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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대전현충원이 2020년 5월 29일에 현충원 현판을 새 현판으로 교체한 뒤 제막을 하고 있다. 왼쪽의 ‘현충문’ 이미지는 교체 이전의 현판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이 2020년 5월 29일에 현충원 현판을 새 현판으로 교체한 뒤 제막을 하고 있다. 왼쪽의 ‘현충문’ 이미지는 교체 이전의 현판이다. ⓒ 국립대전현충원
 
대전현충원 현충문은 현충탑의 출입문으로 방문객들이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참배를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대전현충원 현충문은 1983년 5월에 한옥을 본떠 만들었는데, 현충문에 걸린 현판이 2020년 5월 29일에 '안중근체'로 교체되었습니다.

대전현충원 현충문 현판을 안중근체로 교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전의 현충문 현판은 대전현충원 준공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가 종이 위에 '현충문'이라고 쓴 것을 확대하여 탁본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씨가 퇴임 후인 1995년 12월 3일에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전씨는 그날부로 전직 대통령 예우도 박탈당했습니다. 그는 구속된 지 2년여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혐의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회피할 수 없었습니다.
     
대전현충원 현충문 현판 글씨가 전두환의 글씨라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5.18관련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현충원의 상징성과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대통령 예우 박탈과 범죄 사실을 고려해 대전현충원 현판은 교체하자고 촉구해왔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맞은 2020년에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결국 2020년 5월에 현충문 현판을 교체하게 됐습니다. 현충문 현판 글씨를 안중근체로 교체한 이유에 대해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안중근 의사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당시 독립군 참모중장으로서 오늘날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는 위인"이라며, "해방 후 고국에 뼈를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현재까지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 중에 있어 현판 서체로 사용된다면 국립묘지를 대표하는 시설물에 안중근 정신을 담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때마침 2020년은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면서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를 맞는 뜻깊은 해였습니다. 안중근체는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저작권위원회에서 안중근 의사가 자필로 쓴 <장부가> 한글 원본의 자소를 발췌하여 개발한 서체입니다.
  
 대전현충원 현충탑 헌시비 교체 전후의 모습
대전현충원 현충탑 헌시비 교체 전후의 모습 ⓒ 임재근
 
대전현충원은 전두환 정권 때 준공되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전두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충탑 앞에는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고 쓰여 있는 헌시비가 있습니다. 이 헌시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바치는 글로, 가곡으로 유명한 '가고파'의 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었지만, 글씨는 '현충문' 글씨와 마찬가지로 전두환이 쓴 것이었습니다.

헌시비 뒷면에는 '대통령 전두환은 온 겨레의 정성을 모아 호국 영령을 이 언덕에 모시나니 하늘과 땅이 함께 길이길이 보호할 것입니다. 1985년 11월 16일'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현충문 현판 교체 이후 헌시비의 글씨체도 안중근체로 교체했고, 헌시비 뒷면은 문구 자체를 지워버렸습니다.

대전현충원은 1985년 11월 13일에 당시에는 대전국립묘지라는 이름으로 준공되었는데요. 전두환씨가 처음으로 대전현충원(당시 대전국립묘지)을 찾은 것은 1986년 6월 19일이었습니다. 이날 전두환씨는 참배를 하고 현충문 안쪽의 화단에 금송을 식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무는 고사해 2010년에 다른 나무로 대체해 다시 식재되었는데요. 현판과 헌시비 교체 당시에 전두환 기념식수에 대한 처리 계획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체한 나무도 생육상태가 좋지 않아 2023년 2월에 다른 곳으로 이식했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전두환씨는 1986년 6월 19일에 대전국립묘지(현 대전현충원)을 처음으로 찾아 참배를 했고, 현충문 안쪽 화단에 금송을 식재했다.
전두환씨는 1986년 6월 19일에 대전국립묘지(현 대전현충원)을 처음으로 찾아 참배를 했고, 현충문 안쪽 화단에 금송을 식재했다. ⓒ 국가기록원
   
 현충문 안쪽 화단에 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잔디를 심은 흔적이 남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역위원회 홍경표 위원장이 나무가 심어져 있는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뒤편 오른쪽으로 현충탑이 보인다.
현충문 안쪽 화단에 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잔디를 심은 흔적이 남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역위원회 홍경표 위원장이 나무가 심어져 있는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뒤편 오른쪽으로 현충탑이 보인다. ⓒ 임재근
 
지난 2005년 6월 1일, 전두환씨는 부인 이순자씨 등 40여명과 함께 대전현충원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날 전두환 일행은 장군 1묘역에 있는 유학성을 비롯해 진종채, 이규동 등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헌화를 했습니다. 이규동 장군은 전두환의 장인이었고, 진종채 장군은 전두환에 앞서 보안사령관을 맡았던 이로 1980년 5.18 당시에는 제2야전군사령관으로 계엄군의 지휘계통상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또한, 유학성은 12.12군사쿠데타 당시 수도방위(경비)사령부 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핵심인물로 지목돼 군 형법상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그러던 중 병세가 악화돼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돼 있던 상태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을 20여일 앞두고 사망해 국립묘지에 안장된 논란의 인물이었습니다.

전두환 일행이 대전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항의하기 위해 급히 달려가 대전현충원 정문을 가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타고 들어갔던 차량에 비슷한 용모의 다른 사람으로 앉히고, 정작 본인은 다른 승용차로 바꿔 타는 방법으로 정문을 빠져나가 버려 항의에 나선 이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전두환씨는 추징금 992억 원을 납부하지 않은 채, 지난 2021년 11월 23일 향년 90세의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죽기 전까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사망하기 전부터, 특별사면을 받았던 전두환이 사망 후 대통령묘역이 마련된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국립묘지법에서 정하고 있는데,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사면·복권을 받은 경우에 대해선 별도 규정이 없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맡았던 바 있던 안현태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뇌물 수수 및 방조죄)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사면복권되었다는 이유로 2011년에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에 기습 안장된 바 있었기 때문에, 내란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별사면받은 전두환의 대전현충원 안장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국가보훈처는 '현행법상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능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씨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치고 장지를 정하지 못한 채 아직까지 연희동 자택에 임시로 안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9년 6월 6일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 참가자들이 소준열의 묘 앞에서 12.12군사반란 가담, 5.18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시위대 진압임무 수행 등을 이유로 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9년 6월 6일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 참가자들이 소준열의 묘 앞에서 12.12군사반란 가담, 5.18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시위대 진압임무 수행 등을 이유로 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임재근
 
내란죄 등으로 처벌받은 전두환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고, 늦은 감이 있었지만 전두환의 흔적을 대전현충원에서 철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전두환 이외의 5.18학살 책임자들이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두환이 찾아가 참배했던 5.18학살 책임자 유학성(장군 1묘역 2번)과 진종채(장군 1묘역 3번)뿐 아니라, 군사반란을 일으킨 '하나회'의 핵심이자 전두환의 비자금을 불법 조성하는 등 5공 비리의 주범인 안현태(장군 2묘역 178번), 5.18 광주 진압 당시 계엄군을 공식적으로 지휘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사령관 소준열(장군 1묘역 21번) 등도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5.18희생자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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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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