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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종 정신으로 공공언어 바로잡기 운동을 펴고 있는 세종국어문화원과 함께 우리 시대 <우리말글 가꿈이를 찾아서>를 연재한다. 공공언어 바로잡기에 애써온 단체와 우리말글 운동가들을 찾아 성과와 의미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말]
1991년 노태우 정부는 쉬는 날이 이미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법정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이로부터 한글 유관 단체들의 투쟁이 시작되었고, 무려 22년 만인 2013년에 다시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운동자금을 후원한 기업인은 바로 인터넷 한글 주소를 개발한 이판정 넷피아 대표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한자로 된 국회 상징과 국회의원 한자 명패를 한글로 바꾸는 운동비용도 모두 부담했다고 한다. 인터넷 한글 인터넷주소를 개발하고 사업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 운동가로 변신한 이판정 대표를 지난 7월 23일, 넷피아 창립 25주년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누구나 한 번쯤은 영어로 된 인터넷 주소를 기억하지 못해 애를 먹거나 인터넷 주소창에 영어 주소치는 것에 불편을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대부분은 컴퓨터가 영미권에서 개발되어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이런 불편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국어로 주소를 치는 기술을 개발한 이가 이판정 대표라 한다.

한국 인터넷 주소, 왜 중요한지 물어보니 
 
  자국어 인터넷주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이판정 넷피아 대표
자국어 인터넷주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이판정 넷피아 대표 ⓒ 김슬옹
 
 - 한글 인터넷주소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6년 무렵에 인터넷주소가 영어 알파벳이 아닌 한글이면 어떨까 고민하던 중 한글 인터넷주소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그 무렵 한국 전산원 소속의 국가 도메인 정책위원회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위원회에서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줄 터이니, 한 번 해보라 하여 시작했죠. 그 당시는 인터넷주소를 한글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던 시절이었지만, 넷피아가 1997년에 처음으로 한글 도메인 또는 한글 인터넷주소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병역특례요원이었던 배진현 연구원이 입사하였고, 1999년 아시아의 인터넷 아버지이자 세계적 석학이셨던 전길남 박사님 지도로 한글뿐만 아니라 각국의 모국어인 '자국어 인터넷 주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글 도메인 또는 한글 인터넷주소이지만, 실제 이름은 자국어 인터넷 주소(NLIA; Native Language Internet Address)입니다."

- 영어가 국제어처럼 자리 잡은 시점에서 자국어 인터넷 주소가 왜 중요한가요?
"자국어 인터넷주소(한글 도메인)는 일명 '상호 자동교환시스템'으로 기업명, 상호 또는 브랜드를 자동으로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전화를 보기로 쉽게 설명하면 114로 연결하지 않아도 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 자동교환기와 같은 것이죠. 전화 자동교환기가 개발되면서 모든 상호가 독립된 상호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어 도메인은 114와 같은 구실을 해 개별 상호가 제 역할을 못 하게 하죠. 따라서 자국어 인터넷주소는 인터넷 공간의 경제 주체를 구별(식별)하고 자동으로 연결하는 '자동교환시스템' 역할을 합니다.

로마자 알파벳만으로 된 도메인은 이미 그 복잡성으로 인해, 전체 숫자가 5억 개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화번호 자동교환기 덕분에 지난 100여 년 동안 등록 상호가 무려 약 142억 개를 기록하는 것을 보면 영어 도메인의 한계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각 나라의 모국어 상표인지도는 가장 중요한 경제 자원이므로 '상호(브랜드네임)' 자동 연결 비율이 곧, 그 나라의 경제 활성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세부 콘텐츠 역시 경제적 가치가 아주 높은데, 여기에 생명력을 갖게 하는 것이 자국어 인터넷 주소이지요."

