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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7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일반부 매스스타트 경기가 열리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일반부 매스스타트 경기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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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여름을 지나 재개장을 했습니다. 빙상장 유목 생활을 끝내고 다시 강습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스케이트 강습 글을 올리고 나서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이전, 철거'라는 키워드로 유입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참 무신경하게도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지만 동일 현상이 반복되니 궁금해졌습니다. 이건 무슨 말인가?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요점은 2009년 조선 왕릉 중 하나인 태강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태릉 선수촌을 이전한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실제 선수촌은 진천선수촌으로 이전을 했고 빙상장만이 남아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주변 외관을 훼손해서 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이 되면 관광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이 커지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도 현재 태강릉의 수입과 태릉스케이트장을 통한 수입이 비교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미 대중화된 스포츠입니다. 그만큼 스케이팅을 즐기는 인구가 많고 서울뿐 아니라 원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수도권 전 지역에서 찾는 빙상장입니다. 일일 이용자 외에도 각종 대회 선발전을 포함해서 항상 수많은 경기들이 진행되고 있고 지도자 배출도 하고 있습니다. 각종 경기를 위한 시합과 일반인 강습, 그리고 수많은 동호회들 이용이 많은 곳이라 빙상장은 끊임없이 북적거립니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한국 동계스포츠와 관련한 하나의 상징물입니다. 이곳은 국가가 정책으로 체육인 양성을 위해 만들었고 매번 동계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 월드컵에 보내기 위해 선수 양성을 하는 곳입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은 국제사회의 감시 하에 보호와 관리를 받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지만 지금은 오히려 문화유산 지정이 우리 스포츠 역사의 중요한 자산을 강제  철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이, 태릉스케이트장을 지킬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에 대해 언제 공개적으로 검토가 이루어졌었나? 어떤 식으로 공론화되었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아무리 뉴스를 뒤져봐도 수년간 어느 지자체에서 유치할 것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그 외 자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유네스코 지정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한 국가에서 필요한 이유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 것인가? 능의 보존과 함께 빙상장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그저 철거 기한을 정해두고 뭔가에 떠밀리듯(?) 철거하겠다는 의지만 보입니다. 대안 마련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하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요즘이라 새삼스레 역사에 대해 한 번 더 되짚어 보게 됩니다. 역사를 배우고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왜 근현대사 이후의 역사는 선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가?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의 50년, 반백 년이 넘는 역사는 왜 중요하지 않은가? 보존하고 지켜야 할 것은 구한말 이전의 유산만이란 말인가? 오히려 근현대사 이후의 역사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훨씬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의미와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명확한 계획은 없으면서 철거 일정을 먼저 확정한 채 우왕좌왕 지자체의 유치 전으로만 번지고, 지자체는 자신들의 실적을 위한 관점으로만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도 너무 쉽게 무언가 빠르게 지어 올리고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허물어 버리곤 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체육 시설을 허물고 토목 사업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전무한 채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오합지졸의 민족이 아니란 말입니다.

2024년까지 철거해야 하는 태릉국제빙상장! 국내에선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8번째 규모의 국제규격을 갖춘 400M 트랙 경기장입니다. 2000년 개장 이후 각종 국제 대회를 치르며 수많은 선수들의 성과가 있었고, 일반인 개방으로 동계스포츠 활성화와 함께 빙상을 즐기는 인구도 대폭 늘어났습니다. 휴장기를 지나 다시 찾은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마음은 반갑고도 착잡합니다. 

역사를 잘 유지 보존한다는 것은 기념관만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역사물이 아직 살아서 역사를 써가는 중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유네스코 지정 못지않게 우리에겐 더욱 중요합니다. 살아있는 역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기념관을 유지하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 스포츠계에 중요한 한 부분이고 그 역시 '현재의 역사'라면 몇몇 보존 시설로 유물처럼 기념관만 남길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함께 숨 쉴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국비까지 포함된 1500억 원이나 들여 새로운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철거로 또 수백억 원 세금을 쓰면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게 되나요? 스케이트를 배우지 않았었더라면, 그것도 태릉에서 배우지 않았더라면 생각해 보지도 못했을 이슈입니다. 

천문학적 세금을 들여 철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역을 살리고 역사도 만들어 가며, 상징적인 시설물의 활용을 함께할 수 있는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명분과 실리에도 맞을 것입니다. 전 어느새 태릉스케이트장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명분과 실리를 지켜낼 수 있는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안이 필요할 때입니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스케이트장 철거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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