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성북구는 2012년 12월 지자체 최초로 공정무역 조례를 제정했다. 다음해 2월, '공정무역 선도구, 성북'을 선언한 뒤 '공정무역활동가 양성과정', '공정무역 축제', '공정여행'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그 10년의 결과를 바탕으로 성북구는 2022년 공정무역도시 인증이란 결실을 맺었다. 성북구가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공정무역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국 유일의 공정무역 전문기관 성북구공정무역센터 '페어라운드'가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우이신설설 성신여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도보로 5분 거리의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페어라운드는 사람과 지구를 위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공간이다. 2016년에 개관한 페어라운드는 지자체가 세운 최초의 공정무역 전문기관이다.
지난 6월 27일 페어라운드에서 만난 김영규 센터장은 "2013년 성북구가 기초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공정무역 조례를 만들었다"며 "조례를 바탕으로 설립된 페어라운드는 기초와 광역자치단체를 통틀어 유일한 공정무역센터"라고 말했다. 페어라운드 1층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공정무역 관련 프로그램이 열리며, 2층 생활공간은 공정무역 상품의 활용법을 제시하는 쇼룸 겸 주민들을 위한 대관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성북구, 공정무역 교육의 중심
페어라운드의 사업은 크게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지역의 공정무역 소비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를 늘리기 위한 홍보활동, 공정무역 인지 및 인식 확산을 위한 연령별 맞춤 공정무역 교육(원데이클래스, 공정무역 체험교실, 독서모임 등), 그리고 공정무역 캠페인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킹 구축이 그것이다.
특히 교육은 페어라운드가 집중하는 사업이다.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1학년 대상의 공정무역 교육은 올해 성북구 내 83학급에서 진행된다. 김영규 센터장은 "성북구 전체 초등학교 5학년의 25%, 6학년의 21%에게 공정무역 교육이 진행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면 공정무역의 개념을 거의 완벽히 이해합니다. 공정무역을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바나나 게임'을 학생들과 같이 진행하죠. 바나나 게임은 공정무역 학습의 주요 바나나 공급사슬에 있는 각자 맡은 역할(바나나 농부, 수입업자, 대형마트 주인 등)의 비용과 직무를 고려해 바나나 최종 가격 중 본인이 얼마를 가져가야 하는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게임입니다. 역할극 과정에서 학생들은 불공정한 수익구조에 깜짝 놀라요. 그리고 힘든 노동을 하는 바나나 농부에게 충분한 수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정의감에 가득 차서 말하곤 합니다. 공정무역 교육은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글로벌 사회 구성원으로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갖게 하는 세계시민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무역 교육은 이론 수업과 함께 바나나 게임, 보드게임 등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참여형 수업을 결합해 진행된다. 김영규 센터장은 "공정무역 교육 과정에 활용하는 보드게임은 지난해 시작한 '성북구 공정무역 청년 생활실험실'의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공정무역 청년 생활실험실'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공정무역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이 경진대회를 거쳐 직접 프로젝트를 실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첫해 '공정무역 보드게임'은 물론 다문화 아동 대상 공정무역 전래동화 교재를 제작한 사례도 나왔다.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 같은 전래동화에 공정무역 관련 내용이 들어가도록 각색한 뒤 10개국의 언어로 동화책을 제작했다.
김영규 센터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의 목적은 공정무역 인식 확산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공정무역 청년 생활실험실)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의 공정무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는 것은 물론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지역의 공정무역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정무역 생태계 변화 속 페어라운드는 협동분투 중
서울시는 지난해 '공정무역 도시 서울' 사업을 종료했다. 2012년 5월, '공정무역 도시 서울 추진선언문'을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 '공정무역 지원 및 육성 조례'를 만들어 공정무역 지원·육성에 주력한 지 11년 만의 일이다. 서울시의 사업 중단에도 불구하고 성북구는 공정무역 선도구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오히려 사업비를 증액하며 지역 내 공정무역 문화확산, 세계시민의식 확산을 위해 애쓰고 있다.
김영규 센터장을 포함한 상근 직원 2명의 인건비와 건물유지관리비를 제외하면 효과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하지만 페어라운드는 한정된 예산에서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성북50플러스센터',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우리동네키움센터(거점형)' 등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것도 그러한 움직임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올해 2월 업무협약을 체결한 성북노인종합복지관에서 공정무역 교육에 참여할 어르신의 모집과 활동이 이루어질 공간을 제공한다면, 페어라운드가 직접 교육활동을 운영하며 참여 어르신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공정무역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을 펼치는 식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공정무역 활성화의 기반을 닦는 페어라운드의 활동은 김영규 센터장의 신념과도 연결되어 있다. 지난 2019년, 사무국장으로 페어라운드에 합류한 김 센터장은 일찍이 대학 동아리에서부터 공정무역을 경험했다. 그는 공정무역을 비롯한 사회혁신 활동은 지역에서부터 공감대가 형성되어 변화를 경험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인 차원에서 지역단체에 가입하거나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등 지역 안팎의 관계망을 촘촘히 형성하고 있다. 김영규 센터장은 "지역 주민의 필요를 읽고, 그 필요에 응답하며 공정무역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맞아 공정무역 단체들이 함께 모두의 축제를 엽니다. 처음부터 관 주도의 행사는 아니었어요. 공정무역 단체가 십시일반 돈과 시간을 들여 이벤트와 공연, 체험행사 등을 자체적으로 꾸렸습니다. 그렇게 함께 부대끼는 과정이 있었기에 한국공정무역협의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겠죠. 작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원할 수 있는 자리가 다시 많아지면 좋겠다 싶어요."
공정무역 지원 정책 축소와 예산 삭감 등 공정무역 전반의 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이지만, 공정무역 현장은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기보다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연대와 협력을 통해 탐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