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비서관이 글을 잘 쓰네."
책을 읽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줄평'입니다. 정작 청와대에서 그를 위해 메시지를 쓸 때는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할 당시를 기록한 책을 냈습니다. 올봄부터 작업한 책 <대통령의 마음>, 제 이름을 단 첫 책입니다. 지난 12일, 하필이면 12·12 군사반란 44주년에 나와 서점에 배포됐습니다.
인생에서는 우연과 인연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듯합니다. 24년간 다니던 경향신문사를 2017년 2월 그만뒀습니다. 그간 맺은 인연의 자장(磁場)에 이끌려 우연히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해 5월 17일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홍보기획비서관, 연설기획비서관으로 우당탕퉁탕하며 20개월을 보냈습니다.
청와대 퇴직 후 직장에 들어갔다가 임기가 끝나 백수가 됐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벌어지는 일입니다. 속담처럼 '배운 게 도둑질'입니다. 글을 쓰던 이가 할만한 일이 글쓰기였습니다. '기록을 남기자'. 그렇게 해서 책을 쓰게 됐습니다. 필연인 듯합니다.
이 책은 대통령의 말과 글로 본 국정 운영 기록입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지향은 말과 글로 발화돼, 토론을 거치고 국민 동의를 얻어 정책과 제도로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을 풀어 썼습니다.
대통령의 연설과 글에 얽힌 이야기들, 남북정상회담, 국무회의와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정부 운용과 외교 분야의 고군분투 등을 담았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극비리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만난 두 번째 회담 등 비화도 들어있습니다. 왜 문 전 대통령은 말을 답답하게 했는지, 술도 맘 놓고 못 마셨는지, 아침마다 눈이 충혈된 채 출근했는지도 나옵니다. 대통령론, 리더십론도 제 나름대로 다뤘습니다.
써놓고 보니 전현직 대통령이 참 다르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언행과 태도 등에서 극과 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호오(好惡) 여부는 지지하는 이들에 따라 다르겠지요.
"일단 잡으면 마지막까지 읽게 됩니다"
평생 글을 썼지만, 책을 만들겠다고 덤빈 건 처음입니다.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글쓰기 작업은 3개월 걸렸습니다. 출판사를 찾는데 3개월, 출판 계약을 하고 원고 다듬는 작업에 다시 3개월 이상 지나갔습니다. 글의 3분의 1을 갈아엎다시피 하고, 교정과 교열을 거듭했습니다.
출간 중간 단계에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습니다. 지난 9월 27일 [문재인의 말과 글] 시리즈 1편 '문재인 대통령을 거론하는 일이 많다면'이 나갔습니다. 저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 독자들의 반응과 요구도 글에 다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제 나름의 소통 방안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필요한 내용을 보충했습니다. 책이 400페이지가 넘은 이유입니다(관련 기사:
문재인 대통령을 거론하는 일이 많다면 https://omn.kr/25sfi ).
아시겠지만 글은 요물입니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더 좋은 글귀가 떠오르고, 더 괜찮은 에피소드가 짠~하고 나타납니다. 오탈자를 살펴 탈고했지만, 못마땅한 부분이 튀어나옵니다. 마지막 교열본을 넘기기로 약속한 날엔 2시간만 자고 글을 손봤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읽어보면 마뜩잖은 부분이 눈에 띕니다.
추천사를 세 분께 받았습니다. 추천사로 책 자랑을 갈음하겠습니다. 친구이면서도 상사였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입니다.
"읽는 내내 당시의 장면들을 어떻게 이리도 생생하게 재생해 낼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한 백서를 떠올린다면 오산입니다. 최우규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여의도 언저리의 책을 끝까지 읽은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일단 잡으면 마지막까지 읽게 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추천사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전복되는 지금, 저자가 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복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지 인격자 문재인을 부각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퇴행과 역진이 있더라도 역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오랜 인연으로 엮인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대통령의 마음>에서 저자는 대통령의 말과 글이 어떻게 탄생해 어디로 귀결되는지를 자세히 묘사합니다. 대통령 권력이 작용하는 시스템과 과정을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피사체인 대통령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도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탁월한 관찰력과 꼼꼼한 메모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 권합니다."
박성제 전 MBC 사장도 소셜 미디어에 제 책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최근 <MBC를 날리면>이라는 책을 냈고, 저는 <오마이뉴스>에 관련 내용을 기사로 썼습니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책을 냈다면? '뻔하지. 문재인 전 대통령 후광 좀 받아 출마하려고 하는구만.' 하지만 <대통령의 마음>은 다릅니다. 저자인 최우규 전 비서관을 제가 잘 알거든요. 그는 정치에 저~언혀 관심 없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말과 글은 그 자체로 사료이자 중요한 기삿거리입니다. 최우규는 그 초안을 잡았던 사람입니다. 읽다 보면 '아, 그때 문 대통령의 그 발언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이해하게 됩니다. 소중한 기록이지만, 이 책의 가치는 기록보다 재미에 있습니다."
문 대통령도 챙겨본 '문재인의 말과 글'
책이 나온 날인 12월 12일, 문재인 전 대통령께 책을 드리려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11개월 만에 본 문 전 대통령 제게 대뜸 "내 글이 진중하다더니 최 비서관 글도 그렇던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문재인의 말과 글'을 챙겨 읽은 것입니다(
연재 바로보기).
이날 문 전 대통령께 "과거에 제 원고가 엄청나게 고쳐져 내려와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은 예의 그 진중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와는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올라온 글을 갖고 당시 상황에 맞게 글을 (내가) 고치는 것이지요. 초고가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아무것도 없이 인사말을 쓰는 것보다, 초고를 갖고 쓰면 훨씬 잘 되죠."
옛 부하 직원을 보듬는 위로인가 싶기도 합니다. 만남 사흘 뒤인 12월 15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에 제 책을 추천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양산 사저의 비서들에게 추천 내용을 메모로 건네면서 "최 비서관이 글을 잘 쓰네"라고 했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때 "격조 있는 글에 재미를 겸했다, 널리 일독을 권한다"라며 "읽으면서 '(저자가) 그런 일까지 다 기록해 두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라고 책을 추천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실에서 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오래 보좌한 비서가 있습니다. 그에게 제가 책을 건네며 문 전 대통령이 추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추천사) 저도 봤어요. 진짜 극찬하신 거에요"라고 합니다. 저는 저 글이 왜 극찬인지 구분하지 못했지만, 오래 모신 비서가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합니다.
다들 좋게 봐줘서 글로 다 옮기기에 면구합니다. 기자는 감정을 억누르고 객관적으로 보고 써야 합니다. 그런 훈련을 20년 넘게 하면 자기 이야기하는 게 어색합니다. 지금도 주어가 없거나, '기자는~', '필자는~'이라고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기자 칼럼을 읽는 게 익숙합니다. 그래도 이 책을 알리는 것은, 출판사에 대한 책임이기도 해서입니다. 그래서 얼굴 붉히면서도 이렇게 자화자찬을 씁니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들의 것입니다.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오마이뉴스 연재와 책에도 썼듯, 이건 위인전도 평전도 아닌 말 그대로 '기록'입니다. 대하소설 같은 한국 국정의 아주 짧은 미세사입니다. 술 한잔만 한 양의 물이라도 보태 장강(長江)이 흐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우연히 이 글을 읽으신 <오마이뉴스> 독자분께 제 책이 닿는 인연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