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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포스터. (국가보훈처 제공)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포스터. (국가보훈처 제공) ⓒ 은평시민신문

한국전쟁 첫 해인 1950년 9월 22일 서울수복작전 때 녹번리 전투에서 29세 나이로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와 그의 아버지 윌리엄 얼 쇼(선교사)가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포함됐다. 영웅들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영상은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매일 680회씩 송출될 예정이며 국내에서도 전국 150여개소 전광판에서 확대 송출된다.

지난 20일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사는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에 크게 기여한 영웅들을 선정했다.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은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밴 플리트 부자,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군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이다.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된 아버지 윌리엄 얼 쇼 선교사(왼쪽)와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국가보훈처 제공)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된 아버지 윌리엄 얼 쇼 선교사(왼쪽)와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국가보훈처 제공) ⓒ 은평시민신문

이중 윌리엄 얼 쇼 선교사(1890~1967, 한국명 서위렴)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군종 목사로 자원 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종 목사제도를 도입한 인물이다.

아들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1922~1950, 서위렴 2세)는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이다. 미국의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에서 해군사관학교(해안경비대) 초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또 해방 후 한국 정부 수립 전 미 군정청(점령지 군사정치 기관)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도 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돕겠다"며 1950년 미국 해군에 재입대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 지리에 밝고 한국말을 잘했던 덕에 해군 소속 장교임에도 불구, 서울 수복작전에서 정탐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50년 9월22일 오전 정찰을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윌리엄 얼 쇼 선교사는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자 5955명으로부터 1만4500달러를 모금해 1957년 대전 목원대에 해밀턴기념예배당을 세웠다. 현재 목원대 채플(대학교회)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기념 예배당, 기념 비석, 기념 흉상이 세워져 충청권 호국보훈 교육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 은평구에 추모공원과 동상이 건립됐으며 2014년엔 해군사관학교에 흉상이 설치됐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10대 영웅을 비롯한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이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윌리엄 해밀턴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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