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안과에 다녀왔다. 매년 한 번씩 이맘때 정기검진을 받는다. 왼쪽 망막에 하얀 막 같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안과에 다니기 시작한 건, 안구건조증 때문이었다. 항상 눈이 뻑뻑한 편이었고, 특히 환절기가 되면 유독 심해졌다. 없던 꽃가루 알레르기까지 생겨 봄철에는 외출하면 눈도 제대로 못 뜰 때가 많았다.
인공 눈물이라도 처방받으면 나아질까 싶어 안과에 다니기 시작했고, 망막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비문증이 있어 불편했다고 의사에게 말했더니 그것과 망막 이상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투명한 날파리 같은 것들이 시야에 거슬리는 것 말고는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그래도 왼쪽 망막 쪽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긴장이 됐다. 초반에는 막이 계속 두꺼워지고 있어서 3개월마다 검사를 받았다.
망막 전문의가 있는 규모가 꽤 큰 안과 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재작년부터인가 막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있다. 이번 진료 때도 지난번과 큰 차이가 없다며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내년에 보자고 말씀하셨다.
증상이 더 심해지지 않고 있다니 안심이 된다. 최소한 살아온 만큼 앞으로 더 사용해야 하는 눈인데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안 검사도 함께 받았는데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꼬박꼬박 안과에 열심히 다녔더니 안구건조증은 많이 나아졌다. 인공 눈물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 눈을 잘 관리하는 데 나름 신경을 썼다. 수면 시간을 조금씩 늘려 눈의 피로를 줄여 나갔다. 꽃가루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불가피한 상황 외에는 가급적 외출을 피했다.
비문증은 노안의 현상 중 하나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증상인 것이다. 고로 비문증은 한 번 생기면 고칠 수가 없다. 아주 운 좋게 조금 덜해지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닌 듯하다.
너무 심하면 수술을 할 수 있지만 쉽게 재발된다고 한다. 죽을병은 아니니 그냥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말로 들렸다. 신경 쓰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무뎌지는 게 최선이라고 말씀하시며 의사 선생님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셨다.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특히 흰색이 많은 장소에서는 훨씬 더 선명하게 투명한 벌레들이 보인다. 떠다니는 그들의 모양은 지렁이 같기도 하고, 애벌레 같기도 하다. 마치 현미경으로 세포나 벌레 따위를 보면 보일 것 같은 그런 모양들.
그래도 투명한 덕분인지 너무 디테일하지는 않아서 징그럽지는 않다. 아직 글씨를 보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남이 보지 못하는 허공의 벌레들을 볼 수 있는 나 역시 노안의 길을 걷고 있다. 언젠가는 글씨도 흐릿해져 안경을 다초점 렌즈로 바꾸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바라기는 그때가 최대한 천천히 왔으면 한다. 읽고 쓰는데 불편함이 없는 지금의 때를 너무 빨리 보내고 싶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젊었을 때 글쓰기를 시작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때 혹사하지 않아서 아직 노안이 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탄 중고차처럼 내 몸도 정비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새 차 같은 몸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최대한 기름칠하고 열심히 관리해서 컨디션을 잘 유지해줘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동안이 되고 싶은 요즘이다. 얼굴이 어려 보이는 동안도 좋지만, 눈살 찌푸리지 않아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진짜 동안, 초롱초롱 맑게 빛나는 눈동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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