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화려한 꽃 잔치도 가야 할 때를 알리며 내년을 기약한다. 나 역시 보내야 할 때를 알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 아쉬움을 한순간 잊게 하는 꽃이 있다. 모란이다. 그것도 노란색, 이름하여 황관이다.
지지난해 가을에 만든 작약 정원은 우리 집 정원 가운데 가장 잘 꾸며져 있다. 정원을 만들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작약을 옮겨 왔다. 옮겨 심었음에도 지난해에 몇 송이를 피워 작약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쉬웠다. 그게 뭐지? 비슷한 꽃이지만, 나에게는 작약보다 모란이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란과 작약의 꽃은 비슷하지만,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풀이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작약은 풀이기에 사라지지만, 모란은 나무이기에 줄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겨울을 견뎌내는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함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한 모란이 작약보다 일주일 정도 먼저 핀다. 봄꽃이 사라진 허전함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성급함도 한몫 한 것 같다.
올해 모란을 데려왔다. 황관, 우금요휘, 검은표범이라 불리는 세 그루이다. 우금요휘는 성장이 조금 더뎌 올해는 꽃을 보기 힘들겠지만, 내년에는 보여줄 것 같다. 검은표범은 이름답지 않게 비실비실 하여 내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그런데 황관은 씩씩하게 꽃을 피워내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부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떠오른다. 시인은 모란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의 변화를 다듬고 다듬은 언어로 노래했다.
먼저 모란이 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했다. 그 간절함은 시어 '아직'에 있다. 혹시 그 기대가 이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시어에 그 기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강한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모란이 졌을 때, '설움', '내 보람이 서운하게 무너졌다', '한 해가 다 갔다',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운다'로 텅 빈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런데도 허무와 절망에 빠지지 않고 다시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마음을 노래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다림에서 슬픔으로 또다시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인이 그토록 기다리던 모란이 피어났을 때, 그 환희의 순간에 대한 묘사는 '찬란함' 단 한 낱말로 응축했다. 그리고 그 찬란함은 곧 끝날 것임을 시인은 알고 있다. 사람들은 찬란함이 끝나면 허무와 절망으로 무기력에 놓인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지 않나?
누구든 자신만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질 애타게 기다리며 기도한다. 기다릴 수 있기에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버텨댈 수 있다. 드뎌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순간만은 천하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기쁨이 사라졌을 때 허무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김영랑은 결코 허무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것이 김영랑의 힘이다. 다시 내년의 봄을 기다린다. 기다림이 있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다림마저 허용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김영랑, '독을 차고'
1930년 말,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일본의 탄압이 절정에 이른다. 이제 내 마음, 내 생각을 순수하게 노래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때 김영랑의 시는 돌변한다. 1939년에 발표한 '독을 차고'를 보면 이전의 시와 완전히 달라져 있다.
김영랑의 시 특징은 언어를 다듬고 다듬어 맑고 깨끗한 마음, 대상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이것을 노래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다.
이때 시인은 절망하기보다 독을 차고 맞선다. 벗들은 시인이 찬 독이 오히려 시인 자신을 헤칠 수 있다고 그 독을 버리라고 유혹한다. 현실에 저항하면 위험하니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뭐 그리 힘들게 살 필요가 있느냐며 허무를 말하기도 한다.
유명한 조폭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화해를 주선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배신자다. 잊지 말거라'. 벗의 말은 이제 일본에 빌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친일파, 친일문학을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랑은 이런 얕은 속삭임에 빠지지 않는다. 기다림은 끝났다. 시인은 도망 다니거나, 야합하지 않고 독을 차고 이리, 승냥이와 맞서고자 한다. 그래야만 육체는 찢기고 할큄을 당할 수 있지만, 자기의 맑은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김영랑은 이런 생각과 마음을 지녔기에 당시 문인들이 부왜역적의 길로 영혼을 팔 때도 끝까지 자기의 맑은 혼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부왜역적'은 왜놈에게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은 도둑들이라는 역사 용어이다. 이 용어가 '친일파'라는 용어보다 더 적절하다).
맑고 깨끗한 영혼이 다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맑고 깨끗한 영혼은 우리들의 쉼터이며, 세상살이를 이끄는 희망이다.
시골살이가 좋다. 퇴임이 좋다. 때 묻은 내 영혼을 시골살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씻는다. 직장이란 틀에 갇혀 있던 내 마음을, 내 생각을 이제 하나하나 놓아준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