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도중 악취가 났다. 일터 근처 다른 사업장에서 유해가스가 유출되었다고 한다. 소방서에서는 누출지점보다 더 멀리 사는 주민들까지 대피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은 아무런 말이 없다. 이 상황에서 나와 동료들은 계속 일해야 하는 걸까?
2016년 7월 16일, 세종시 부강공단의 한 사업장에서 '티오비스'라는 물질이 300L 이상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티오비스는 공기 중에서 산소와 결합하면 황화수소로 바뀌어 사람에게 치명상을 일으킬 수 있는 페놀계 화학물질이다. 당시 사고를 수습하던 세종소방본부는 반경 500m 내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조남덕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장은 당일 소방본부와 통화를 통해서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불어 고용노동부에 위험 상황 신고를 접수하고 사업장으로 방문한 근로감독관은 사고로 인한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피 권고를 했다. 이 상황에서 조남덕 지회장은 과감하게 동료들을 대피시켰다.
사측은 조 지회장과 동료들에게 공장에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하라고 시켰고,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 대가로 조 지회장은 회사로부터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조 지회장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진행했다. 1, 2심에서는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지난 11월 초 대법원은 파기 환송했다. 작업중지권을 이유로 회사가 노동자를 징계할 수 없다고 판단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조 지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7년여 만이다(관련 기사 :
대법, '작업중지권 징계는 부당' 첫 판결... "거부할 권리를 보편적 권리로").
4년 전인 2019년 7월 <일터> '현장의 목소리' 코너에서,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과 활동을 주제로 조남덕 지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지금, 조남덕 지회장을 다시 만나 재판 과정에서의 소회와 앞으로의 과제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콘티넨탈지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길었던 재판, 작업 중지 범위 확대라는 남은 과제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장 조남덕입니다. 콘티넨탈은 자동차 부품회사인데요, 주로 자동차 계기판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현장에서 근무하고 오후에는 지회장으로서 노동조합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입사한 지 26년이 지났네요."
- 작업 중지 행사와 사측의 부당징계 후 7년간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판단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줄 몰랐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평소 작업중지권에 대해 많이 고민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2014년의 충격적인 세월호 사고를 경험하고 안전에 관해서는 스스로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에서 대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징계를 받았습니다. 1심에서 패소했을 때는 왜 졌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등법원에서는 이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고등법원에서도 지더라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법관들의 법리 판단이 많이 다른 거 같습니다.
고등법원에서도 패소하고 나서 노조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제가 2심도 진 마당에 대법원에서까지 패소라는 오명을 쓰긴 싫었어요. 그래서 대법원에서의 재판은 포기하는 게 어떨지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어요. 조합원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행사한 작업중지권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작업중지권 행사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고 다른 사업장에서의 소송에도 영향을 질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3심까지, 끝까지 가보자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재판에서 지다 보니 재판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습니다. 대법원 판결 며칠 전에 우리 조합원들에게 재판에서 이길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단 좀 높진 않겠냐고 농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판결 날 재판정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재판이 이겼다고 변호사분들이 알려주시더라고요. 조합원들이 그 소식을 듣고 좋아했습니다."
- 1, 2심에서도 승소를 예상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고가 났는데 조합원 상당수는 이를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이미 119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떨어진 곳 주민들을 대피시키기도 했고, 근로감독관도 대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한 상황이었는데도요. 소방서에 신고하니 그 티오비스란 물질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니 대피 명령을 들으신 게 없냐고 되묻더라고요. 이런 상황이면 긴박한 상황 아닙니까? 이럴 때도 작업중지권을 못 쓰면 언제 씁니까?"
- 대법원에서는 1, 2심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며 다시 판결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 했는데요, 앞으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긴 합니다. 다만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에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하고 있잖아요. 이 '급박한 위험'의 기준이 명확하진 않아요. 이번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이 '급박한 위험'의 기준에 관한 내용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대법원에서 승소했다고 마냥 좋아할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제 사안은 이겼지만 이후 작업중지권 적용의 범위를 정하는 파기환송심 재판이 중요할 거라고 봅니다. 변호사도 이 쟁점에 집중하겠다고 하셨어요. 이 기회에 파기환송심에서 작업중지권 적용의 범위를 넓혀 현장의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7년이라는 긴 기간 소송을 하셨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복잡한 사안도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되묻고 싶습니다. 고등법원에서는 2018년 패소했는데 이후 대법원에서 5년 동안 끌고 있었거든요. 변호사들한테 물어보니 재판부가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승소하면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파업권처럼 활용할 것이라는 자본의 압박은 항상 있었고요."
"소수노조지만, 끝까지 노동조합 활동을 해나갈 겁니다"
- 현재 복수노조라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2012년, 회사가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로 악명 높은 노무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기업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상당수 조합원이 기업노조로 넘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제가 지회장을 했어요. 사측은 기업노조와는 일주일 만에 교섭을 끝내고 성과급도 주면서, 우리와는 교섭을 3년 동안 질질 끌었습니다. 금속노조에 남으면 피해를 본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많은 조합원이 기업노조로 옮겨간 상황 속에서, 50명 정도 남아 노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합원들이 회사노조로 옮겨갔던 시기인 2016년에 화학물질 유출과 작업중지 사건이 터진 거지요. 1, 2심 재판 중에 제가 우리 노동조합을 부각시키고 선명성을 드러내려는 노조 활동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발동했다는 사측의 주장을 듣고 너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소수노조가 되고 힘든 점도 많지만, 이전엔 느끼지 못한 동료애를 느낍니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노동조합 활동이 힘든 상황에서도 남아 있는 50명의 조합원은 헌신적입니다. 정년 퇴임한 한 선배님은 양심 때문에 노동조합에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측에 한 번도 제대로 저항하지 않은 노동자들이라도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지원하고 있기도 해요. 이 힘들이 노조 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양심과 헌신에만 기댈 순 없어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쉽진 않네요."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요?
"사용자 측에서는 작업중지권의 범위가 넓어지면 노동자들이 이를 악용하여 일을 안 할 거라는 우려를 합니다. 저는 현장 노동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채 작업중지권을 남용한다면, 그런 경우도 많이 없겠지만, 당장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내년 2월 10일 파기환송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가 나와 작업중지권을 통해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소수노조의 활동을 제한하는 복수노조 교섭 단일화 제도의 문제를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기가 첫 직장입니다. 이제 정년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한배를 탄 우리 조합원들과 끝까지 노동조합을 잘 꾸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영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12월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