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러 떠난 길, 어디로 갈까 하고 물으니 푸른 구름이 먼저 대답하기를, 이왕이면 '청운사 하소백련을 보면 어떠한가'라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난주 군산엔 호우경보까지 발동되어 내린 장맛비 덕분에 지역의 볼 만한 연꽃이 쓸려나가 맘이 우울했는데요. 때마침 하소백련축제(7.13-7.14)도 있다는 지인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김제 청운사(靑雲寺)는 해마다 연꽃 여행지로 유명한데요, 특히 청하면 하소지(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으로 2만여평의 연못지)에 핀 백련(白蓮)의 흰 빛깔과 고고한 자태에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행사장 초입에 설치된 무대와 산책용 데크길 주변에는 연잎의 물결이 하늘거렸지만 개화된 꽃무리의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정표를 따라 산길 안쪽으로 들어가니 청운사 앞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목 연못지에서 드디어 백련이 가까이 다가왔지요.
부여의 궁남지 연꽃지에 비하면 매우 작은 풍경이었지만 저마다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피어났습니다. 수수함과 은은한 백(白) 빛의 연꽃과 연잎들의 넓은 품성은 저절로 부처 세계의 '자비'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방문객들 역시 그 품성을 닮아가는지 서두름도 없고, 고요한 담소로, 마치 연꽃의 세상 이야기를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만이 온 것 같았습니다.
연꽃만 보러 간 필자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습니다. 다름아니라 청운사에서 '탱화'를 그리는 유삼영 도원 스님(무형문화재27호 탱화장, 청운사 주지스님)과의 만남과 대화였습니다. 특히 올해 초봄에는 청운사에서 제작한 '세계 최초, 최대 열반 괘불탱화(가로 8.4m, 세로 4.8m의)를 전시하는 행사(2024 괘불 문화의 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림의 주제가 '영원한 평화'로서 각 종교계 인사들, 정치인, 시민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들었습니다.
청운사 열반 괘불탱화는 가로 8.4m, 세로 4.8m의 크기로 만들어서 8만4000 번뇌와 48대 발원의 의미를 담았고 부처의 열반 당시 모습과 부처의 가르침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탱화장 도원 스님과 제자들과 함께 3년 4개월에 걸쳐 완성했으며 전통 안료인 색채와 당채로 채색하고 면 100% 옥양목에 한지를 12번 배접해 완성한 놀라운 규모와 정성이 들어간 탱화입니다.
탱화를 그린 도원 스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대신해서 물으신 의문, '고령화 시대에 부처님 열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죽음은 끝인가 영원한 삶인가?'에 대한 일말의 해답을 이 탱화에 넣어놓은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단지 불교도신자만의 행사로 남을 일이 아니라, 생로병사하는 모든 인간이 진정한 삶의 성찰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청운사 안채에 들어서 연밥으로 점심을 먹고 시원한 수박화채를 내 주시는 스님께 '화소백련축제'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스님의 선조부터 이어져 내려온 불사지에 스님께서 오신 해부터 연꽃과 사람을 맺어준 만남의 장을 연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부터는 김제시가 주관하여 더 다양한 행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원 스님은 탱화장으로서 그림을 그리실 뿐만 아니라 짧은 단시 하이쿠를 짓는 시인이기도 하고, 자연과 환경보호에 앞장서서 실천하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중 스님이 들려주신 하이쿠 한 수<전파>를 소개합니다.
전파 – 도원스님
마음의 이동
전파 에너지 파동
모두는 하나
현대과학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결국 전파의 이동과 에너지를 일으키는 파동 위에서 삶과 죽음을 맞이하니, 혹여 번뇌가 있더라도 그것 역시 파동의 일부려니 생각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게 책 한 권을 주시면서 써주신 '유식무한(有息無限) - 쉼이 있어야 오래 재밌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은 일상을 너무 바쁘게만 사는 제게 딱 맞는 '오도송'처럼 들려서 제 속마음을 꿰뚫어보신 줄 알았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연꽃 / 만나러 가는 / 바람 아니라 /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 한두 철 전 /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저도 역시 가볍게 연꽃 하나 만나러 간 바람처럼 갔다가 멀고 먼 어느 인연을 만나고 돌아온 바람이 되었습니다.
청운사 입구 연못지를 앞마당으로 두르고 서 있는 카페 <삼소원>에서는 스님의 연꽃 그림 전시회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완성한 열반괴불탱화의 전체도를 부분으로 나누어 다양한 소품을 제작했는데, 시간을 귀하게 아껴 쓰라는 의미로 시계 소품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특별한 건강비법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스님의 대답은 참으로 단순 명쾌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입니다. 특히 잘 쉬어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는 한 몸이지만, 우선 몸을 건강하게 챙겨야 정신도 건강해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끝으로 스님께서 수행이자 포교의 방법으로 쓰고 계시는 선시, 그중 연꽃 시를 들려드립니다. 8월 한여름 내내 연꽃이 피고 지는 청운사 하소백련지로 여름 여행 떠나보시길 추천하고 싶군요.
하소의 백련을 보며
– 도원스님
꽃중에 제일은 / 흰 꽃이라.
아지랑이 꽃은 /축하하는 꽃이고
하얀 국화는 / 이승에서 저승에 보내는 꽃이다
흰 들깨 꽃은 / 들기름은 낳고
흰 참깨 꽃은 / 구수한 참기름을 준다
극락세계의 색은 / 흰 색이고
맑은 하얀구름은 / 가을을 오게한다.
연꽃은 꽃 중에 군자요
백련은 군자의 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