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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기자말]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상에 거센 빗줄기가 내리는 주말 오후. 여느 때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에어컨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름이 왔음을 느끼고 있던 날이었다. TV 속에서 들려오는 시끌시끌한 웃음소리와 스피커로 들리는 잔잔한 노래소리가 집안의 적막을 채울 때쯤이었다. 

"우리 저녁 뭐 먹어?"

엄마의 물음과 함께 매일 저녁마다 찾아오는 최대의 고민 거리, 메뉴 결정 시간이 찾아왔다. 가끔씩은 '귀찮은데... 꼭 먹어야 할까'라거나 '점심 먹었으니까 안 먹어도 되지 않을까' 같은 대답을 했었지만 오늘은 이미 점심을 대충 빵으로 때우고 난 후라 그럴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적 사이로 여전히 선명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비 오는 날은 파전에 막걸리지."
"파전? 근데 막걸리는 없는데."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명사처럼 자주 들었던 문장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비 오는 소리가 전을 구울 때 나는 지글지글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막걸리는 왜 붙어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비오는 날 생각나는 부침개.
 비오는 날 생각나는 부침개.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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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집에 쪽파와 냉동오징어가 있어 저녁 메뉴는 해물 파전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막걸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에게 있는 건 선반에 놓인 위스키가 전부여서 대신 하이볼을 만들어 마시기로 했다.

싱크대 앞에 선 엄마는 빠르게 파와 양파를 썰고 오징어를 다듬었다. 밀가루에 물을 섞고 재료를 넣어 반죽을 하는 모습을 멍하니 구경하다 프라이팬을 꺼낼 때쯤 나도 필요한 재료를 찾아 하나둘 식탁 위에 올렸다. 

큰 잔과 위스키, 토닉 워터, 레몬즙 그리고 얼음까지. 집에서 만들어먹는 하이볼은 컵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 1, 토닉 워터 3, 레몬즙 0.5를 넣은 이후 얇은 머들러로 잘 섞어주면 완성이다. 사실 하이볼을 직접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비율이 가장 맛있었다.

하이볼은 칵테일의 종류 중 하나로, 보통 얼음을 채운 잔에 양주와 탄산수 같은 음료를 넣어 만드는 것을 말한다. 위스키나 보드카 베이스에 넣는 음료에 따라 붙는 이름이 달라진다고.

본래 하이볼은 19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처럼 대중화가 된 건 1900년대 후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물어보니 하이볼이라는 단어는 20년도 이후에 처음 들었다고 말하셨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데 왜 하이볼이지?'

궁금증이 생겨 프라이팬 위에 파전이 노릇노릇하게 익을 동안 핸드폰을 들어 검색창을 켰다. 하이볼의 유래나 속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널리 알려진 건 탄산수와 위스키를 섞어 제공하는 바(Bar)가 있는 열차가 스코틀랜드의 하이볼(highball) 지역을 통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열차의 출발신호를 알려주는 풍선인 하이볼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골프장에서부터 시작되었는 설도 있었다. 
 
 위스키와 하이볼
 위스키와 하이볼
ⓒ 한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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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을 마시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즈음. 칵테일과 화이트와인처럼 달달한 술이 취향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연히 스카치 위스키를 접하게 되었다. 스카치(Scotch) 위스키는 크게 5가지로 싱글 몰트, 싱글 몰트 스카치, 싱글 그레인, 블렌디드, 블렌디드 몰트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내 시선을 끌었던 건 블렌디드 위스키였다. 싱글 몰트 위스키보다 저렴하고 적절한 블렌딩 덕분에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아 대중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여러 영상들을 찾아보다보니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맛도 궁금해졌다. 마침 그때즈음 비어버린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마트에 갔다가 주류 코너에서 발견한 블렌디드 위스키를 덜컥 카트에 담아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위스키는 위스키. 뚜껑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알코올 냄새에 잠시 멈칫했다. 맛이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잔에 옮긴 뒤 잠시 방치해뒀더니 묘하게 포도 비슷한 향과 나무향이 느껴졌다. '마셔도 괜찮은 거겠지..?'

약간의 걱정과 함께 마셔 본 위스키는 단물 빠진 포도 껍질의 맛과 향신료의 매운맛이 주로 느껴졌다. 높은 도수가 익숙하지 않아 목구멍이 화해지는 건 덤이었다. 그냥 마시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그때부터 하이볼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하이볼이 가득 담긴 잔과 그릇, 식기를 세팅해놓으니 갓 구워 따끈따끈한 해물파전이 그릇에 옮겨졌다. 익은 양파와 파의 달달함, 청양고추의 매콤함, 그리고 오징어의 쫄깃함이 아울려 바삭하고 촉촉한 파전이었다.

젓가락으로 찢어 낸 조각을 두어개 먹고 기름기가 입안을 맴돌 때 시원한 하이볼을 마셨다. 아까보다 거세진 빗소리가 닫힌 창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존재감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즐기는 평화로운 주말 저녁이었다.

"오, 하이볼 맛있는데?"
"그럼 그럼. 이제 우리집은 파전에 막걸리 대신 파전에 하이볼이라구."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하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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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흘러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20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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