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 생수, 과연 '청정'한가?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뜨겁다. 얼마 전 플라스틱 생수 1ml에서 평균 1억 6600만 개의 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350ml 용량의 생수 한 병에 580억 개가 넘는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는 셈이다.
하지만 생수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작년 감사원 실험결과에 따르면 페트병에 든 생수가 고온과 자외선에 노출될 경우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해물질이 일부 검출되기도 했다. 생수회사들은 저마다 유명 연예인들을 앞세워 '청정함'을 내세우지만 실상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깨끗한 물'을 찾아 소비되는 생수가 매년 56억 개에 달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 중 단 한 개의 생수병도 '썩지' 않았다(플라스틱병이 썩는 데는 500년 이상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가벼운 플라스틱 페트병들은 해양오염의 원인이 되고 미세플라스틱으로 잘게 부서져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식탁 위 음식에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생수 판매가 국내에서 시작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생수가 물을 마시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사람들은 왜 생수를 선택할까? 물을 마시기 위해 생수를 구입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걸까?
여성환경연대는 2023년 5월 3주간 서울시민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다중이용시설 및 공공장소에서의 식수 접근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기차역, 백화점, 공원, 야외 길거리 등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실내·실외 공간을 포함하여, 집 밖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물을 마시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응답자 92%, 공공장소 내 생수 구입 경험... 공원 최다
우선, 다중이용시설과 공공장소 내 생수 구입 빈도에 대해 응답자 절반 이상(51.6%)이 월 2회 이상[주 3회 이상(10%), 주1-2회(24%), 월 2-3회(17.6%)] 생수를 구입한다고 대답했다. 그외 정기적이지 않더라도 물이 필요한 경우 생수를 구입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했다.(40.2%) '생수를 구입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8.2%에 그쳤다.
생수를 구입하게 되는 주요 장소에 관한 질문에는 공원 등 나들이 시(26.0%)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야외 길거리(24.1%), 기차역 혹은 터미널(19.4%), 공연장(12.3%), 영화관(9.1%), 스포츠경기장(5.2%)이 순서대로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내 공공장소에 설치된 음수대는 단 7%
물이 필요할 때 생수를 대체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공공 음수대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서울시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 공급'을 목표로 표방하고 2006년부터 아리수 음수대를 시내 전역에 설치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2만6491대의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중 학교 등 교육시설 내에 위치한 음수대가 2만 3000여 대, 공공기관에 설치된 음수대가 1600여 대에 해당한다. 즉 공원과 다중이용시설 등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된 음수대는 전체의 7%(1732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민 10명 중 7명 음수대 이용하지 않아
그렇다면 공원에 설치된 1700여 대의 음수대는 과연 얼마나 이용되고 있을까? 실태조사에서 다중이용시설 및 공공장소에서 음수대를 이용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부정응답이 과반(69.5%)을 차지했다.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은 음수대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음수대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청결 및 위생이 걱정되어서'(32.1%)가 가장 많았고, '주변에 음수대가 없어서'(15.0%), '음수대 위치를 몰라서'(14.3%), 담아 마실 용기(텀블러 등)가 없어서'(12.0%), '음수대를 이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서'(7.3%)가 뒤를 이었다.
현장 모니터링 결과 6개월간 운영 중지하기도
여성환경연대는 실태조사 설계 과정에서 음수대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2023년 4월 서울시내 음수대 10곳에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모니터링은 음수대를 찾을 수 있었는지, 표지판 등 위치 안내가 제공되었는지, 잘 작동되었는지, 상태가 청결했는지, 수질검사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지에 관해 진행되었다.
실태조사에서 생수 소비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던 공원의 경우,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더라도 시설 내에 해당 위치에 대한 안내가 부족했다. 특히 서울로7017의 음수대의 경우 동파 방지의 명목으로 6개월(11월~4월) 동안 운영을 중지해 이용객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도 했다.
실태조사에서 세 번째로 생수 소비가 많이 이루어졌던 기차역·터미널의 경우 음수대 설치 현황에서 알 수 있듯 공공음수대 설치 대수 자체가 부족했다. 모니터링을 실시한 서울역(기차역)과 홍대입구역 모두 하루 이용객이 9만 명 이상 되는 매우 혼잡한 다중이용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음수대 활성화 위해 필요한 것은 '관리 실태 홍보'
2000여 명의 시민들에게 공공 음수대 이용을 늘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물었다. 음수대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시민 셋 중 한 명(29.0%)은 '음수대의 청결 및 위생 관리 현황이 적극적으로 홍보되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그외에 '음수대가 유동인구로부터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20.4%)하고 '음수대를 찾기 쉽도록 안내를 강화해야'(19.1%)하며 '공익광고 등을 통해 공공 음수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11.0%)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현재 학교와 공공기관 등 공공 건축물을 중심으로 음수대가 설치된 점에 착안하여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먼저, 민간 다중이용시설에 음수대 설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동의함'이 86.7%로, 시민 10명 중 약 9명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나아가 음수대 설치가 의무화될 때 공공장소 내에서 플라스틱 생수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에 관해서는 71.2%의 시민들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서울시는 수돗물 '아리수'에 대해 WHO(세계보건기구) 권장 검사항목 166개를 훨씬 웃도는 350가지 항목에 대해 수질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인식 실태조사에서 알 수 있듯 시민들은 실상 청결과 위생을 이유로 공공 음수대의 수돗물 대신 플라스틱 생수를 선택하고 있다. 수질 검사의 양질화만큼이나 그에 대한 홍보와 공원 및 다중이용시설에서의 음수대 확충이 절실해보인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특히 서울시는 폐기물을 제로로 만들겠다며 '제로서울'을 선언하고 있는 만큼,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를 원하지 않는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성환경연대가 실시한 이번 실태조사 결과는 10월 중 홈페이지(www.ecofem.or.kr)를 통해 보고서로 공개될 예정이다. 다음 편에서는 설문조사 이후 시민들과 직접 만나 진행한 집단인터뷰 결과가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