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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텔레비전은 사용하지 않는 고가 제품이 됐다. 십수 년을 보지 않고 벽에 걸려 있던 것을 최근 이사하면서 처분했다. 수천 원가량 시청료도 내지 않고 집도 한결 더 넓어진 기분이니 일거양득이다. 그런 텔레비전이 한때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식당에서 우연히 본 프로그램에 흔한 말로 마음이 갔기 때문이다. <전원일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대표 드라마 중 하나다. 1980년에 시작해 2002년에 종영됐다. '제5공화국'이란 지금 청년층에게는 생소한 용어가 사용될 때부터 '한일 월드컵'이 매듭지을 때까지 세월이다. 국내 최장수 드라마의 위엄이다.

드라마는 시대상을 아주 잘 담고 있다. 특히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니 '땅'이 주제인 경우가 많다. 더해 도시 사람들과 이질감, 그리고 농촌 생활의 버거움도 아주 잘 설명됐다.

그랬다. 1980년대 대한민국은 도시화에 가속에 붙었다. 농촌 청년들은 도시를 찾아 노동자로 삶을 살았고, 외국산 농산물도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다. 땀 흘려 수확한 쌀 한 톨 가격은 회색 콘크리트 건물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땅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에도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가격이 폭락하자 농민들은 농촌 생활에 진저리를 느끼며 땅과 함께해온 삶을 후회한다. 그러면서도 화면은 목가적 풍경으로 가득 채운다.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시대 변화와 상당히 동떨어진 농심이 절실히 느껴지기도 한다.

<전원일기> 공간적 배경은 몇 번에 걸쳐 변한 모양인데, 초기 촬영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속 양촌리인 것이다.

양주시에는 <전원일기> 촬영을 기념해 '전원일기 마을'을 꾸며 놓은 모양이다. 드라마 흐름을 보면 양촌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언제라도 서울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일정 거리 정도 수준을 유지했다.

문득 상상해봤다. 2023년 <전원일기> 속 양촌리 어떤 모습일까. 제법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서울 팽창에 맞춰 많은 이의 향수를 자극하던 풍경은 도시로 탈바꿈했을 것이다. 농업은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문인 아니면 도시농업 형식으로 명맥만 유지되고 있지 않을까.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삽자루 하나씩 들고 거닐던 좁다란 길은 신작로로 바뀌었을 것이며, 길 가장자리와 세련된 형식의 상점들이 서로 맞물려 있으며, 상점 상당수는 간판에 '부동산'이란 글귀가 적혀 있지 않을까.

지금의 경기 용인시처럼 말이다. 특히 처인구는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용인의 외딴섬인 양 개발과는 상관없는 공간처럼 보였다. 그 시절 기흥구와 수지구 발전은 급격하다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였다.

하지만 2023년 3월 처인구는 전국에서 뜨거운 곳 중 한 곳이 됐다. 반도체 사업을 시작으로 개발 호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동산 시장 열기도 상당히 뜨겁다.

이를 반기는 이도 있을 것이며, 또 극히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 풍조를 걱정하는 사람은 또 없겠는가. 그런데도 향후 용인시 처인구를 이야기 할 때 '땅'은 빠질 수 없는 '거리'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전원일기> 방영 기간은 20여 년이다. 그리고 종영된 지 다시 20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대한민국도 용인도 참 많이 변했다. 지금의 40~50대와 20대가 한자리에 모여 <전원일기>를 보면 어떤 대화를 할까. 농촌의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동네 어른인 양촌리 김 회장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땅을 팔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땅을 어디 쉽게 팔고 사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서민에게 땅은 원망의 대상이면서 또 기대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엄마 품속 같은 존재다. 그 많은 땅 누가 다 부동산으로 만들고 있나.
 
 임영조 기자
임영조 기자 ⓒ 용인시민신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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