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가을로 만주 동삼성 방방곡곡에 널린 한인부락에 수십 호씩의 이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의가 단봇짐에 짚신 몇 켤레, 바가지 하나 대롱대롱 차고 오는 행각이었다. 이들이 자리 잡히면 또 불러오곤 해서 만주땅은 우리 한인들에 의해 개척한 땅들이 부쩍부쩍 늘어났고, 한인들 수효도 엄청 늘었다. 아마 무오년(1918년)과 기미년(1919년)에 가장 많이 왔을 것이다. (주석 9)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견디지 못한 동포들이 만주로 몰려왔다. 그동안 이상룡 등 지도자들이 중국 정부와 애써 이룬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서 이주민들의 정착이 수월해졌다. <부민단>을 비롯 자치단체들이 이들의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도착하면 자치구에서 당번들이 나와 누구네 몇 가구, 또 누구네 몇 가구를 배당해 준다. 배당받은 집에서는 가옥, 토지가 완전히 결정되어 정착할 때까지 먹여 주고 보살펴준다. 농력(農力)이 있는 이들은 1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생활 근거가 잡혀 다음 해엔 스스로 자작농을 하게 된다. (주석 10)
만주에 한인이 많아진 것은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기대했던 현상이었다. 곳곳에 한인학교가 세워지고 <부민단>의 지부와 같은 조직도 자생적으로 나타났다. 이상룡과 <부민단> 간부들은 생기가 돋고 활력에 넘쳤다.
그는 뒷날 이 시기를 <만주에서 겪은 일(滿洲紀事)>에서 다음과 같이 시로 엮었다. 무려 16연에 이르는 장시다. 원문은 한자, 번역한 내용의 전반부이다.
1
십 오년 전 압록강을 건널 제
사나이 장한 혈기 몸속에 충만 했었네
군대가 나라를 끌어가는 일 이제껏 무경험이라
삼도의 군사 전고 한번에 무너지겠네.
2
추가가에서 결사하니 충심은 굳고
밭 갈고 배우는 일 취지 모두 완전했다
모든 정신 신흥학교에 쏟아 부어
양성한 군사 비호보다 날랜 오륙백.
3
세금 없는 청산이오 비옥한 토질
한 도끼에 생애 걸고 묵정밭 찍어 일구러
반년 겨우 지나 벽질에 걸리니
신선술 배우기도 전 쌓이느니 주검만.
4
만주 사람들 논농사 지을 줄 몰라
거친 벌판 빌려 올벼 늦벼 파종했다
가을 되매 흰 쌀밥에 물고기 반찬
그제사 얼굴 볼그레 생기 돌아오다.
5
상위의 모래는 한 덩어리로 뭉쳐진 계책 없으매
우매한 백성 깨우쳐 이끌 책임 가볍지 않다
작은 지역 서로 단결케 함을 그대 비방 말라
먼저 나누고 나중 합하는 것이야 늘 있는 과정이라.
6
산간에 솟는 샘 깨우치고 기르는 건 고금이 같다
팔년토록 뛰고 닫듯 발전한 빼어난 우리 국민
소학 기관 서른 곳에
한 때의 문화교육 또한 빛난다 할 만.
7
정부의 규모는 자치의 명분이요
삼권의 분립은 문명국을 닮음이라
우리는 안다 추녀 모모 서시 아니니
끝내 아름다운 자태 이루기 어려움 우습구나.
8
주식으로 신성호 재단을 세워
출납의 전권을 셈에 따라 맡겼다
봉함과 자물쇠 채우는 것 끝내 어찌 믿을까
장자의 거협편을 세 번이나 다시 본다. (주석 11)
주석
9> 허은, 앞의 책, 66쪽.
10> 앞과 같음.
11> <석주유고(상)>, 215~21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