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눈도 없으면서 정치는 왜 하는 건지... 윤석열한테서 팽당할 줄 몰랐나? 어휴." - 김아무개(53, 자영업)
"지금 당장은 (당선이) 안 되더라도... 그렇게 밉상은 아닌 것 같아요." - 나철성(46, 사업)
"여당 쪽으로 조금 밀어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누구를 밀어야 할지) 고민이 좀 돼요." - 최아무개(70)
이준석(38) 개혁신당 후보를 향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시민들의 시선은 몇 갈래로 나뉘었다.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대표를 맡아 윤석열 후보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이른바 '세대포위론' 선거전략을 내세워 윤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는 '책임론'이 가장 컸다. 4.10 총선을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거세질수록 그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탄 7동에 거주하는 강아무개(59, 회사원)씨는 "여긴 돈 없는 젊은 사람들이 아파트 당첨돼서 온, 태생이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며 "진보면 진보지, 보수를 개혁한다는 건 어차피 보수라,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40~50대는 (이준석 후보를) 크게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에 언급한 70대 최아무개씨처럼 이준석 후보로 인해 보수표가 갈릴 것을 우려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다. 나철성씨는 이 후보에 대해 "옳은 말도 많이 하고 여야를 떠나 대화가 통할 것 같다"고 했지만, 또 다른 제3지대인 조국혁신당에 표를 주겠다고 했다. 이준석 후보의 개혁신당이 노렸던 중도·무당층의 표심이 조국혁신당으로 흡수되는 모양새다.
화성시의 4개 국회의원 선거구 중 화성시을은 동탄 4, 6, 7, 8, 9동을 권역으로 하는 동탄2신도시 지역이다. 지역 평균 연령 34.6세,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다. 동탄신도시 중심 지역에 비해 아파트 가격이 낮고 평수도 작아 신혼부부가 많이 산다. 현대·기아자동차,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직장인들도 많다. 이원욱 의원이 민주당 소속으로 19대부터 내리 3선을 한 '민주당 우세 지역'이다. 이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개혁신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선거구 개편에 따라 신설된 화성시정(동탄 1, 2, 3, 5동)으로 옮겨 출마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영운(59) 전 현대자동차 사장을, 국민의힘이 한정민(39) 삼성전자 DS부문 연구원을 전략 공천하면서 공교롭게도 기업 간 대결 구도가 됐다. 총선 지역구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공영운 후보가 줄곧 큰 차이로 앞서고 있다. KBS가 (주)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화성시을 선거구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공영운 후보 48%, 이준석 후보 24%, 한정민 후보 19%로 집계됐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당이 힘을 써야 할 상황인데..." vs. "부자 세금은 깎아주면서..."
국회의원 후보자 공식 선거운동 일을 이틀 앞둔 지난달 26일 오후 동탄호수공원을 찾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도로 건너편 건물을 보니, 공영운 후보의 상반신 사진을 담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동탄대로를 따라 호수공원 쪽으로 걸었다. 공원 건너편 왼쪽 건물에 걸린 이준석 후보의 대형 현수막과 오른쪽 건물에 걸린 한정민 후보의 현수막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세 후보'가 호수공원 옆을 지나는 동탄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셈이다. 한정민 후보는 다른 두 후보의 1/3 정도 크기 현수막 한쪽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넣었다.
쇼핑몰 옆 계단을 따라 공원으로 내려갔다. 10여 명의 시민들이 애완견과 함께 산책로를 걷거나, 조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최아무개(70)씨는 교통 문제, 수원 군공항 이전 문제 등 지역 현안을 해결해 줄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다. 최씨는 "교통난이 너무 심각하다. 출퇴근 시간에 다 막힌다"면서 "지금은 여당이 힘을 써야 할 상황인 것 같다. 야당에서 아무리 하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준석 후보의 출마로 선뜻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씨가 앉아 있던 벤치에서도 공원 건너편 양쪽 건물에 걸린 이준석 후보와 한정민 후보의 현수막이 한눈에 보였다.
"아무래도 여당 쪽으로 밀어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요. 그런데 당 대표도 했던 사람이 저렇게 다른 당으로 출마해서... 저도 좀 고민이 되네요."
최씨는 6년 전 정년퇴임을 하고 동탄으로 이사 왔다. 그는 "이 지역은 전체적으로 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쪽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저같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런 걸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강아무개(59)씨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물가는 오르는데, 봉급은 그대로고, 서민들이 너무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 경제나 민생을 살리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가 서민은 죽든 말든 민생은 다 제쳐두고 원전이나 SOC 같은 것만 관심 있어요. 서민들은 가처분소득이 완전히 줄어든 상태인데, 쓸데없이 대규모 방산이라든지... 고이율 시대에 부자들 세금은 많이 깎아주면서, 서민들한테는 원천징수든 뭐든 거둘 거 다 걷어가는 것에 상당히 불만이죠."
