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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편집자말]
드디어 사부의 예술품에 공식적으로 손을 대는 날이 왔다. 오늘은 소나무 손질 수업이 있는 날. 5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평소는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도 어젯밤 잠을 설쳤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흔히 있는 일이다. 혹시 몰라서 알람을 넣어 놓았는데 울리지 않았다면 늦을 뻔했다. 설렘에 눈을 떴지만 밥도 먹지 못하고 생수만 챙겨 갔다. 

남겨둔 나뭇가지 하나 
 
 5월 소나무 전지의 목적은 미도리라 부르는 새 순 제거다
5월 소나무 전지의 목적은 미도리라 부르는 새 순 제거다 ⓒ 유신준

사부는 한국에서 온 제자의 소나무 수업을 위해 가지 하나를 남겨 놓으셨다. 가지가 높아 소나무 옆에 작은 사다리 하나를 가져오라신다. 날은 밝았지만 사부의 정원은 어스름하다. 어스름한 정원 안에서 사다리를 옮기는 데도 원칙이 있다. 되도록 넓은 공간으로 움직일 것.

움직이다가 어디에 부딛히기라도 하면 예술품에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사부의 정원에서 뭐든 의도하지 않은 변화는 금물이다. 바로 사다리를 세우고 작업 지시를 받았다. 사부와 같은 나뭇가지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5월 소나무 전지의 목적은 미도리라 부르는 새 순 제거다. 이건 큐슈 지방만의 작업인데 이쪽은 날씨가 따뜻해서 생긴 일거리다. 소나무가 너무 웃자라기 때문에 나무형태를 망쳐서 부득이 하는 거란다. 정원사들이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가위는 보통의 전지가위를 쓰지 않고 끝이 뾰족한 소나무 전용 작업 가위를 쓴다. 작업 요령은 위에서 부터 아래로 진행한다. 아래로 정리해 내려와야 청소 작업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솔잎을 다치치 않도록 최대한 조심할 것. 솔잎이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도록 쓰다듬어가며 소중히 다뤄야 한다.
 
 사부는 한국제자를 위해 소나무 가지하나를 남겨놓으셨다
사부는 한국제자를 위해 소나무 가지하나를 남겨놓으셨다 ⓒ 유신준
 
나는 근시가 있어서 어스름한 곳은 쥐약이다. 너무 일러서 잘 안 보이는 것 같다고 하자 너는 새 눈이냐고 한다. 새 눈은 잘 안 보입니까? 그게 아니라 일본에서는 잘 안 보인다고 하면 새 눈이냐는 농담을 한단다. 사부께서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을 하신다고라? 

잘 보이지는 않는 데다 가위질도 서툴고 사부 코앞이라 긴장해서 작업이 더뎠다. 더듬거리는 걸 눈치챘을텐데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사부 장점은 말이 없는 것이다. 단점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때그때 다르다. 이런 때는 장점이다. 일단 지시했다하면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둔다.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하든, 삶아먹든 구어먹든 일체 말이 없으시다.  

나무를 손질하면서 사부와 내가 지체 높은 소나무의 시중을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사부는 소나무를 상전대하듯 조심스레 다뤘다. 사부에게 상전이면 내게는 어떤 존재가 되겠는가. 옛날 막부시대라면, 쇼군이 아끼는 나무에 의도치 않은 상처라도 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정원사의 목은 달아났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소나무 손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날도 밝아지고 점점 눈이 적응이 됐지만 작업이 만만찮기는 마찬가지다. 솔잎 새 눈은 묵은 눈보다 색깔이 연해서 구별하기는 쉽지만 너무 작아서 다루기 어려웠다. 점점 진초록의 단색 면적이 늘어났다. 해놓고 보니 외관은 사부 것과 비슷했다.
 
 적송은 흑송보다 솔잎이 부드러워 작업이 쉬운 편에 속한단다.
적송은 흑송보다 솔잎이 부드러워 작업이 쉬운 편에 속한단다. ⓒ 유신준
 
새순 제거 작업이 끝나면 잎털기 작업을 한다. 윗쪽부터 너무 무성한 곳을 다시 손질해 나가는 작업이다. 묵은 솔잎 중 적당량을 선별해서 제거해 내야 한다. 전체적으로 가지 모양을 손오공 구름처럼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아래 쪽으로 처진 잎도 따줘야 부드러운 곡선이 살아난다. 

