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한 살, 아빠로서 돌 즈음 아들 육아의 고됨을 처음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엔 육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올해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하며 종일 육아를 몸소 체험해 보니 세상 모든 부모의 위대함을 인정하게 되었고 내 인내심과 체력의 밑바닥을 보게 되었다. 특히나 5월부터 아기가 걷고 집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육아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최근 들어 아이에게 '안 돼'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마치 미식가가 된 듯이 방바닥에서 무언가를 찍어 입에 갖다 려고 하면 '안 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하고 콘센트의 검은 구멍 속으로 자기 손가락을 넣으려고 하면 '안 돼!!'. 싸움이라도 붙은 듯 화분을 마구 흔들어대서, 자기 키의 몇 배나 큰 난초가 아들에게 쓰러지려고 하면 그 즉시 외치는 '안 돼!!!!!!'.
무엇인가 재밌어 보이는 행동을 하려고 하면 '안 돼'라는 외침과 함께 묵직한 아빠 손에 의해 번쩍 들어 올려지는 상황이 싫은 건지 좋은 건지, 아빠의 외침에 어쩔 땐 울고 어쩔 땐 웃는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
아마 아이는 모를 것이다. 아빠가 자꾸 '안 돼'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행동 말고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들,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 가도 돼. 아빠가 머리 쿵 하지 않게 모서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으니깐. 이 자국이 생길 정도로 아빠 팔을 꽉 물어도 돼. 이가 더 나려고 잇몸이 간지러워서 그러는 거 알고 있으니깐. 오물거리던 밥을 손으로 꺼내 여기저기 밥풀을 묻혀놔도 돼. 네 오감 발달에 도움이 된다면 아빠가 좀 더 수고할 수 있지.
새벽에 갑자기 깨어서 울어도 돼. 미리 이웃집에 양해를 구했는데 새벽 울음소리도 축복해 주신다고 하셨어. 아빠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도 돼. 네가 즐거우면, 이까짓 아빠 머리카락쯤이야 뭐.
수많은 '돼'를 삼키고 '안 돼'라는 말을 뱉던 어느 평범한 오후, 목욕을 시키다 아이의 힘찬 물장구에 온몸이 젖었을 때, 갑자기 어릴 적 우리 엄마 얼굴이 생각났다. 순간 욕조에 누인 조그마한 아이가 나로 보였고, 연신 얼굴에 묻은 물을 훔쳐내면서도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 내가 그 옛날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아기의 등살을 씻기는데 보드란 살결이 마치 어린 아기였던 나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나는 34년 전의 엄마가 되었고, 아들은 그때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잃어버린, 그렇지만 소중한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보는 게 아닌가 싶다. 필연적으로 부모를 닮은 내가 나를 닮은 아이를 키우며 나의 근원이 되는 그때로 돌아가 보는 것. 사랑받고 여리고 순수했던 나를 되찾는 시간.
'안 돼'라는 말에 담긴 사랑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육아. 그건 언젠가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이제는 누군가의 부모가 된 이들에게 허락되는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