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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산, 대판이봉 능선, 멀리 성수산 태조봉이 보인다.
 성수산, 대판이봉 능선, 멀리 성수산 태조봉이 보인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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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산(876m) 상이암은 고려와 조선의 개국 설화가 전해오는 구룡쟁주(九龍爭珠) 명당과 기도 터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이 산 깊은 계곡에 펼쳐진 왕의 숲 휴양림과 국민여가캠핑장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생태 관광지로서 위상이 튼실하다.

이곳 성수산에 단종 임금의 충신인 현감 형제가 은거한 은적동(隱跡洞)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1455년)하자, 함길도 이성(利城) 현감인 송시(宋偲, 1415~1485 추정)와 평안도 은율(殷栗) 현감 송희(宋僖, 1420~1490 추정) 두 형제는 관직을 내려놓았다.

형제는 이곳 성수산 동쪽 은적동(수문이 , 옛표기 수므니)에 가족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성수산 상이암에 은거(隱居)하였다고 한다. 두 형제 현감이 함길도와 평안도에서 가족을 거느리고 천 리 길 임실현의 골짜기 깊은 성수산을 찾아 이동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은적동은 성수산 태조봉 아래 상이암에서 대판이봉(793m) 능선을 넘어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 5km의 위치에 있다. 은적동의 향토 지명인 '수므니'는 은자(隱者)라는 의미의 '숨은 이'의 연음 표기이며, 원순모음화 현상을 거쳐 '수문이'라는 현재 지명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성수산 은적동은 성수면 오봉리의 왕방저수지 위 대판이 계곡 어귀의 돈학정(遯壑亭) 앞 골짜기 깊숙히 있다.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하는 초복 절기에 송시와 송희 두 현감이 은거하였다는 은적동은 산수국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하는 여름의 생명력으로 출렁거렸다. 

예전에는 성수산 은적동에서 대판이봉 능선을 넘는 고갯길이 있었다. 은적동에서 대판이봉 능선의 불당골재를 넘으면 구룡연못에 이르고, 대판이재를 넘으면 성문동 계곡 어귀에 이르렀다. 송시와 송희 현감 형제는 이 옛 고갯길을 넘어서 은적동(수문이)과 상이암의 험준한 5km 산길을 수없이 왕래하였을 것이다. 

현재는 은적동 어귀에서 상이암까지 9km의 구름재 임도가 있지만, 장맛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기는 어렵다. 은적동 어귀에서 왕방저수지 옆을 지나 성수산 휴양림으로 향하는 지방도로(태조로)를 성수산 상이암으로 이어진다. 성수산 휴양림에서 상이암 오르는 길목에서 송시와 송희 형제가 대판이봉 능선 고개를 넘어왔던 구룡연못과 성문동 계곡 어귀를 확인할 수 있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가는 길의 구룡담
 임실 성수산 상이암 가는 길의 구룡담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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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산 왕의 숲 휴양림 생태관광지 어귀의 구룡담은 하늘에서 상이암의 구룡쟁주 명당으로 내려온 아홉 마리 용이 머물다가 승천했다는 연못이다. 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수련이 연못 수면 속에 비치는 하늘에 떠 있다. 송시와 송희 형제가 힘들게 대판이 능선을 넘는 불당골재를 지나 이곳 연못가에서 잠시 쉬었을 560여 년 전의 정경을 잠시 상상해 본다.

성수산 상이암은 구룡쟁주의 명당을 배경으로 하늘에서 들렸다는 '성수만세(聖壽萬歲, 임금님의 수명이 영원하소서!)'의 소리가 핵심이다. 성수산 상이암은 왕건과 이성계에게 새로운 왕조를 열라는 하늘의 계시가 내린 곳이라는 설화의 중심지이다. '성수만세' 설화는 평화롭고 새로운 세상을 희구하는 백성들의 염원을 반영하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같은 의미로서 새 왕조 창업의 정당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송시와 송희 두 형제가 역사적인 엄중한 시기에 함길도와 평안도에서 천 리 먼 곳의 임실 성수산을 찾아 은거한 의도는 상이암 사찰의 설화와 역사성으로 알 수 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는 단종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조선을 창업한 설화의 터전인 성수산 상이암에서 송시와 송희 형제는 왕조의 사직과 단종의 안위를 염려하는 충신의 마음으로 '성수만세'를 수없이 기원하였을 것이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가는 길의 성문동 계곡 어귀
 임실 성수산 상이암 가는 길의 성문동 계곡 어귀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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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동 입구는 이상 세계를 계곡에 깊이 감추어 둔 듯한 석문(石門) 형태이다. 이 계곡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과 다른 풍경이 펼쳐질 듯하다. 여름 장맛비로 계곡에는 세상의 번뇌와 티끌을 다 쓸어가려는 듯이 여울 소리가 힘차다. 성문동 계곡의 커다란 바위 뒤에서 송시와 송희 형제가 30대의 젊은 모습으로 조선 시대 초기의 과거에서 56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현재의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 나올 듯하다. 

왕건과 이성계 창업 설화가 전승되는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서 송시와 송희 현감 형제의 단종 임금을 향한 충절의 역사적 사실은 장맛비가 내리는 푸른 숲속에서 소나무 거목처럼 기상이 당당하였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구룡쟁주 명당 여의주 바위. 왕건과 이성계 창업 설화의 명승지. 단종의 충신들 역사 이야기가 새롭게 조명된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구룡쟁주 명당 여의주 바위. 왕건과 이성계 창업 설화의 명승지. 단종의 충신들 역사 이야기가 새롭게 조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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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사 작성에 <여산송씨 장교파가승보(礪山宋氏 長橋派家承譜, 1942년)>와 이 가문에 전승하는 기록 일부를 참조하였습니다.


#임실성수산상이암#이성현감송시#은율현감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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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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