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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8일~10일, 72시간 누적강수량
 7월 8일~10일, 72시간 누적강수량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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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전국이 본격적인 장마 영향권에 들고 남북 기단간 힘겨루기가 백중세를 이루며, 강한 비 구름대가 충청과 전북북부, 대구·경북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7월 7일부터 10일까지 불과 4일간 해당 지역에는 200mm 이상의 비가 내렸고, 금강 하구 인근에서는 시간당 100mm를 넘는 '극한호우' 현상을 보이며 총 500mm에 육박하는 비가 쏟아져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복구가 가능한 재산 피해와 달리 인명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결과이기에 정부 당국을 비롯한 방재 유관기관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재 당국은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며 언론 등 매체는 이를 엄중히 여기고 신속하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호우 상황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기까지 어느 지점에서 아쉬움이 있었을까. 인명 피해가 발생한 7월 8일과 7월 10일, 해당 지역의 예보와 언론의 전달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7월 7일 오후 4시 10분, 기상청은 정례 날씨해설을 통해 많은 강수량을 기록할 것이라 발표하며 충북에는 아침부터 비가 집중될 것이라 예보했다.

이후 비 구름이 몰려들자 기상청은 기상법 제16조에 의거, 7일 밤 11시 5분과 8일 새벽 2시 40분 충청 남부와 경북의 위급한 호우 상황에 대해 재난주관방송사인 KBS(한국방송공사) 등에 긴급재난방송 편성을 권고하는 '긴급방송요청'을 발송했다.

하지만 해당 시각 KBS의 편성표를 확인한 결과, 긴급재난방송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8일 아침 8시 43분 충청북도 옥천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인 오전 9시 20분(KBS 대전방송총국), 11시 10분(KBS 청주방송총국)에야 뉴스특보가 편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8일 밤 10시 50분에 발송된 긴급방송요청에 대해서는 한 시간여만에 즉시 방송이 편성됐고, 위험 상황을 빠르게 전파했고 밤사이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루가 지난 7월 9일 오후 4시 10분, 기상청은 다시금 많은 강수량을 예고하며 충청도에는 9일 밤부터 10일 아침 사이, 영남에는 10일 새벽부터 오전 사이에 강한 비가 집중될 것을 경고했다.

이후 저녁 8시 20분, 기상청은 긴급방송요청을 통해 강한 비 상황에 대한 재난방송 편성을 요청했고, 밤 10시 30분, 10일 새벽 0시 30분, 2시 40분까지 세 차례 더 요청을 반복했다.

앞서 인명피해를 겪었기 때문일까. 재난주관방송사는 10일 0시, 1시 55분, 3시, 4시, 5시 총 다섯 차례(청주방송총국은 9일 밤 10시 30분 자체 추가 편성) 뉴스특보를 편성하며 대중에 재난 상황을 전달했다. 하지만 강수 집중 예상 시간에 충청과 대구에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재난주관방송사에서 뉴스특보를 편성하기 시작한 시각은 자정으로, 이미 많은 국민이 위험 상황을 전달 받기엔 늦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최소한 첫 긴급방송요청이 있었던 9일 저녁 8시 20분 직후 편성이 이루어졌더라면 더 많은 시청자에게 위험 상황을 전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중규모 이하의 작은 요소들이 복합적 영향을 미치는 여름철 강수는 특히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을 따라잡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재난주관방송사는 같은 날 저녁, 기사 <최대 150mm 예보했는데… 오늘 하루만 260mm>를 통해 최초 예보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흥미위주 표현이 문제인 이유

과거부터 언론은 재난이 발생한 이후 상황과 피해 영상 전달 위주로 뉴스를 생산해왔고, 방재기관과 지자체 등 당국의 잘못을 부각하는 모습을 주로 보여왔다. 

물론 당국의 잘못된 판단과 집행에는 책임을 묻고 질책하는 것이 옳으며, 이는 다시 찾아올 재난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할 방안을 찾아내는 과정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유체이탈 화법'은 위험하다. 재난 상황의 반성에 언론 스스로가 참여한 경험은 얼마나 있었을까. 

매일 예보가 발표된 직후, 대부분의 국민은 언론을 통해 이를 전달 받는다. 허나 언론사의 예보 전달 문구를 보면 대중의 흥미를 끌려는 표현에 너무 집중하는 듯하다. 
 
 7월 11일 <동아일보> 보도 기사
 7월 11일 <동아일보> 보도 기사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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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기사들을 살펴보자. <변덕 심한 '도깨비 장마'…'야행성 폭우' 주의>(KBS, 7월 9일), <예측불허 '야행성 폭우'의 습격>(동아일보, 7월 11일) 등 이번 여름 들어 '야행성 폭우'라는 단어가 언론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학술 용어도, 예보 용어도 아니다. 구름 상부가 냉각되어 야간에 불안정이 강화되는 것은 자연에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뿐인데도 언론은 관심을 끌기 위해 헤드라인에 '뾰족한 단어'를 배치한다.

이러한 모습 역시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보여 왔으며 '최강한파', '최강폭염', '게릴라성 호우' 등 그 예도 수없이 많다. 아마도 최초에는 독자의 이목을 끌어 효과적인 재난 상황 전파에 도움이 되고자 했겠지만, 결국에는 재난을 스포츠 경기의 기록마냥 극단적인 소재로 산화시켜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재난 자체보다 그에 대한 기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최초', '최고', '1위' 등 재난 기록에 순위를 매기고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기사가 늘어나는 것이다.

냉철한 정보의 전달이 사라지고 자극적 문구와 관심에 목숨 거는 기사가 범람할 수록, 정보의 소비자는 재난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질 것이므로 정작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글에서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주로 다룬 것은 짊어진 역할의 무게와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주관사로서 KBS는 재난 상황마다 다른 방송사에 비해 압도적인 횟수의 긴급재난방송을 편성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비난이 아니다. 사회 속 비평을 통해 다시 반복될 재난 상황 속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길, 그리하여 재난을 '가십'으로 소비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숭고하게 작동하는 언론의 모습이 보편화되길 바라 본다.

#장마#재난방송#긴급방송요청#재난주관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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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총괄예보관실과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를 거쳐, 현재는.. 현재는.. 영업용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마드 인생. 그거 아시죠? 운전하는 동안, 샤워할 때 만큼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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