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그 품에 들면 고향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고 몸은 활력을 얻게 되므로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된다. 9일 오전에 전북 임실군 성수산 상이암 계곡은 장마철의 계곡 물소리로 우렁찼다.
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숲의 터전을 지탱하며 수억 년 지질 시대를 생존한 강인한 생명력의 지의류(地衣類)와 선태식물(蘚苔植物)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숲길에서 찾아보았다.
지의류는 땅옷 또는 돌꽃이라고 하고, 선태식물은 흔히 이끼라고 한다. 지의류와 선태식물은 생명체의 활동 범위를 바다와 하천의 물에서 육지인 뭍의 영역으로 확대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고, 현재도 물과 뭍의 점이지대에서 같은 역할을 하며 숨은 듯이 생존하고 있다. 바위 표면처럼 건조한 데는 지의류가 무늬처럼 덮여 있고, 습기 많은 곳은 선태식물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지의류는 균류가 조류와 공생하는 개성 있고 강인한 장수 생명체이다. 균류는 수분을 흡수하고 조류는 광합성으로 탄수화물을 만들어 서로 제공하면서 공생한다. 인류는 신석기 시대에 농업혁명의 역사를 열었는데, 어떻게 보면 지의류는 그 생명체로 출현할 때부터 균류가 조류를 활용한 농업 활동이 기본이었던 셈이다.
지의류는 암석 표면이나 나무껍질에 부착하여 잘 자란다. 지의류는 화산 지대의 용암이 식으면 기다렸다는 듯 정착해 암석 표면이 풍화되기 쉽게 하고, 토양이 형성되면 식물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지의류는 손톱만큼 성장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인 빙하 아래나 건조한 사막도 아무렇지 않고 엄청난 방사능을 극복할 능력도 있어 기회가 주어지면 우주공간이라도 건너갈 것 같은 강인한 생명체이다.
선태류인 이끼는 지의류와 달리 엄연한 식물이다. 이끼는 물관, 체관과 형성층이 없는 시원적인 형태의 식물인데 줄기처럼 생긴 모양의 선류(蘚類)와 김 같은 조류처럼 납작한 형태의 태류(苔類)로 구분된다. 태류는 잎과 줄기 모양의 형태를 갖추고 가는 털 같은 헛뿌리가 있다.
지구의 지질 시대부터 살아 온 오래된 주인공은 이와 같은 작은 몸체의 생명체들이다. 지구 역사의 오랜 기간에서 보면 인류라는 종의 시대는 찰나일 뿐이다. 지구에 수억 년 동안 등장한 생명체의 수많은 종은 길고 짧은 존속 기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99%가 멸종했다.
수억 년 동안 넓은 세상을 개척한 작은 형태의 이 선구자들인 지의류와 선태식물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구의 주인공으로 남아 여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 작은 생명체들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천 년 전의 역사와 설화가 전해 오는 성수산 상이암 계곡에서 지의류와 선태식물 탐사는 수억 년 지구 개척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자연 생태 관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