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신축 공사는 학생·교사들과 동포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초가을부터 내린 눈이 계속 쌓여 3월 하순까지 녹지 않고 꽁꽁 언 땅을 파고 볏짚을 섞어 토담을 쌓는 기초 공사였다. 공사는 7월에야 끝낼 수 있었다.
1912년 7월 20일(양력)에 100여 명의 동포와 중국인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낙성식이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18개의 교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산허리를 따라 줄지어 있었고, 학년별로 널찍한 강당과 교무실, 내무반에는 기능별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훈련용 총기를 진열하는 총가(銃架)도 낭하에 비치되었다.
교장은 이시영을 시작으로 이동녕·이상룡·박창화·여준·이광 등이 차례로 맡았고, 교감은 김달·윤기섭, 학감은 윤기섭·이규봉 등이었다. 교관은 이관직·이장녕·김창환·김흥 등이었고, 교사는 장도순·윤기섭·이규봉·이정규·이갑수·김석영·김순철·이규룡·여규형·관환국(중국인) 등이었다. 교관 중에 이세영·이관직·이장녕·김창환·양성환 등은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들이다. (주석 3)
신흥무관학교에서는 군사교육은 물론 학생들의 민족정신 함양에도 주력하였다. 독립운동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민족의식과 우리 나라의 역사·국어·지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터였다. 교재를 보면 <국어문전(國語文典)>이 교과서로 채택되고, 국사교재로는 <대한역사>, <유년필독> 등이 사용되었다. 이들 교과서와 교재는 1909년 국내에서 통감부가 발매금지시킨 책이다.
지리교재는 <대한신지지(大韓新地誌)>와 <배달족강역형세도(倍達族疆域形勢圖)> 등이 활용되었다. 이밖에도 서전서숙과 경학사, 신흥중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었던 수신·독서·한문·이화(理化)·체조·창가·중국어·물리학·화학·도화·박물(博物)·중등용기법(中等用器法) 등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였다.
신흥학교를 비롯하여 서전서숙, 협동학교의 교과과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석 4)
주석
3>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119쪽(요약), 역사비평사, 2001.
4> 서중석, 앞의 책, 12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