- 한글 단체들과도 지속해서 협력, 지원 사업을 오래 해오셨는데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요?
"한글 단체들이 자국어를 지키는 이 사업에 공감해 주시고 함께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한글 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회(한추회)입니다. 한추회 고문이셨던 고 전택부 선생님은 한글 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회 모임 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가장 큰 한글 사업이 '한글인터넷주소 사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추회 초대 회장이셨던 고 서정수 박사님은 한추회의 의미를 '한글 단체가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하나로 모인 것은 해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한추회에 모든 한글 단체가 힘과 뜻을 모은 의미를 그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영어가 아닌 글자 중 세계 최초로 인터넷주소가 된 글자'가 바로 '한글'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고 박종국 회장님, 전 외솔회 이사장을 역임하신 고 김석득 한 추 회상임 이사장님 등 수많은 한글 단체 선생님 덕분에 인터넷주소가 한글로 되는데 그분들의 뜻과 노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한글 운동단체들과 호흡을 맞추는 한글운동가가 되었죠. 과분하게도 한글운동가의 최고 영예인 외솔상(37회, 2015년)을 받았죠."

"생각훈련 하려면 모국어가 중요해"
 
  자국어인터넷주소 세계 지도 앞에서 관련 백서인 <인터넷 난중일기> 본인 저서를 들고 있는 이판정 대표
자국어인터넷주소 세계 지도 앞에서 관련 백서인 <인터넷 난중일기> 본인 저서를 들고 있는 이판정 대표 ⓒ 김슬옹
 
이판정 대표는 자국어 인터넷주소 사업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병마로 고생은 했지만, 국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 어려운 과정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한글 단체들을 지원하고 한국어 동화 대회를 꾸준히 여는 등 모국어와 한글을 지키는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의 뚝심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0년에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최대 주주인 리얼네임즈가 넷피아를 300억 원에 인수하려는 제의를 거절하여 '골리앗과 맞서 싸운 다윗'과 같은 벤처기업인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유럽에서 자국어 인터넷주소 지키기를 지지하는 법이 통과되어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대화 로봇 시대에 한글 가꾸기 전략과 계획을 물었다.
 
"(최근 유행하는) 챗 지피티는 결국 질문의 힘입니다. 질문은 깊은 사유에서 더 좋은 질문이 나옵니다. 그래서 한글 도메인과 95개 국어 자국어도메인을 보급하는 회사로, 모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자 합니다. 사유를 깊이 하려면 어릴 적부터 시를 쓰고 철학을 배우고 하는 일련의 생각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생각훈련은 모국어로 하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니체와 많은 언어학자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언어 특히 어릴 때부터 모국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사고의 지평을 넓히려면, 모국어를 더 깊이 있게 하는 시/시조/동화/철학서 등을 부모들이 더 많이 읽게 하는 사회적 운동도 필요합니다.

넷피아가 회원으로 있는 한세본(한글문화 세계화 운동본부) 이 기회가 닿으면 그런 역할을 일부 하고자 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한세본은 외국인 한국 유학생 '우리 전래동화 읽기대회'를 페이스북을 통해서 진행하였습니다. 그 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본국의 교과서에 '우리 전래동화'를 싣도록 후원하는 임무가 한세본의 제일 큰 사업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유럽의 DMA(Digital Markets Act), 일명 '디지털게이트키퍼법'이 한국에 그대로 도입이 돼, 자국어 인터넷 주소인 한글이름(브랜드네임) 자동교환 시스템이 방해받지 않게 되면, 한글도메인이 다시 예전처럼 활성화됩니다. 또 각국에서 자국어/모국어 인터넷주소로 번 돈으로, 그 나라에 언어매출 사용료를 낸다고 여기고 그 나라 전래동화를 세계 각국에 교류하게 하는 일도 함께하며, 각 나라 아이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생각의 지평을 더 넓히는 데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자국어 인터넷주소는 모국어도 지키고 수많은 소상공업인을 지키는 풀뿌리 디지털 한글 운동'임을 강조하는 그의 눈빛이, 텅 빈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한글도메인#자국어인터넷주소#이판정#넷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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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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