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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편집자말]
귀국길 동행 기자들과 인사하는 윤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출발에 앞서 공군 1호기 기내를 돌며 동행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귀국길 동행 기자들과 인사하는 윤 대통령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출발에 앞서 공군 1호기 기내를 돌며 동행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국빈 방문, '정쟁'으로 소비하는 언론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4월 30일 다음 날인 5월 1일, 보수언론 대부분은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 방미에 대한 평을 내놨다. 국민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와 직장에서, 댓글과 소셜미디어에서 윤 대통령 방미 의미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여당과 야당 등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국빈 방문 일정마다 각 당은 입장을 발표했다. 현재 한국이 처해 있는 위태로운 국가 안보와 갈수록 악화되는 무역수지 적자와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국빈 방문 성과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관심과 논평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 대통령 귀국 다음 날 쏟아진 언론 사설은 국빈 방문 공과(功過)를 체계적으로 논하는 대신, 방미 외교에 대한 야당의 비판을 비난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예를 들면 <서울신문>은 '정상외교 헐뜯기 혈안 민주당, 민망하지 않나'에서 "최소한의 금도(襟度)를 보여 주지 못하고 헐뜯기로 일관하며 국격을 훼손하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언론 역시 윤 대통령 방미 성과에 대한 비판을 야당의 "흠집내기"(국민일보), "야당이 반사이익만 노려 무조건 폄훼"(중앙일보), "야당의 공세"이자 "국론 분열"(매일경제), 그리고 이는 "정파적 이해"(조선일보)로 격하했다.

5월 1일 같은 날 보수언론이 이처럼 비슷한 목소리로 대통령 미국 방문에 대한 야당 논평을 당파적 정쟁의 차원으로 비난한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는 외교 이슈를 국내 정쟁으로 전환하고, 방미 성과 논쟁을 이념적 공세로 타락시키려는 의도마저 있어 보인다.

방미 성과, 야당·보수언론 주장 일맥상통

그런데 모순적인 것은, 정작 보수언론의 당파적 공세에도 이들 보수언론의 사설조차도 이번 윤 대통령 방미 성과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를 스스로 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지원법에 한국 기업들의 리스크를 해소할 방안을 담는데 실패"하는 등 경제 부문의 성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동아일보)

"미 전략핵잠수함 한국 방문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일본보다 제약이 많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추진도 어려워졌다는 시각"(중앙일보)

"자유에 기반한 가치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엄혹한 국제관계에서 중·러의 반발을 관리해야 한다는 청구서가 날아들고…"(국민일보)

이들 언론은 이번 방미 외교로 경제와 외교 차원에서 성과가 미흡하며 실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미국 국빈 방문에 대한 야당의 비판과 내용 면에서 유사하다. 국민 역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도 60% 이상이 부정적 평가를 유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즉,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대한 비판적 주장의 진의와 더불어 자격은 발언 당사자의 당파적 입장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시선을 미국으로 잠시 돌려 보면, 이러한 당파적 비판은 더욱 궁색해진다. 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워싱턴선언에 사인할 때,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ForeignPolicy)는 "America's Ironclad Alliance With South Korea Is a Touch Rusty(한미 철갑 동맹은 녹이 슬었다)"는 글을 실었다(2023. 4. 27).

해당 글은 "한국의 친핵 진영은 개인적으로 핵무기를 국력 문제로 삼고 '핵무기만이 핵무기를 억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속담에 입각한 열광자들이 장악하고 있다(The pro-nuclear camp in South Korea is dominated by zealots who are personally committed to nuclear weapons as a matter of national strength and based on a simplistic adage that "only a nuke can deter a nuke)"고 평가했다.

이 글은 공교롭게도 보수언론을 포함한 한국의 친핵 진영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도 핵을 통한 핵확산 방지는 그다지 지지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러한 주장을 하는 한국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굳이 야당이 아니더라도 많은 국민이 윤 대통령의 방미 외교 성과에 비판적인 이유는 당파성이나 정파성과 상관이 없다. 다만, 국민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 나가야 하는 시민 한 사람으로서 공동체 안전과 평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단순한 염원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폄훼하고 흠집 내며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있다. 언론의 정치 과잉은 이처럼 불온하고 음흉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간이 갈수록 동북아의 신냉전 기운이 유독 우리 안에서 더욱 차가운 발톱을 세우며 공포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채영길 민언련 공동대표(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윤석열#워싱턴선언#한미관계#한미동맹#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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