강씨는 화성시을 선거구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많고 아이들도 많고, 활력이 넘친다"면서 "대부분 월급쟁이고, 서민이나 중산층이어서 보수보다는 진보 쪽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영운씨가 현대자동차 사장을 했기 때문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추진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이 못하면 밑에 사람이라도 잘해야 하는 거잖아요"
나철성(46, 사업)씨는 후배와 함께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공원을 찾았다. 나씨는 "저희같이 40대는 어르신들과 달리 정당보다는 정책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라는 게 있다"고 설명했다. 나씨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후배는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했다.
"저는 정권 심판론 쪽으로 좀 기울고, 이 친구(후배)는 그 반대예요. 약간 색깔이 좀 달라요. 저희 집안에도 검찰 쪽에 계시는 형님이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너무 검찰권을 남용한다고 느끼죠. 물론 역대 정권이 다 그런 식이었지만, 이번 정권은 특히나 더 너무 하는 것 같아요. (보여주기식) 쇼 같은 것도 그렇고, 전문가들이 아닌 것 같고, 솔직히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못하면 밑에 사람들이라도 잘해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 기용하는 것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나씨도 이른바 '지민비조'라고 했다.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를 찍겠지만,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이 뭔가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고 해야 하나? 나쁜 것 같지 않아요. 민주당도 지지하지만, 좀 아닌 것도 많고,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힘을 지지하기도 그런 사람들이 이쪽으로 많이 쏠림 현상이 있겠지요.
그리고 사람이 감정이 먼저 앞서잖아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딸) 조민이 여러 가지 특혜를 본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한동훈 딸도 그렇고. 다 까고 보면 잘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조금씩 혜택을 보고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너무 몰아치기로 하듯이 그렇게 강압적으로 한 집안을... 물론 (조국 대표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좀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있어요."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나철성씨의 후배는 "정치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끝내 거부했다.
이준석의 '확신'... '정권 심판론' 넘을까?
반려견을 옆에 두고 벤치에 앉아 책을 보던 김아무개(53, 자영업)씨는 용인에서 살다가 동탄으로 이사 온 지 이제 한 달 반 정도 됐다. 김씨는 "인물은 안 보고, 정당을 본다. 정책이나 공약은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라며 "정권 심판해야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지금 대통령 하는 걸 보니 심판받아 마땅할 것 같아서... 아시면서 뭘 물어보세요? 일단 독단과 독선이 많죠.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합리적으로 정부를 움직이는 것 같지 않고, 검사시절 했던 권위적인 측면이 (국정 운영하면서도) 보이는 게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씨는 이준석 후보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권 출범에 일조했다"는 '책임론'을 들어 매섭게 비판했다.
"대선 때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가 갈등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결국 봉합돼서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정권 출범에 일조했잖아요. 아니, 그러면 그때 결정을 지어서 (당을) 나오든지 했어야지, 지금의 정권을 탄생시켜 놓고... 그리고 한 번 그렇게 무너졌으면, 정치인이면 생각을 해야지. 뻔히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정권 창출에) 일조했다가 지금은 튕겨 나와서 저러고 있는지, 어휴.
지금 두 명(이준석·한정민)을 합하더라도 (지지율이) 민주당(공영운)이랑은 안 될 것 같던데. 이준석은 라디오마다 나와서 무슨 박사처럼 떠들던데, (자기가) 팽당할 줄은 몰랐나? 하여간 윤석열 정부 출범에 일조해서 별로예요."
이준석 후보가 화성시을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것은 동탄2신도시에 젊은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제가 기대고 믿는 것은 동탄의 젊은 세대에 대한 확신"이라고 했다. 거대 양당의 후보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20~30세대가 자신에게 표를 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온 박선미(36. 주부)씨는 "아기가 있으니까, 육아와 관련된 (후보들의) 공약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면서 "아무래도 이준석 후보에 대한 기대가 조금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여기랑 수원은 예전부터 민주당이 조금 세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 분위기가) 그대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덧붙이는 글 | * 해당 지역 현지 취재는 공영운 후보에 대한 아들 억대 주택 증여와 딸이 현대자동차 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에 취업해 재직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되기 전 작성됐다. 이에 대해 공 후보는 "아들 증여와 딸 취업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