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부러워 하지 않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의 종이접기'. [기자말] |
마침내, 그런 날이 오고 말았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현금 없는 버스를 확대 시행했다. 기사님 옆에 서서 짤그랑 거리는 거스름돈을 기다리는 시간도 점점 사라져, 밖에 나갈 때 무엇보다 챙겨야 할 것은 카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실물 돈을 만져본 일이 먼 일 같다.
마트에서도 실제 돈은 거의 오가지 않는다. 마트와 카드사의 원만한 소통이 중요할 뿐. 지폐가 오늘날 실물로 기능하는 것은 비상용 아니면 몇몇의 기념일 뿐인 것 같다. 그러나 라떼의 애들은 돈에 그려진 그림을 접고 놀았다. 학종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굉장히 비싼 종이 접기가 있었다.
돈을 갖고 노는 것도 가지가지
눈코입의 거리와 비율을 확인해서 눈을 중심으로 산접기를 하면 없었던 욕망까지 다 꺼내 들키는 망측한 세종대왕이 나타나고, 눈을 중심으로 골접기를 하면 세상의 모든 근심을 이고 비루하게 우는 세종대왕이 나타난다.
돈에 울고 웃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전에 거꾸로 돌려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 큰 어른들은 하지 않을 놀이. 진지함은 약간만 접으면 유희가 된다.
돈을 진지하게 접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여기 각국의 지폐로 종이접기를 하는 작가가 있다. 종이접기 작가 요스케 하세가와(Yosuke Hasegawa)의 주요 소재는 '돈'이다.
각국의 지폐가 엄선한 위엄있는 인물들을 종이접기로 재해석한다. 숫자를 걷어내고 두건을 둘러 쓴 간디가 되거나, 아인슈타인은 장꾸(장난꾸러기의 준말)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작가는 인물의 맥락을 살려 얼굴 주변을 모자나 두건으로 접어내는 한편, 국가가 찍어낸 숫자를 지운다. 체게바라와 간디와 아인슈타인은 아주 가까이서 얼굴로만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센스가 좋다며 따라 웃을 수 있다. 문제는 지폐 속 인물이 명화와 콜라주를 하면서 몸을 얻는 장면이다. 돈은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과 기호, 그리고 각 나라가 쌓아올린 부의 규모로 가치를 얻는다. 그것을 슬쩍 무너뜨려 가벼운 웃음을 주는 것을 넘어 이제 복잡한 맥락 속에 걸어들어간다.
<최후의 만찬>의 그림에 각 나라의 위인이 접혀 들어갔다. 예수와 제자들의 가깝고 먼 배치가 모두 계산되어 있는 그림에 우리가 아는 얼굴들, 각 나라이 위인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제는 슬슬 근엄한 표정으로 턱에 손을 괴고 이 작품을 읽어내야 한다. 돈으로 종이를 접었더니 일어난 일이다.
낯선 작품에 정치와 이념과 역사의 사투를 풀어야 하는 골몰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돈 접기로 돌아와보자. 최근 어버이날이 지났다. 부모님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 1위는 현금이다. 다양한 용돈박스가 기쁨을 더 해주는데, 요새 유행하는 현금 박스로 '오천만원'이 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돈 종이접기
오천 원과 천 원과 만 원, 그리고 오만원 권을 조합해 '오천만 원'을 만드는 것이다. 마음만은 오천만 원을 드리고 싶은 이들에게 요긴하다. 봉투를 두 개 받으면 순식간에 1억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부모님은 우리 애들이 1억을 줬다는 너스레도 떨어볼 수 있다. 돈을 잘 접으면 거대한 돈을 받는 기분만은 선물할 수 있다.
돈을 접는다. <놀이와 인간>에 따르면 "문맥에서 따로 떼어놓아 소위 비현실화 하는 것"이라는 놀이의 설명에 더 없이 부합한다. 위인을 웃기는 아이들 장난 같은 접기에서, 각국의 지폐를 접어 인물을 소환하거나 마음만은 오천만 원도 선물할 수 있는 접기를 알아보았다. 이것은 노동의 대가인 돈을 접는다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놀이의 농도를 두 배쯤은 더 진하게 한다.
카드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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