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정규시즌이 지난 23일 시작되었다. 야구 유튜브와 야구 소설과 영화로 버텼던 비시즌 기간이 끝났다. 개막 일주일 전쯤에 롯데 자이언 유튜브 채널인 자이언츠TV에 새로 온 선수들의 응원가가 올라왔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정규 시즌 스케줄을 확인했더니 직관 갈 수 있는 서울 및 수도권 구장의 롯데 경기가 많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막전을 인천문학구장에서 한다는 것이다. 바쁜 일정을 조절해서 겨우 개막 다음 날 직관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직관을 보러 가는 건 꼭 여행을 가는 것 같다. 먹을 것과 응원 도구, 유니폼을 챙긴다. 가서 맥주를 마실 때가 많아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평소에 하숙생인 줄만 알았던 사람들과 대화하며 '우리가 가족이었군' 하고 느낀다.
한 시간 전에 올라오는 선수 라인업을 보며 '어떤 선수가 없네', '선발 투수는 누구네', '문학 구장에 맛있는 치킨이 뭐였더라' 하는 별 것 아닌 대화를 하며 하하 웃는다.
3월 24일, 롯데와 SSG와의 경기. 0:0 스코어가 이어지더니 5회에 SSG가 2점을 뽑으며 앞서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7회에 또 3점을 내준다. 최정의 홈런. 여유롭게 뛰는 최정과 구장이 떠나가라 응원하는 SSG팬들. 스코어는 0:5로 벌어졌다.
SSG의 공격 시간은 긴데 롯데의 공격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지. 치킨, 과자, 오징어, 아이스크림 등 간식을 많이도 샀는데 응원 시간이 짧아서인지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아 배가 안 고프다.
점수 차가 5점인 상황에서 8회가 되니 많은 사람이 짐을 챙겨 일어난다. 원정팀 자리가 점점 비어간다. 8회 말에 SSG에게 또 한 점을 내주고 나니 더 많은 사람이 간다.
"아니, 왜 집에 가는 거야? 이기는 경기를 보러 온 거야?"
"맞아. 우린 새 선수들 응원가 부르러 왔잖아."
"그래. 우린 그냥 응원가 부르고 선수들 응원하러 온 거지. 그치?"
우리 가족은 이런 말을 나누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정신 승리를 한다.
스코어는 6점차. 9회 초가 되었다. 롯데의 마지막 공격이다. 그때 내가 바랐던 건 이기는 게 아니라 한 점만 내는 거다. 그냥 이렇게 끝나면 다음 날은 경기가 없는 월요일인데, 선수들도 팬들도 아쉬울 것 같다.
"한 점만, 한 점만."
9회 2아웃 상황. 박승욱이 적시타를 쳐서 드디어 기다리던 한 점이 났다. 롯데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원정팀 응원 좌석은 흡사 롯데가 SSG를 역전한 분위기다. 내 딸은 짝짝이(흔들면 박수가 쳐지는 응원도구)를 하도 흔들어서 중간 부분이 부러졌다.
일 점이 났으니 됐다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고승민이 2루타를 쳐 3타점을 냈고 레이예스가 2점 홈런까지 치면서 6대 6 동점을 만들었다. 말로만 듣던 9회 2아웃 상황에서의 득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눈으로 본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남편과 딸과 껴안고 방방 뛰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9회 말, 바로 SSG 예레디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뒷심이 부족했던 롯데가 변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가 갔던 대부분의 직관에서 롯데는 이기다가 나중에 역전당할 때가 많았다. 롯데 자이언츠팀에게는 미안하지만 '뒷심이 부족한 게 나와 비슷하군' 하면서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날은 비록 졌지만 달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준 롯데 선수들에게 고마웠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이게 바로 졌잘싸지."
딸과 나는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승패와 관계없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나도 뒷심을 키우고 싶어졌다. 성취와 상관없는 그런 태도를 말이다.
올라온 3월 24일 경기 기사를 보니 롯데의 개막전 2연패가 아쉽다는 내용이 많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 KIA와의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어제 직관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롯데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왜 그리들 성급한가. 아직 142경기가 남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