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즉 대통령 셋, 대법원장 셋, 국회 셋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게 한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이상점이지요. 저는 이 시스템이 결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나마 순기능을 찾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굳이 우리법연구회니, 뭐니 말하는 것은 갈라치기 해서 진영논리에 파묻어버리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오는 행태라고 보입니다."
"이번 사안, 우리 정치의 후진성 단적으로 보여줘"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 표결권이 침해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법안 자체가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했죠. 2009년 미디어법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온 것으로 기억해요.
"헌재가 입법권을 존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법의 세계에서는 통상 실체법의 영역과 절차법의 영역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절차적인 하자가 있어도 그것이 너무나 중대하지 않은 한 법의 실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헌재가 2009년에 당시 한나라당이 주도했던 소위 미디어법 사태에서 입법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보면서도 그 법률들은 합헌이라고 판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항간에서는 '술을 마셨는데 음주운전이 아니다'라는 식의 비난을 하죠. 술 마시고 운전한 건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혈중알코올농도 0.003%라는 기준을 넘어서지 않는 한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헌재는 이런 논리를 사용한 것입니다."
- 과정도 중요하잖아요.
"당연히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과 그 과정이 잘못됐기 때문에 헌재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의결한 법률을 언제든지 무효로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국회가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이 비판하고 또 그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헌재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국민 사과는 물론 편법적인 운영을 한 당시의 법사위원장이나 또는 관련된 의원들은 나름의 책임을 질 필요가 있습니다."
- 입법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지만, 입법을 무효할 만큼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하자는 있었지만, 법률을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는 아니었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 하자의 중대성 여부를 판단할 때, 9명의 비선출직 재판관으로 구성되는 헌재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된 국회가 스스로 선택한 절차에 따라 입법한 법률을 무효로 선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숙고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가 고민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저는 헌재의 판단에 손 들어 주고자 합니다. 헌재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그리고 민주주의 원칙상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결정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되는 거죠."
- 그럼, 이 문제를 헌재로 갖고 간 게 잘못인가요?
"사실 '정치의 사법화'라는 비아냥도 있는데요. 이번 일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법률안의 발의에서부터 입법 과정 그리고 입법된 결과에서 나아가 시행령 통치라는 반법치의 극단적 사례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보면 우리 사회에 정치라는 것이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사회적인 갈등이나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고 처리하는 정치의 장이 아예 없어 보이거든요.
검찰 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정치 과정이 제대로 소화하거나 처리하지 못 했습니다. 그냥 분파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그때그때 정략적 필요에 따라서 처리하다 보니 날치기 통과에서부터 시행령 통치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헌재는 이런 정치의 후진성·파행성을 뒤처리하는 쓰레기통이 돼 버렸고요."
- 그럼, 시행령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세요?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검찰의 수사 범위는 국회의 전속 관할입니다. 문제는 국회가 그 세부적인 판단 자체를 포기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개정된 검찰청법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만 표기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검찰 수사권을 제한하겠다고 해놓고 정작 법률에서는 수사권의 실질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에다 위임해버린 겁니다.
더구나 입법 과정에서도 '등'으로 할 것이냐 '중'으로 할 것이냐를 다투다가 결국 '등'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런 파동을 거치다 보니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무한한 권한을 주장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지요. 권한의 제한 대상이어야 하는 검찰이 권한 행사의 범위를 정하게 되는 정말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 시행령 통치의 첫 번째 잘못은 입법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회에 있다고 봅니다."
- 입법을 잘못한 건가요?
"그렇죠, 제대로 하려면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 다음 각호에 열거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각 호에 무슨 무슨 범죄, 어떤 법률 위반 범죄 등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했어야 합니다.
근데 국회가 무책임하게 세부적인 내용을 그냥 대통령령에 위임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대통령과 검찰은 얼씨구나 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정해버렸습니다. 이 점에서 이번 헌재 결정은 이런 입법상의 하자들을 바로잡으라는 명령이라고 봐야 합니다.
원래 이 법률들을 개정하면서 국회가 약속한 게 하나 있습니다. 사법개혁 특위를 만들어서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이에 따라 형사사법 제도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위원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 협조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여태까지 회의 한 번 안 한 채 1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민주당의 직무 유기 내지는 무책임에 해당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특위를 제대로 가동해야 합니다."
- 헌재가 민형배 의원 위장 탈당을 지적했죠, 하지만 민주당은 그게 위장 탈당 아니라고 주장하는데요.
"위장 탈당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아직도 복당을 안 시켰고 또 그것을 금지하는 법 규정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방식은 국회 안건 조정절차를 무력화시키는 편법이었습니다. 그것이 비판받는 것이지요. 안건조정위원회의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소수 정파에 발언의 기회를 부여해 제대로 된 안건토의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민형배 의원의 탈당 전술은 다수 정파가 소수 정파의 입을 막아버린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구체적인 법조문은 위반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대의제 또는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하는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핵심 이념을 침해하였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다수자의 의사가 만능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수자의 폭력으로부터 소수 정파를 보호하여 그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준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헌재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 민주당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보세요?
"저는 민주당이 진지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당의 사과와 한동훈 장관의 사과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국회가 만든 법률이 제대로 집행될 것을 보증하는 최전선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한동훈 장관의 경우 국회가 만든 법률을 성실하게 집행하기는커녕 검찰의 편에 서서 검찰의 이익을 위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법의 해석을 그르치면서까지요.
정부 부서 중에서 헌법을 해석하는 제1차 기관이어야 할 법무부장관이 정파적인 헌법 해석에 따라 국회의 입법을 부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헌재 결정은 이런 법무부 장관의 행태가 말이 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 점에서 한동훈 장관도 사과하고 또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자가 얽혀 있습니다. 민주당이 사과하지 않으면 한동훈 장관도 사과하지 아니할 명분이 생기는 거죠."
- 한동훈 장관은 헌재 결정에 대해 공감 못 하겠다고 하는데.
"법무부장관이 할 말은 아닙니다. 법무부 장관은 헌재의 결정을 가장 성실하게 집행해야 할 책무를 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한동훈 장관은 공감할 수 없다고 반발하였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헌재 결정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은 그것을 존중하고 집행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불만이 있다면 장관의 자리가 아니라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는 정부의 차원에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입법권자인 국회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한동훈이라는 일개 장관이 헌법재판소와 같은 헌법기관의 결정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헌법 질서를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 그럼, 탄핵 사유가 되나요?
"좀 더 두고 봐야 되겠지요. 이렇게 헌재의 결정을 정면에서 부정하면서 계속 반발하는 행동을 한다면 탄핵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수준에서는 탄핵을 말할 것이 아니라, 법무부장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촉구하고 감시하는 것이 먼저일 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