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노조는 군부정권의 역린인가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2022년 12월 8일 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위원장 정근식, 아래 진화위)는 1989년 노태우 정부의 전교조 건설 탄압 사건을 "위법적이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정하고 "국가는 안기부 등 전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사찰·탈퇴종용·불법감금·사법처리·해직 등 전방위적 탄압을 가함으로써 신청인들의 노동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직업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 중대한 인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권고하였다.
이어서 "국가는 이 사건 신청인들의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배 · 보상을 포함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요컨대 국가기관인 진화위가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소위 국가폭력(nation violence)에 희생된 국민들에게 국가가 의무적으로 사과하고 배 · 보상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전교조 대책 문건에서 전교조 사건을 체제수호와 안보 차원에서 다루었고, 정부의 11개 부처의 고위급 당국자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구성하여 전교조 탄압에 범 정부적 행정력을 총 동원하였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과도정부가 4.19교원노조를 와해시킬 때도 그랬다. 1989년은 1961년 군부정권이 벌인 데자뷔였고 쌍생아였다.
청와대 - 문교부 - 시도교위는 일사분란하게 전교조 가입 교사들을 대상으로 탈퇴공작에 들어갔는데,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대학동기, 모교, 지역사회 인사, 안기부, 보안사 등 민관군의 정보기관 등을 이용하여 불법사찰을 통한 혹독한 인권탄압을 자행하였다.
금도를 넘어선 공권력은 곧 국가폭력
진화위 결정서 105∼110쪽 '진드기공작철'에 따르면 전교조 주요활동가 27명을 대상으로 미행, 도촬, 가택침입, 문서와 서적 절도·편취 등 군 정보부대인 보안사가 민간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불법행위가 드러났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국민의 자유권적 기본권인 결사의 자유와 노동3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 행위였다. 국가권력이 금도를 넘어 국민의 기본 인권을 침해함은 더 이상 공권력이 아니라 국가폭력이었고, 국민에 대한 만행이었다.
결정서 115∼116쪽 <결론>에 의하면 공권력을 위법하게 행사한 국가기관의 구체적 행위를 대통령, 안기부, 문교부, 보안사, 경찰(당시 치안본부)로 나누어 일일이 적시하고, 당시 해직교사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사립학교법 위헌제청 사건에 헌법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명부를 작성하여 부당한 로비활동을 벌인 사실을 추가하였다. 이는 위법적 공권력 행사를 한참 뛰어넘어 삼권분립을 유린한 노태우 정부의 헌정파괴 행위였다.
2023년 9월 22일 발효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약칭: 과거사정리법) 제32조의 2항(국가기관의 권고사항 이행 노력 의무 등) 제③호에는 "소관 국가기관의 장은 제32조 제1항 또는 제2항에 따라 위원회가 보고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보고서에 포함된 소관 권고사항의 이행계획을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권고사항을 이행하였을 때에는 그 조치결과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제 국가가 나서 치유해야 할 때
1989년 전교조 탄압사건의 경우 위 제32조의 2항에 적시한 소관 국가기관의 장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다. 하지만 교육민주화동지회(회장 황진도)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한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다가, 재차 면담을 요청하자 뒤늦게 '아직 행정안전부 등에 이 사건에 관한 어떠한 처리 지침도 없어서 면담에 응할 수 없다'는 짤막한 답변을 보내왔다.
진화위의 전자문서 보고가 교육부에 도착한 지 넉넉잡아 반년은 훨씬 지났을 것임에도 아직 면담 요청에 대한 구체적 응답이 없다. 그간 서이초 사건 등으로 한동안 바빴음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1990년 전교조 결성과 활동 관련 1580명에 이르는 해직교사 가운데 한 명인 필자는 마음이 바쁘다.
사건 당시 필자는 36세였는데 이미 칠순을 넘겼고 40∼50대 선배교사들은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었다. 훌쩍 한세대가 지났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1989년 이후 구속-해직-(이혼)-병고에 이르러 유명을 달리한 해직동지가 이미 15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그 때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이미 90% 가까이 퇴직하였다. 현직 때 4~5년 혹은 10년 후배들과 같은 봉급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늘 쪼들리며 살아왔지만, 마음만은 한 때 이 나라 교육민주화와 사회민주화에 앞장섰던 긍지와 보람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현직 때는 매월 백 만원 이상, 퇴직 후도 대학동기들에 비해 월 40여 만 원 씩 더 적은 연금으로 버겁게 노후생활을 영위해오고 있다.
진정한 화해의 시작은 사과부터
교육부와 행정안전부는 진화위 권고사항 이행 의무 조항을 결단코 가벼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현 정부 여당의 전신인 노태우 정부 때 발생한 일이니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며, 두 번째 이유는 헌법 상 정체와 국체가 민주공화국인 점, 공권력의 연속성, 피해자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즉 민주헌정질서 수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키기 위해 헌신한 점 등을 정부당국은 무겁게 수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신속한 시일 내 국가, 즉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 등 당시 위법·불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방첩사),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장을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도 89년 전교조 해직교사들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이들은 국·공립교사들의 인사권자이기 때문이다. 사립교사들의 임면권자는 원래 사학재단 이사장이지만 당시 시도교육위원회가 생산한 공문에 따르면, 그들로 하여금 탈퇴서를 내도록 종용하고 불복하는 교사에게는 파면·해임(배제 징계)하여 보고토록' 하였으므로 모든 해직교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정부의 행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