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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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봤어요"... 좀도둑 많다던 스페인서 감동한 사연'(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아들과 함께 스페인을 떠나, 모로코 카사블랑카 시내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직원은 호텔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고 했다. 분명 '예약확정서'까지 받았는데도, 예약 과정의 오류 때문인지 예약은 안 됐다는 설명이다. 어렵게 전화로 연결된 여행사 직원과 호텔 직원을 서로 통화하게 했지만, 실랑이가 계속 이어졌다.
기다리다 못해 호텔 직원에게 빈방이 있는지 물었고, 다행히 빈방이 남아 있어 비용을 새로 지불하고 밤 11시가 넘어 간신히 체크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홉살 아들이 곤히 잠들어있던 새벽 내내 나는 여행사 직원과 환불 및 사후 처리 내용을 협의하느라 잠을 설쳐야 했다. 결국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근처 마트에 가서 간단한 비상식량과 음료를 사고 마라케시로 향했다.
모로코는 사막과 바다 그리고 만년설이 덮인 아틀라스에 다양한 문화유적까지 갖고 있는 다채로운 나라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일주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여행하기로 해 그중 가장 유명한 사하라(Sahara)와 야시장으로 유명한 마라케시(Marrakech), 그리고 9천 개의 골목을 가진 도시 페스(Fes) 3곳에 가 보기로 했다.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까지는 고속도로도 있고 도로 상태가 좋아 3시간이 채 안 걸려 도착했다. 하지만, 호텔에 가까워질수록 시내는 길이 점점 좁아졌고,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제마 엘프나 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중심가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는데 호텔 주변은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관광객도 호객꾼도 넘치는 나라... 팁 당당히 요구하는 현지인
우리 차가 멈추자, 주변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현지인들이 여기저기서 다가왔다. 다가온 현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여기부터는 길이 없다며 자기가 안내해 준다고 했다. 길 안내를 부탁하면 당연히 팁 요구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차피 지도로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도움을 받기로 하고 한 청년에게 안내를 맡겼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자 청년은 예상대로 팁을 요구했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며 1유로짜리 동전을 주자 청년은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한테 10달러는 돈도 아니잖아요. 10달러 주세요."
당시 현금이 없기도 했지만, 모로코 현지 물가(2022년 기준, 1인당 연간 국민소득 3,300달러)를 생각할 때 우리 돈 1,400원 정도 하는 1유로짜리 동전도 팁으로 적은 편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웬걸, 현지인들은 겨우 200m 길 안내 대가로 우리 돈 1만 3000원 정도를 팁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숙소 벨을 눌러 직원을 부르려 하자, 청년의 다른 일행들이 우리 부자를 둘러싸고서는 협박하듯 다시 말했다.
"10달러만 주세요. 당신들 돈 많잖아요."
나는 웃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 돈 없어요. 이거 드릴게요."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아 2유로를 청년의 손에 강제로 쥐여 줬다. 그러자 그 청년은 됐다며 다시 동전을 돌려주고 그냥 가버렸다. 오히려 그 돈이라도 주려 했던 내 손이 무안해졌다. 청년과 일행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했다.
'단순히 길 안내 몇 분 하고서 우리 돈 3천 원 정도의 팁을 받는 건 자존심 상할 정도로 잘 사는 청년인가 보다.'
호텔에 짐을 정리하고 나와 제마 엘프나 광장으로 가며 아들에게 말했다.
"태풍아,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장난감 같은 거 주면 받으면 안 돼."
"왜? 그냥 주는 것도 받으면 안 돼?"
"그거 그냥 주는 거 아냐. 다 돈 달라고 할 거야."
"진짜? 알았어. 난 아빠만 보면서 갈게."
"아니다. 그냥 우리 선글라스 끼고 가자."
우리는 선글라스를 꼈다.
불 밝힌 야시장 보고 싶었지만
마라케시는 유명한 관광지답게 골목마다 외국인들을 주시하며 호의를 베풀려는 청년들이 넘쳐났다. 광장으로 가는 골목은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이 모여있었고, 처음 맡는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광장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악기 소리로 시끄러웠다.
제마 엘프나 광장은 낮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해 질 무렵이 되면 음식점도 더 많아지고 특히 음식점의 조명이 여기저기 밝게 켜져 있어 아주 아름답고 활기찬 곳이다.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던 피리를 불며 뱀을 춤추게 하는 상인과 원숭이 공연이 있어 재미있게 둘러봤다. 그리고 매일 낮에는 모두 철거했다가 저녁 무렵 다시 설치해 장사한다는 포장마차에서 모로코 전통 음식을 먹었다. 음식도 생각보다 한국인 입맛에 맞아 아주 맛이 있었다.
