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기자말] |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홍어를 잡았다. 인근 예리항 상가 골목에서 단일 업종으로 가장 많은 점포가 홍어 가게다. 전국을 상대로 하는 중매인, 도매인과 홍어식당이 몰려 있다.
예리항 부두에는 홍어 모양으로 생긴 '黑山島(흑산도)' 표지석이 배에서 내리는 선객들에게 홍어의 본고장에 왔음을 알려준다. 대청도와 군산에서도 홍어가 잡히지만 홍어의 본고장이자 집산지는 누가 뭐래도 흑산도.
홍어 표지석 뒤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한 흑산도의 연혁이 빼곡하게 적혔다. 손암 정약전(정약용의 형)이 지은 <자산어보>는 비늘이 없는 고기인 무인류(無鱗類)의 첫 번째로 홍어를 소개하는데 설명이 흥미롭다.
암컷은 크고 수컷은 작다. 몸통은 연잎과 비슷하게 생겼고 색깔은 적흑색이다. 연한 코는 머리가 있는 위치에 있는데 몸에 붙어 있는 부분은 두툼하고 끝부분은 뾰족하다, 수컷은 생식기가 두 개 있다. 생식기는 뼈이고 생김새는 구부러진 칼과 같다. 그 아랫부분에 알주머니가 있다. 양쪽 날개에 가느다란 가시가 있어서 암컷과 교미할 때면 날개가 가시로 암컷을 걸어 붙잡고 교미한다. 혹 암컷이 낚시 바늘을 물고 엎드리면 수컷이 다가가 교미하기도 해서, 낚시 바늘을 들어올리면 함께 따라서 올라온다. 암컷은 먹는 것 때문에 죽고 수컷은 음탕함 때문에 죽는 것이니 색욕(色慾)을 탐하는 자들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
정약전은 수컷 홍어의 목숨을 건 색욕을 나무라고 있지만 후대에 DNA를 전달하려는 본능은 어느 동물에나 있다. 하필 사랑을 나누던 암컷이 어부가 내려보낸 낚시에 걸린 타이밍이 나빴을 뿐.
홍어는 수컷보다 암컷을 더 알아준다. 암컷이 크고 고기 맛이 좋다. 수컷의 생식기는 홍어 꼬리 양쪽으로 하나씩 붙어 있다. 수컷 생식기에는 가시가 숨어 있어 조업하다가 손을 다칠 수도 있어 어부들은 수컷을 낚자마자 배 위에서 생식기를 싹둑 잘라낸다. 맛도 떨어지고 가격도 싸니 미련 없이 쳐낸다.
홍어 늘게 한 신의 한 수
홍어는 걸낙을 이용해서 잡는다. 걸낙에는 고기를 걸리게 하는 갈고리인 미늘이 없다. 미끼를 끼우지 않는 여러 개의 낚시를 매달아 홍어가 헤엄치는 바다 바닥에 늘어놓는다. 날개를 퍼덕이며 헤엄치는 홍어의 속성을 이용한 낚시 도구다. 역사가 오랜 이 홍어잡이 방식이 2021년 해양수산부의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됐다.
남도 사람들은 잔칫집에서 내놓은 홍어로 상차림에 점수를 매긴다. 전라도에서는 잔칫상뿐 아니라 장례식에서도 홍어 음식이 나온다. 홍어는 살은 말할 것도 없고 뼈부터 내장까지 버릴 것이 없다.
정작 흑산도 영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먹지 않는다. 한 주민은 "생홍어회가 훨씬 쫀득쫀득한 식감(食感)이 좋다. 삭히면 이런 맛이 사라지고 톡 쏘는 맛만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삭힌 홍어에 입맛이 길든 사람들의 반론도 들어봐야 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나주와 가까운 고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으니 보통 사람들과는 기호가 같지 않다고 적었다.
삭힌 홍어는 원래 나주 영산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아 배에 싣고 며칠 걸려 영산포에 다다르면 운반 도중에 발효가 됐다.
삭힌 홍어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 냄새는 요소 성분이 분해되어 나오는 것이다. 암모니아는 그 자체로 인체에 해가 없고 부패 박테리아의 증식을 억제한다. 홍어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동안은 홍어의 살이 부패하지 않는다.
삭히는 기간은 보통 사나흘에서 일주일. 막걸리와 함께 신김치와 돼지 삼겹살, 삭힌 홍어를 싸서 먹는 홍탁삼합(洪濁三合)은 서울의 한정식집에서도 인기 품목이 된 지 오래다. 추운 겨울에 홍어 내장(애)에다 파릇파릇한 보리 순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이는 홍어애국도 한번 먹어보면 쉽게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홍어의 인공부화와 양식을 연구했으나 경제성이 떨어져 중단했다. 홍어는 부화에 3~6개월이 걸리고 한 번에 고작 4~6개의 알을 낳는다. 냉수성 어종인 홍어를 기르자면 양식장에 전기로 가동하는 쿨러를 설치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갔다.
