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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학사 창립 노천대회가 열린 삼원포 추가가 대고산(2004. 5월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경학사 창립 노천대회가 열린 삼원포 추가가 대고산(2004. 5월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 박도
 
경학사를 중심으로 뭉친 한인들은 척박한 만주의 땅을 개간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국내에서 애국정신을 가진 동포들을 더욱 불러들이며 한인사회의 기반을 일구어 나갔다. 경학사 회원들의 노력으로 이후 삼원포에는 많은 애국동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신민회 출신의 민족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각계의 지도자들도 속속 도착하여 한인사회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항일의병전을 전개했던 의병장들과 의병들의 한 부류로 이진룡·조맹선·박장호·조병준·전덕원 등과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인물들로 노백린·임재덕·이갑·김광서·지청천 등이다. 이들 민족운동계 지도자들은 신민회 회원 출신의 지도자들과 힘을 합해 이주한인의 자제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는 한편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주석 5)

척박한 이국땅에서 경학사의 운영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배우는 사람들의 열정과 애국심은 높았으나 주변 상황은 이를 감내하기 어려웠다. 첫해 1년간은 각자 국내에서 가지고 온 돈으로 운영이 가능했으나 자금은 곧 바닥이 나고, 설상가상으로 그해 농사는 대흉작을 면치 못해 이주한인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기에 이르렀다.

경학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간도의 한인사회는 1년간은 이회영 일가가 가지고 온 돈으로 지탱해 나갈 수 있었다. 국내에서 모여든 대다수의 한인들은 거의 가진 것 없이 이 지역에 당도하였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이회영 일가의 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회영 일가가 가지고 온 자금이 상당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한인사회 전체를 계속해서 유지할 만큼은 되지 못하였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척박한 만주 땅을 개간해 지은 첫해의 농사는 대흉작을 면치 못하였다. 

가을걷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한인들은 생존을 위해 다음해 봄까지 남겨두어야 할 씨종자 마져 식량으로 먹어야 했다. 그래도 식량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제대로 식수를 구할 수 없어 나무뿌리에 고인 물을 먹었다가 지독한 풍토병에 걸려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주석 6) 

만주 이주 초기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들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가족캠핑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들도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척박한 상황일지는 미쳐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룡의 손부 허은 여사의 증언 몇 대목을 소개한다.

고향에서는 양반이라고 말 고삐 잡고 경향간 내왕이나 하며 글이나 읽던 분들이 생전 해보지도 않고 특히 듣거나 본 적도 없는 화전 농사를 직접 하자니 마음대로 잘 될 리가 없었다. 몸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그 해 가을에 거둬들인 식량은 겨우 가을 한철 먹고 나니 다 떨어졌다. 다음 농사지을 때까지 지낼 일이 한심했다.

식수로는 도랑물을 먹었다. 도랑가에는 가래추자나무(호두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나무가 커 호두 열매도 아주 많이 열렸다. 그런데 그 해 오뉴월이 되자 그 동네 사람들 모두가 발병했다. '수토병'이라고도 하고 '만주열'이라고도 했다. 물 때문에 생긴 전염병 같았다. 원래 가래추자나무 있는 곳은 물이 좋지 않다는데 그 물을 먹어서 그랬던지 아무튼 석달 간 병이 돌았다.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 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만주까지 왔다가 죽어 간 사람들 생각하면 참 허망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죽음은 그 부모들 가슴에 못질을 한 것이다.

모두가 병을 앓는 바람에 그렇게 힘들게 개간해서 뿌렸던 농사를 묵혀 놔 가을에 거둬들일 것이 없었다. 폐농하고 나니 당장 겨울부터 양식이 없었다. 집집마다 할 수 없이 고국에서 떠나 올 때 가져 온 옷감들을 만주 사람들에게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좁쌀을 사서 죽을 쑤어 끼니를 이어갔다. 은가락지, 은잠(비녀) 같은 패물들도 다 그렇게 했다. (주석 7)


주석
5> 윤병석, <경학사>, <한국독립운동사사전(3)>, 210쪽, 독립기념관, 2004.
6> 윤병석, 앞의 책, 211쪽.
7> 구술 허은, 기록 변창애, <아직도 내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51~53쪽, 정우사, 2003.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상룡#석주이상룡평전#이상룡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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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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