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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은 붓 대신 무기를 들고 의병활동→애국계몽운동→친일파 송병준ㆍ이용구 등 처단 상소→해외망명에 나섰다. 노마드의 개척정신이 아니고는 실천이 어려운 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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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50] 공적에 비해 너무 낫다는 평이 따랐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9] "한국땅이 되기 전에는 유해를 고향으로 가져가지 말라."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8] 석주 선생의 <행장>을 쓴 권상규의 기록이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7] 석주 이상룡 선생은 선각자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6]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 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5] "일을 이렇게 벌여 놓고 나만 들어갈 수 없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4] 이상룡은 가족이 있는 남만주 반석현 호란으로 돌아왔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3] 김구가 선출되는 곡절을 겪으면서 임시정부는 겨우 정상화되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2] "국민 전체가 온전히 대동단결의 조직선에서 함께 분투하여야 하겠으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1] 하야를 천명한 박은식으로부터 서한을 받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0] 독립운동 진영이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거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9] 조선공화정부는 조직은 되었지만, 제대로 수립되지 못하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8] 박은식은 성격이나 체질적으로 관직에 연연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7] 독립운동사에 차지하는 그 의미는 적지 않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6] 정부수립 3년여 만에 임시대통령 불신임안이 채택돼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5]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4] 재기하여 반드시 민족적인 한을 풀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3] 국치 10년 만에 최초의 항일전에서 승리한 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