하지만, 광장뿐만 아니라 거리를 걸을 땐 옆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로 인사하는 현지인들이 너무 많아 아예 무시하고 다녀야 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호객꾼이 넘쳐났다. 불을 모두 밝힌 환한 야시장을 꼭 보고 싶었지만, 밤늦게까지 아들과 광장에 있기에는 부담이 돼서 해가 지기 전에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바로 사하라의 관문이라 불리는 메르주가(Merzouga)로 향했다. 마라케시와 메르주가 사이에는 모로코의 길이보다 긴 약 2000km의 아틀라스산맥이 있다. 사하라를 보기 위해서는 이 아틀라스산맥을 넘어야 한다.
모로코에 오기 전, 아틀라스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한 나는 어린 아들과 둘이 하는 여행이니 '경차로 운전해도 충분하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거기에 시베리아에서 경험한 운전경력은 나에게 자만심을 한껏 불어넣고 있었다. 그래서 경차에 아들을 태운 채 아틀라스 산맥으로 용감하게 들어갔다.
나의 자신감은 점점 더 산으로 올라갈수록 불안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프리카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고, 도로옆 계곡은 스위스의 알프스처럼 깊고 길게 이어졌다. 30분도 안돼 급속도로 겸손해진 나는 자책하며 생각했다.
'아…. 아들이 힘들어서 멀미할 것 같은데.'
중간중간 바람을 쐬며 기지개도 켜고 하면서 아들이 어떤지, 아들 몸 상태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우리 차는 점점 더 높이 구름 속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고도계를 켜보자 벌써 해발 2000m가 넘어 있었다. 걱정했던 대로 아들이 슬슬 멀미를 하는 것 같아 길가에 차를 잠시 세웠다. 우리는 어느새 백두산 천지(2190m) 보다 높은 해발 2260m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들이 차 옆에서 스트레칭을 한 뒤에 첫 번째 헛구역질을 했다.
시베리아에서는 하루 만에 680km를 운전한 적도 있었고, 가장 오래 운전한 날은 하루 11시간 30분 동안 계속 차에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그것도 중간에 딱 한 번 10분 정도만 쉬었다). 그때도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들은 힘들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는 560km 정도 거리였고, 내비게이션 예상소요시간도 9시간이어서 나는 이번에도 아들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틀라스산맥이 이렇게 높을 거란 생각은 못 했고, 또 하필이면 트렁크도 없는 작은 경차라서 뒷좌석에 앉는 아들이 멀미를 더 심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초조한 나의 입장을 전혀 배려할 생각이 없다는 듯 아틀라스의 구불구불한 산길은 2시간 넘게 계속 이어졌고, 그 즈음 아들이 두 번째 구토를 했다. 아틀라스산맥은 높은 구간만 몇십 km가 이어졌고, 낮은 지대로 내려와서도 자동차 경주장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200km 넘게 이어졌다.
아빠 자만심에 대한 대가인가... 축 처진 아들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었다. 맞은편 차선에서는 오프로드 경주용 자동차와 사막용 4륜 자동차 같은 특이한 생김새의 차량이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는 듯 대열을 지어 운전했다는 것. 그런 무리가 자주 보였다.
나중에 호텔에 돌아와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로코는 '다카르 랠리' 참가 차량이 지나가는 구간이기도 했다. 다카르 랠리는 '엔진이 달린 지상용 탈 것으로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자동차 경주' 중의 하나로 불렸다고 한다.
종합하면, 무식한 아빠는 9살 아들을 국산 경차에 태우고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자동차 경주 대회의 구간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라케시와 메르주가 사이에는 큰 도시도 없고 숙소를 구하기 힘들어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는 메르주가까지 가야 했다. 나는 멀미와 구토로 지쳐 있던 아들이 걱정돼, 중간중간 직선 구간이 나올 때마다 과속할 수밖에 없었다.
메르주가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산악지대보다는 도로 주변으로 모래 더미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회전 구간에는 모래가 날려 도로를 덮고 있어 위험한 구간이 많이 있었다.
사막에서의 운전은 처음이라 나름 조심히 운전한다고 했는데 호텔까지 20km 정도를 남겨 놓고 인적이 드문 삼거리에서 경찰관이 우리 차를 멈춰 세웠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안 그래도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는데 걱정하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인가요?"
"안녕하세요. (당신들은) 교통신호를 위반했습니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단순한 차선위반에 대한 처리도 약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걸 지켜본 나는 모로코 경찰관도 그럴까 봐서 매우 초조해졌다. 여권과 면허증을 꺼내며 조급한 마음에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고, 차에서 내리면서 또 한 번 자책했다.
'아…. 아들한테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참자고 백번쯤은 말하며 달랬는데...'
경찰 단속을 받으며 아들이 걱정돼 뒷좌석을 보니, 아들은 이미 몸에 힘이 빠져 축 처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