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그리고 어여쁜 야생화 꽃밭
오래 전부터 백두산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백 번에 두 번 볼 수 있다 해서 백두산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예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백두산 여행(7월 13일에서 7월 17일까지 4박 5일)은 운 좋게도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이틀에 걸쳐 두 번 모두 잘 볼 수 있었다.
백두산 산등성이 곳곳에 형형색색 수줍게, 그러나 가장 강렬한 본연의 색으로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화들은 정말이지 고혹적이었다. 선명한 꽃 빛깔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들 야생화들은 모두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라 백두산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야생화다.
여행 3일째에 방문한 윤동주 생가는 툇마루에 창호지로 바른 방문하며 영락없이 옛날 우리들의 시골집 풍경이다. 담장 옆에는 100년도 넘게 자란 커다란 느릅나무가 지켜보고 서 있다. 생가 한 켠에는 윤동주의 절친이었던 송몽규 시인의 사진도 진열되어 있다. 송 시인 역시 일제의 참혹한 생체 실험의 희생자로서 윤동주가 절명한 뒤 21일 만에 옥사해야 했다.
문자 그대로 지대물박, 참으로 땅도 넓고 갖가지 물건들도 많은 중국이었다. 차창 밖으로 그 옛날 한민족의 조상들이 말 타고 달렸을 광활한 대지가 끝이 없이 펼쳐진다. 그곳들에 심어진 드넓은 옥수수밭과 산호리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떼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두만강 너머 북쪽이 이렇듯 가까이 있건만
마지막 날 중국 땅 투먼으로 가서 두만강 너머 북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만강의 중국 측 산들은 험한 지형인 데 비해 북한 측 산들은 대단히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있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산 쪽으로 우리들은 단 한 발짝도 접근할 수 없다. 중국인들은 강변 산책도 가능하고 두만강 뱃놀이까지도 즐길 수 있는데, 정작 같은 민족인 우리들은 아예 도로 아래 두만강 산책로로 내려갈 수도 없다. 그저 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며 아련한 슬픔을 달래볼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토록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분단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것일까? 굳이 통일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백두산부터 개성까지 마음 놓고 왕래하고 여행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