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9조 원에 이르는 역대 최고 세수결손에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물가, 성장률과 같은 경제 정책의 실패는 '대외경제여건' 같은 수많은 핑곗거리들이 존재하지만, 세수추계의 문제는 수학문제 풀이와 같은 기술적 능력의 문제에 가깝게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3년 연속으로 어마어마하게 틀렸으니 부총리가 체면치레로라도 송구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물론 기재부의 항변처럼 추계라는 것이 늘 정확할 수는 없다. 8월 시점에 다음 연도 세입이 어느 정도 될지 판단하는 건 기본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반도체 경기가 곤두박질치니 8조 원 안팎의 법인세를 내던 삼성전자가 법인세를 거의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이 과열되며 양도세와 거래세가 폭증하는 양상은 추계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도전적인 환경이다.
그러나 추계의 정확성과는 별도로 편향성이라고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정부의 성향에 따라 기재부의 추계 방향성이 달라진다면 이는 기술적 정확성을 넘어선 '경제적 현상'이고, 의도가 존재한다면 '정치적 문제'가 된다. 이런 편향성은 데이터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는 정확성의 문제에서만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정권 3.5% 과대추계, 민주당정권 4.2% 과소추계
문민정부 이후 세수오차율을 분석해 보면, 예산당국은 보수정권에서 평균적으로 세수를 3.5%만큼 과대 추계했다. 세입을 실제보다 더 늘려잡아준 셈이다. 민주당 정권에서는 반대로 4.2%만큼 과소 추계했다. 실제보다 세금이 덜 들어온다고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도와 상관없이 예산당국은 보수정권에게 세입예산의 7.7%,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는 31조 원의 재정여력을 매년 예산 편성 시점에 추가로 제공한 셈이다.
우연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수준의 차이는 아니다. 통계적 기법을 활용해 분석해 보면, 우연하게 이 정도의 차이가 날 확률은 1% 미만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집권 15년 중 5% 이상 세수를 과소추계한 적이 여섯 번 있었는데, 보수정권에서는 한 번에 불과하다. 반대로 보수정권 15년 중 5% 이상 과대추계한 적은 일곱 번에 이르렀는데, 민주당 정권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그림으로도 추계의 방향 차이가 뚜렷하다.
경기변동 사이클과 집권기가 우연히 겹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경기 하강기에는 세수를 과대추계하는 경향이 있고, 상승기에는 세수를 과소추계하는 경향이 있다. 상승과 하강의 수준을 전년도에 제대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보수 집권기가 주로 경기 하강기거나 민주당 집권기가 주로 경기 상승기라면 정권 성향에 따른 편향성을 경기변수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가 제공하는 경기변동 자료를 근거로 분석해 봐도 경기와 상관없이 정권에 따라 일정한 편향성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권 경기상승기에서 보수정권 경기상승기보다 세수를 더 크게 과소추계했고(각 +8.8%, +1.4%), 같은 경기하강기라 해도 보수정권에서 훨씬 더 세수를 과대추계했다(각 -7.5%, -1.0%). 민주당 집권기에 상승기 8년, 하강기 7년, 보수정당 집권기에 상승기 7년 하강기 8년으로 대동소이했다.
문제는 기재부의 비밀주의
우연이 아니라면 설명이 필요한 현상이다. 이를테면 정권의 정책에 따라 벌어질 수 있는 영향에 대한 평가를 예산당국이 일정하게 보수적으로 평가했을 수 있다. 보수정권의 감세가 미칠 영향 또는 민주당 정부의 세수확충을 위한 정책의 영향을 과소평가했거나 정책 시차를 너무 짧게 잡았다는 추측이다. 이런 수준이라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개입하는 상황이다. 기재부의 이른바 '작은 정부 편향성' 때문에 민주당 정부에서는 재정지출 확대를 걱정해 세입을 과소추계하고, 보수정권에서는 감세에 따라 감소하는 지출 여력을 보충하기 위해 세수를 과대추계하는 식의 고려가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기재부는 펄쩍 뛰겠지만, 근래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면 이런 종류의 문제를 기우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2월 추경 국면에서는 돈 한푼 없다며 손실보상 추경 규모를 줄이려고 완강하게 버티던 기재부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60조 원 규모 초과세수의 존재를 발표했다. 덕분에 윤석열 정부는 금과옥조로 여기는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지 않고도 대선공약인 대규모 손실보상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기업의 실적부진과 경기하강이 뚜렷하게 나타났고 기재부 자신도 8월에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를 12월에 하향 조정했을 정도였는데, 지나치게 낙관적인 400조 원의 세입 예산을 끝까지 고수했다. 그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 사상 최대 세수결손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기재부 자신이 세수오차 개선 대책을 발표하면서 약속했던 '경제환경 변화시 세입 재추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것은 당시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이 세입감소로 이어졌다는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문제를 키우는 건 대규모 세수오차를 잡지도 못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자료를 은폐하는 기재부의 비밀주의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나서서 민간에 세수추계모형을 공개하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순리일 텐데, 철저하게 숨긴다. 세수추계모형을 공개하라며 국회의원이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형로펌(태평양)을 선임하며 대응할 정도다. 지난 세수추계 과정과 재추계 수치를 공개하라는 국정감사에서의 요구들도 모두 묵살하고 있다.
예측이 틀릴 수는 있다. 그러나 대처만큼은 똑바로 해야 한다. 기재부는 합리적인 해명도 실질적인 개선도 자료 공개도 없이 '기재부를 믿으라'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뚜렷이 드러나는 세수오차의 편향이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