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말 그대로 '대파'당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75석, 조국혁신당 12석을 포함해 야권이 192석을 차지했고 국민의힘과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08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받은 성적은 21대 총선 103석 당선보다 5석 늘어나기는 했으나 집권당이 받은 성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처참한 성적이다.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다.
집권 후 윤석열 정부가 보인 국정 기조와 정책들을 되짚어 보면 이번 총선 결과는 당연한 귀결이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실 용산 이전, 대통령실 사적 채용 의혹, 과도한 해외 순방,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에 대한 편 가르기, 69시간 근무제 추진, 대기업 및 부동산 감세, 대규모 세수 결손 등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정책을 불통의 태도로 강경하게 추진했을 뿐 아니라 실정도 잇따랐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장모의 여러 범죄 의혹, 무속인 관련설 등 국민들의 의혹과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으며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해병대 채 상병 사망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사고들에 대해 진상조사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며 민심을 외면했다. 결국 집권 2년간 정권이 애써 무시해 온 일들이 켜켜이 쌓여 총선에서 심판으로 돌아온 셈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직후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는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지난 12월 정계 입문과 동시에 여당 비대위원장직을 맡아 화려하게 데뷔했고 사실상 국민의힘 간판으로 총선을 총지휘했다. 전국 유세 현장을 돌며 총선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했으며 야당의 총선 전술에도 직접 대응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집권여당 108석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다.
이 처참한 상황은 보수 결집 외 별다른 성과는 없는 것으로 소위 '한동훈 효과'가 신기루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의 사퇴로 국민의힘 대표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차기 여권 대선주자로 평가받던 그는 정치적 타격을 입은 채 다음 거취를 고민하게 되었다. 윤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것 외에 당내 정치적 자산이 전무한 데다 총선 참패를 책임지고 사퇴했기 때문에 차기 당대표 출마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의힘은 혹독한 정권 심판 의지를 확인함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를 더 이상은 비판 없이 수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여당은 정부 행보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주요 사안마다 새 당대표를 중심으로 보다 주체적인 당론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를 개최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총선 뒤 국민의힘의 첫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 당대표로 윤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나경원,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시 기회 얻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은 175석을 확보했다. 다른 야당을 제외하더라도 여당이 획득한 108석보다 67석이나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에서도 과반으로 단독 법안처리가 가능한 거대 제1야당의 자리를 지켰냈으니 나름 압승인 셈이다.
하지만 175석을 만들어준 국민들의 지지를 스스로의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직전까지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재명 대표 중심의 독단적이고 불투명한 공천이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기득권 언론의 편파적인 프레임이라고 애써 외면하기에는 공천 결과가 국민의 공감대와 차이가 크다. 결과적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재선 및 중진 의원들이 총선 승리를 위해 비교적 신속하게 입장을 정리하고 선거운동에 힘을 보탠 것이 중요한 승리 요인이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자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준 것이지 더불어민주당에 강한 국민적 지지를 보내준 것이 아니다. 이는 이번 총선 직전까지 국민의힘에 비해 지속적으로 낮게 집계된 정당 지지율로도 확인된다.
이번 총선은 말 그대로 국민들이 '저쪽이 싫어서 이쪽에 투표'한 선거였다는 이야기다. 임기 종료 시까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았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와 180석에 이르는 의석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하고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2년 뒤에는 다시 지방선거가 있고 3년 뒤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국민들은 앞으로의 선거에서 다시 국민의힘을 선택할 수 있다. 2년 만에 뒤집힌 민심은 다시 2년, 3년 뒤에는 얼마든 도로 뒤집힐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도 더 겸손한 자세와 생산적인 정치활동으로 민심과 민생 양면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이며 동시에 정권 심판 의지가 강한 표심, 즉 비이재명 강성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택지를 자처하며 총선에 돌입했다. 창당 2개월 만에 치른 선거에서 조국 대표를 포함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12명을 배출하며 원내 3당으로 등극했다. 말 그대로 돌풍이었다.
조국 대표가 전 정권의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황운하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만큼 민주당계 비례정당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이면서 윤석열 정부와 선명하고 강력한 대척 세력을 원하는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역시 향후 복잡한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조국 대표도 2심까지 징역 2년 실형을 받은 상태다.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에 따라 수감되고 피선거권도 박탈될 수 있다. 창당 때부터 제기된 문제이지만 소위 '사법 리스크'만 놓고 보면 이재명 대표보다 조국 대표가 위험 부담이 더 큰 상황이다. 조국 대표는 국회와 대법원은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당 차원에서 위험 부담은 실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는 변수도 크고 전개도 복잡해질 수 있다. 결국 조국혁신당은 이와 같은 변수들 속에서도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기 위한 각종 특검과 검찰 개혁에 대한 결과물을 얼마나 빠르고 내실 있게 제시할 수 있는지가 당 생명력과 직결될 것이다.
국정 기조는 과연 변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16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도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국정 방향에 대한 입장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총선 직후 발표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채무가 1126조 원을 초과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긴 상황이다. 감세 정책으로 세수 감소에 우려가 크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되려 "미래세대를 위해 건전재정을 지키고 과도한 재정 중독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많다"며 현재 조세와 재정 기조에 대해서도 그 방향성에 대한 견고한 입장은 불변임을 확인했다.
결국 국정 방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윤석열 대통령이 보다 직접적으로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거나 야당과 소통 및 협상 능력이 있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임명하는 선에서 총선 결과에 대한 조치를 마무리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또한, 총선 패배로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고'에 관한 특검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디올백 수수 사건 등 김건희 여사 의혹과 머지 않은 시간에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들 사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지가 향후 정국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 변함없이 거부권과 무응답으로 대응한다면 더 이상 여당이나 보수 언론도 윤석열 대통령을 전과 같이 지원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향후 3년간 식물 대통령 정도가 아니라 아예 투명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고 전 국민적 탄핵 여론으로까지 번져 남은 임기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