사부는 척척 진행하고 계시는데 초짜 눈에는 그 잎이 그 잎이다. 어느 잎을 따줘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사부 손길을 살펴보니 어제 작업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표면에만 솔 잎이 집중하도록 그 아래는 전부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무 끝이 날렵하고 경쾌하게 보인다. 

잎털기 작업을 하면서 가지도 안에서 밖으로 문질러 준다. 적송은 표면이 매끈한 나무라서 나무 전체적으로 매끈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적송은 흑송보다 솔잎이 부드러워 작업이 쉬운 편에 속한단다.

작업은 겨우 해냈지만 초짜가 별 수있나. 최종 점검할 때 한쪽이 좀 이상하다면서 사부가 재작업을 했다. 제거되지 않은 새싹도 보였다. 잘 안 보였다고 하자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단다. 하나를 빠트리면 세력이 그 눈으로 집중돼서 나중에 쑥 올라온단다. 실수의 증거가 확연히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작업은 전체적으로 실패가 된다. 소나무 작업에서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이유다.  

작업이 끝나고 나무 아래 펴 놓았던 차광막을 걷고 청소를 했다. 차광막은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씌우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정원의 다른 식재물들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하나라도 다치면 안 된다. 현재 모습이 그대로 유지돼야 하는 게 차광막의 목적이다. 

최종 블로워 작업은 사부가 진행 방향만 알려주고 나에게 맡겼다. 블로워가 단순하게 이파리들이나 불어내는 작업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사부 정원에서 물을 상징하고 있는 흰 쇄석들이 이끼 위로 튀지 않도록 풍속의 강약을 조절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어느 것하나 쉬운 게 없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빳빳하게 살아있는 정원사 정신
 
 물 뿌리기는 사부정원 관리의 최종 마무리 절차다
물 뿌리기는 사부정원 관리의 최종 마무리 절차다 ⓒ 유신준

사부는 정원 뒷 마무리를 하시고 나는 어제 작업하다 남은 철쭉 뒷편 정리 작업을 했다. 뒷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곳이라 아래가 무성해졌는데 그걸 정리해 바람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가고 사부가 지나가면서 잘 됐다고 칭찬을 하는데, 청소를 하느라 철쭉 위에 잠시 올려놓은 손갈퀴가 사부 눈에 띄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러지 마라. 청소하느라 잠깐 올려놓는 것도 안 된다. 어제 네가 엄청난 정성을 들여 작업한 철쭉 위에 저걸 올려놓지 않았느냐. 네가 하찮게 생각하는 결과물을 누가 인정해주겠느냐.

정원사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절대 필요하다. 그게 그 사람의 행동으로 항상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가슴을 때리는 사부의 일침이었다. 아, 전문가라는 건 빳빳하게 살아있는 정원사 정신이 중요한 거구나. 한순간이라도 그걸 놓치면 망하는 거구나.

물 뿌리기는 사부 정원 관리의 최종 마무리 절차다. 사부는 며칠 동안 정원 작업을 마무리해 놓고 흐믓한 얼굴로 물을 뿌리고 계신다. 정원이란 모름지기 아래가 깨끗해야 한다. 위만 신경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틀렸다. 모든 정원 수준은 아래의 깔끔함에서 판가름난다. 
 
 물까지 뿌려놓은 정원은 금족령이 내려진다
물까지 뿌려놓은 정원은 금족령이 내려진다 ⓒ 유신준
 
역시 청소의 중요함이다. 일본정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깔끔함이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물까지 뿌려놓은 정원엔 금족령이 내려진다. 최종 완성품에 걸맞는 위엄이 부여되는 것이다.

내일도 오전 6시다. 드디어 현장 투입이란다. 나를 위해 작업 일정을 조정하고 가까운 정원부터 해나가기로 하셨단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성껏 가르쳐 주시고, 눈여겨 지켜 봤다가 드디어 현장에 투입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신 것이다. 좋은 사부를 만났으니 감사한 일이다. 연일 강행군이 계속되고 있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일본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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