반가운 소식은 흑산어장에 홍어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수요가 급증해 8kg 암홍어 한 마리가 100만 원을 호가했으나 지금은 홍어의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25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홍어의 산란기인 6월 1일~7월 15일에 홍어를 못 잡게 하는 금어기(禁漁期)를 설정한 것이 신의 한 수. 전국에서 홍어가 모여드는 흑산수협 위판장도 이 기간에는 문을 닫는다. 홍어의 오른쪽 날개 끝에서 왼쪽 날개 끝까지의 길이(체반장)가 42cm 미만은 잡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1454년 홍어를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기 <표해시말>은 흑산도 권역에서 홍어 매매가 중요한 경제 활동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철새들의 정거장
한반도의 서남단에 자리한 흑산군도는 목포에서 직선으로 약 115km, 중국 양쯔강 하구에서는 약 450㎞ 떨어져 있다. 봄, 가을 이동기에 한반도를 통과하는 많은 철새들이 월동지인 동남아시아와 번식지인 시베리아 등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흑산도를 기착지로 이용한다.
철새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장 좋은 환경에서 번식하기 위해, 또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이동한다. 여름 철새는 동남아시아 등 따뜻한 지역에서 겨울을 지내고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한다. 겨울 철새는 시베리아 등 고위도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다.
철새들의 번식지인 몽골, 시베리아, 알래스카 지역 등 고위도 지역은 면적이 광대하다. 시베리아 등 고위도의 겨울은 1월 평균기온이 영하 22도. 여름 2~3개월 동안 시베리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평균 온도가 14도로 높아져 눈과 얼음이 녹고 초원과 습지, 숲이 끝없이 펼쳐지며, 곤충 등 먹이가 풍부해진다.
번식이 끝나면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찾아 더 따뜻한 남쪽으로 철새들은 이동한다. 우리나라에 여러 종류의 물새, 맹금류들과 산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온다. 또 다른 조류들은 연중 온난한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고, 도요물떼새 중 큰뒷부리도요나 붉은어깨도요는 여름철엔 호주까지 이동한다.
철새들은 장거리 이동을 위해 출발하기 전에 평상시보다 많은 양의 체지방 (30~50%)을 축적한다. 이러한 급격한 지방 축적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비행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동 시기에 철새들은 5천~1만m 높이까지 올라간다.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칠발도는 신안군 비금면에 있는 무인도. 해수면 높이에 따라 7개 또는 8개의 섬이 보인다고 해서 칠발도로 불리었다. 원래 이름은 칠팔도였다. 동아시아 대양주 철새 이동경로의 서식지로 인증된 섬이다. 가장 큰 섬은 경사가 급한 종 모양으로 정상에는 1905년 설치된 등대가 있다. 바다제비는 약 1만쌍, 바다쇠오리는 최소 2천여 쌍, 슴새는 수백 쌍이 번식한다.
흰꼬리수리는 매우 큰 수리로 흑산도와 홍도에서 관찰되는 겨울 철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받은 천연기념물. 전신은 약 65~95cm, 양 날개를 편 길이는 1.8~2.5m에 이른다. 먹이는 육식성으로 연어 송어는 물론, 토끼 쥐 같은 소형 포유류, 오리 꿩 같은 날짐승 등을 잡아먹는다. 수달 가마우지 등이 사냥한 먹이를 빼앗아 먹기도 한다. 하늘의 멋쟁이 흰꼬리수리가 급격히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는 농약 살충제 등의 살포로 먹이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새장 열어 동박새 날려보낸 법정스님
흑산도 철새박물관은 1952년 여름방학 때 대학생 친구들과 흑산도를 찾은 법정 스님(속명 박재철)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흑산도 사람들은 동백나무 숲에 흔한 동박새를 잡아서 애완용으로 키우거나 새장에 넣어 관광객들에게 팔았다. 동박새는 귀엽고 목소리가 아름답다. 사진 속의 법정스님 앞에는 새장이 놓여 있다. 법정 스님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갇혀 있는 동박새가 불쌍해서 새장 문을 열어 풀어주었다고 사진 설명에 쓰여 있다.
흑산도 배낭기미 습지는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태풍 때를 제외하곤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는 담수 습지다. 버드나무, 찔레나무, 소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습지 중심부에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다. 다양한 먹이와 갈대숲 같은 은신처가 있어 철새의 중요한 보금자리.
세계적으로 1만1천여 종 철새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580여 종이 관찰된다. 이 중 400여 종이 흑산도를 거쳐가고 있다. 철새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흑산도는 성지 같은 곳이다. 흑산도에는 철새박물관 철새조각공원 철새연구센터가 함께 모여 있어 철새를 관찰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적의 학습장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강제윤, 《신안》, 21세기북스, 2020
김준, 《바다인문학》, 인물과사상사, 2022
정약전 지음/권경순 김광년 옮김, 《자산어보》, 더 스토리 2002
최성환, 《유배인의 섬 생활》, 세창미디어, 2020
흑산도 철새박물관 전시관 설명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