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금호강 팔현습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금호강 방촌 쪽 제방에 서니 동편으로 검붉은 빛이 올라오면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얼른 강촌햇살교로 걸어들어갔다. 금호강에선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안개 피는 금호강 팔현습지의 환상적 일출
물안개 피어오르는 금호강 일출이라니, 그 모습만으로도 장관이었다. 퍼뜩 카메라를 켜 그 모습을 담았다. 그 풍경만으로도 장관이 따로 없는데, 청둥오리가 날고 물닭이 물 위를 날 듯 내달려 저 멀리 달아난다. 큰기러기 무리가 울더니 한 녀석이 기지개를 켠다. 환상적이란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환상적 금호강 팔현습지'의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강촌햇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나오는 하천숲으로 들었다. 하천숲 가운데로 들자 그곳으로 비춰들어오는 아침햇살이 하천숲 앞 습지로 고르게 퍼진다. 지난밤 조금씩 내렸을 새하얀 서리 위로 아침햇살이 올올이 펴져 나간다. 그 역시 장관이었다. 팔현습지 하천숲에서 맞이하는 일출 또한 팔현습지 풍광의 백미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하천숲이 끝나면 왼쪽으로 하식애(河蝕崖)가 나타나고, 그곳엔 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이곳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수리부엉이 부부가 살고 있다. 팔현습지엘 오면 하식애 앞에 서서 녀석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불문율일 정도로 필자의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워낙에 짙은 갈색과 검붉은색의 보호색으로 무장한 녀석이다. 자주 앉아 있던 곳에서 잠을 청하면 찾기가 수월하지만 날마다 잠자리를 바꾸길 좋아하는지 잠자리를 옮기면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날도 한참을 탐색한 다음 나무 뒤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고 있는 수컷 수리부엉이 '팔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녀석이 그곳에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주로 앉는 몇몇 포인트가 있지만 이렇게 처음인 곳에 앉아 있으면 찾아내기 어렵다.
함께 온 생태사진가 박세형 선생은 "일요일에 잘 보이지 않더라. 일요일마다 저 너머 숲으로 가는지 일요일엔 올 때마다 녀석들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찾았냐"면서 칭찬했다. 그러면서 "수리부엉이가 오늘은 주일 예배를 빼먹었나 보다"고 농담을 던졌다.
암튼 둘이 함께 보인 적도 최근 왕왕 있었는데 이날은 수컷 '팔이'밖에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암컷 '현이'는 포란에 들어가 알을 품고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팔이'가 잠자는 모습을 필드 스코프(고배율 망원경)로 오래도록 감상한 후 왕버들숲으로 향했다. 왕버들숲 앞에 이르자 저 멀리 강 한가운데서 50여 개체는 넘는 큰기러기 무리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거리가 한참 멀었는데도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쳐들어 낯선 이방객을 경계한다.
이럴 땐 빨리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탐조 예절이라 얼른 자리를 피하자 녀석들도 안심하는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잠을 청한다. 사람과의 경계가 딱 그만큼인 것 같다. 사람이 더 가까이 다가가도 새들이 경계하지 않는다는 서유럽 어느 나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제쯤 우리도, 새들에게 다가가도 녀석들이 경계하지 않고 인간을 같은 동물로 받아들여줄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큰기러기 무리를 피하자 이번에는 휘파람을 불며 재바르게 움직이는 쇠오리 무리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휘리릭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이 소리를 내면서 얼룩무늬 얼굴을 한 녀석들을 보고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처럼 팔현습지에는 참으로 다양한 새들이 많다. 금호강 대구 구간에서 안심습지 다음으로 다양한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이곳 팔현습지다.
팔현습지는 다양한 새들과 아름다운 하천숲과 하식애 그리고 원시 자연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숨은 서석처'인 왕버들숲이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 모습도 팔현습지의 일면일 뿐 팔현습지 전 구간엔 또다른 보물들이 숨어 있다. 그 보물들은 다음 편에 소개하도록 하자.
팔현습지는 야생의 땅, 그곳에 인간의 이기를 심으려는 환경부
왕버들숲을 벗어나 하식애 앞 너른 초지를 훑으며 지나간다. 혹여 수리부엉이 부부가 사냥을 한 흔적을 또 발견하지 않을까 해서. 숲새들이 깰세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너른 평야와 같은 초지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수리부엉이에게 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작은 깃털들이 어지러이 널렸고 갈퀴가 있는 다리 한쪽이 남았다. 물닭이 당한 것이다. 물닭이 많은 것도 이유겠지만 수리부엉이가 즐겨 사냥하는 녀석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 옆에는 수리부엉이의 소행임을 입증해주는 것이 놓였다. 먹이를 그대로 삼기큰 수리부엉이의 특징상 소화시키지 못한 것들이 뱃속에 쌓이면 그것을 한번씩 뱉어내는데 그것을 '팰릿'이라 부르는데 그 깃털이 잔뜩 뭉쳐진 팰릿 조각들이 세 조각이나 널려 있었다.
지난밤 물닭을 사냥하고 다 먹은 후 뱉어놓았는지 물닭을 먹기 전에 뱉어놓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팰릿의 확인은 그 현장이 분명 수리부엉이의 소행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팔현습지 구석구석에는 수리부엉이의 흔적이 서려 있다. 수리부엉이의 땅인 것이다.
이날 팔현습지 물안개를 시작으로 하천숲과 하식애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리부엉이 부부와 왕버들숲이란 명물을 살펴보았다. 뿐만 아니라 팔현습지에는 큰기러기 같은 멸종위기 겨울철새와 와 청둥오리, 쇠오리 같은 어여쁜 오리들 그리고 검은색 물닭과 민물가마우지와 텃새인 백로와 왜가리가 살고 있다. 팔현습지는 바로 이들의 땅이다.
그런데 이들이 땅인 이곳에 인간 이기(利器)가 들어서려 한다.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로 된 8미터 높이의 보도교를 놓아서 사람들이 밤낮 오가는 길을 놓으려 한다. 원래 길도 아닌 하식애 절벽 앞으로 170억 원의 국민혈세를 들여서 새 길을 굳이 내겠다는 것이다. 맞은편으로 잘 닦여 있는 산책로도 존재하는데 말이다.
탐욕의 '삽질'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 탐욕의 삽질을 환경부(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가 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할 환경부가 멸종위기종들과 수많은 야생의 친구들이 살고 있는 그들의 집 앞으로 기어이 길을 내야만 할까. 환경부가 뭘 하는 곳인지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의 대오각성을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돋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