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내성천을 찾았습니다. 왕버들이 물이 오르는 이 무렵 강은 무척 아름답기에,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지난 2010년부터 그간 내성천을 숱하게 오고간 이유가 바로 내성천이 선사해주는 이같은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이곳 내성천에서 명을 달리한 해병대 채 상병의 명복을 그 현장에서 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청송의 '나무닭연구소'의 예술가들이 내성천 답사 동행을 요청해 함께 발길을 옮겼습니다. 첫 만남은 내성천의 거의 마지막 구간인 회룡포 그 안 마을 주차장에서 있었습니다.
만남의 장소에서 차를 타고 2㎞ 상류 이동한 뒤 회룡포 하류로 강을 따라 걸어내려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마침 비를 만났습니다. 올봄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로 인해서 내성천의 강물도 많이 불어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신발도 벗고 맨발에 옷을 입은 채 그대로 강에 들어갔겠지만, 날이 꽤 살살해 차에 실려 있던 가슴장화가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제법 많은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떤 구간은 수압도 상당해 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들어간 내성천은 그 힘겨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습니다. 비가 와서 비록 그 빛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연초록을 가득 머금은 물 오른 왕버들 풍광은 내성천 경관의 백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초록이 조금 더 짙어졌지만 한주 더 일찍 왔더라면 왕버들 특유의 연초록빛 아름다움이 내성천 모래밭 위로 고스란히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날도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초록의 왕버들과 모래톱 위를 스치듯 흘러가는 내성천 물길이 만들어내는 풍광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은 이런 강입니다. 모래의 강이자 왕버들의 강입니다. 강 가운데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톱이 있고, 맑은 물이 그 위를 스치듯 흐릅니다. 그리고 강변엔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드리 왕버들 군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적 산수화의 주제이자 경관미 중에서도 단연 으뜸가는 아름다움을 이곳 내성천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움 풍광도 이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4대강사업으로 들어선 영주댐 때문입니다. 영주댐 공식 준공은 지난해였지만 댐 본체가 완공된 것은 벌써 2016년입니다. 이때부터 물을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내성천의 변화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영주댐으로 망가져가는 내성천
댐으로 막혀 물과 모래가 더 이상 흐르지 않으니 댐 아래서부터 모래는 쓸려내려가고 자갈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를 새로운 모래가 덮어주지 않자 풀과 나무가 자리잡기 시작해 무성한 식생을 자랑하는 습지 형태의 강으로 빠르게 변해갔습니다.
아름다운 해변 백사장을 방불케하던 모래톱은 풀과 버드나무들로 뒤덮이기 시작해 내성천의 고유의 경관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하천 고유의 모습 중 하나인 모래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던 내성천이 그 원형을 급격히 잃어온 것입니다.
그나마 그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몇 곳이 남아 있고 그중 하나가 이곳 회룡포 쪽 왕버들 군락지입니다. 강 가장자리를 경계로 왕버들이 자리를 잡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왕버들은 아름다운 하천숲의 형태로 변했습니다.
그 모습을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이자 식물사회학자이자 생태학자인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는 '왕버들 갤러리'로 표현합니다. 이곳 회룡포 직상류엔 '왕버들 화랑'이 길게 펼쳐진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맘때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록하기 위해 이날 예술가들과 이곳을 찾았습니다.
사실 내성천은 곳곳에 이런 보물과도 같은 경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관미가 백미인 강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2008년 국토해양부로부터 국내 가장 아름다운 하천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선정한 최우수 하천이 국가가 저지른 잘못된 사업으로 인해 그 원형을 급격히 잃어가고, 강 생태계 또한 망가져 가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요.
이처럼 영주댐을 실체가 없는 댐이자 목적을 상실한 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초 이 댐의 주목적은 낙동강 수질 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낙동강 녹조는 매해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영주댐으로 낙동강 수질을 개선하는 건 요원한 일로 보입니다.
문제는 1조1천억원의 국민혈세를 투입한 이 엉터리 댐 때문에 529세대가 수몰되고 국토해양부 선정 최우수 하천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의 상실은 1조1천억원을 능가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비록 많은 돈을 들였지만 이 엉터리 댐을 하루빨리 철거해 내성천이라도 되살려 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습니다.
전국의 강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댐만 허물면 내성천은 충분히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댐이 사라진 뒤 옛 모습을 되찾은 강의 사례는 전 세계에 엄청 많습니다. 따라서 더 망가지기 전에 하루빨리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인 것입니다.
이날 답사 중에 강변에서 해병대 예비역 연대에서 놓고 간 채상병 추모 화환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여름, 채 상병은 이곳 내성천에서 명을 달리했습니다. 평소 강은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물이 불어난 강은 정말 무섭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현장엘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어떻게 사람을 밀어넣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명령권자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는 이 불의(不義)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한 가지 위안은 우리 하천의 원형을 간직한 저 아름다운 내성천이 채 상병의 넋을 잘 품어줄 것이란 믿음입니다.
부디 채 상병이 내성천 아름다운 물길과 함께 고이고이 잘 떠나시길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