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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로 인한 119 신고 전화가 폭주 중이니 비긴급 전화는 110번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경기도청"

7월 18일 낮 12시 30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순간에 도착한 안전 안내 문자였다. 그날 하루만 19개의 안전 문자가 왔다. 모든 문자가 현재의 위급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집 안에 있으면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19 전화가 폭주 중이라는 문자는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얼마나 많은 분이 위험을 느끼고 그 번호를 눌렀을까? 얼마나 많은 소방대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벌과 벌집(자료사진).
 벌과 벌집(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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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난여름, 예기치 않은 위험 앞에서 119를 눌렀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 1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다양한 곤충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웬만한 곤충의 출연에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윙윙하는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듯하다.

때아닌 개미들이 뜬금없이 집안으로 줄지어 들어오는 것부터 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왜지? 나는 원인을 파악하려고 잠시 방충망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원인을 채 알기도 전에 나는 허벅지에 뾰족한 것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어디선가 들리는 윙윙윙 소리.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내 눈에는, 문득 엄지손가락 길이만 한 거대한 말벌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온 동네가 떠나가라 비명을 냅다 질렀다. 방충망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거실 안으로 도망쳤다.

말벌에게 쏘인 부분은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갑각류(새우, 게, 가재 등) 알레르기를 앓고 있었기에 말벌의 맹독에도 반응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 마음을 휘저었다. 몸이 어찌 될까 두려워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보다도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베란다를 휘젓고 다니는 말벌 한 마리가 집에 있던 아이들을 공격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방학을 맞아 집에 있던 세 아이가 놀라서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놀란 엄마를 보며 불안해 했고, 각자의 기기로 대처법을 검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 벌 쏘이면 119에 전화하래."

딸아이가 일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그런 내용을 본 것도 같았다. 불이 난 것도 아니고 고작 말벌 한 마리에 대한 공포이지만, 도움이 간절했던 나는 주저 없이 119를 눌렀다.

'집 안에 말벌 한 마리가 들어왔어요, 말벌에 쏘였는데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원이 5명이나 출동... 그런데 수박만 한 벌집이 있었다  

집 안 말벌 한 마리 때문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찾아오신 대원은 총 다섯 분이었다. 문을 열면서 민망함은 물론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무더운 날, 다른 사건도 많을 텐데 고작 말벌 한 마리로 바쁜 사람들을 부른 건 아닌지 한심한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휴지 몇 장으로 가뿐히 말벌 한 마리를 퇴치하더니 쏘인 곳을 살펴주었다.

"좀 붓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으실 것 같고요. 얼음찜질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꼭 가까운 병원에 가셔서 진료를 받아보셔야 해요."

호흡이 불편하지는 않은지를 묻고, 붓기의 정도를 살피던 대원이 자분자분 건네준 설명에 이미 통증이 가라앉은 것만 같았다. 말벌에 쏘여서 아픈 게 아니라 걱정이 나를 아프게 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괜찮았다.

나아가 말벌 한 마리에도 기꺼이 출동해주신 성의가 너무 고마웠다. 연이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웬만하면 혼자 해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말벌을 휴지 몇 장으로 거뜬히 퇴치하는 소방대원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나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결심은 채 5분도 가지 않았다. 대원들을 배웅하고 베란다 문을 닫으러 나갔던 나의 눈에 퇴치된 말벌 근원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단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공처럼 둥근 형태. 어른 주먹 10개 정도를 합쳐 놓은 듯, 작은 수박만한 어마어마한 크기. 밝은 갈색.

방충망 바깥쪽 처마 밑 주변, 거기 몇 마리의 말벌이 날아다니는 걸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게 벌집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껏 말벌과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었다니!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기겁한 나는 돌아가는 대원들을 다시 불렀다.

벌집을 본 대원들 역시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냈다.   

"아, 이 녀석들 아주 사나운 종이고요! 위험하니까 문을 닫고 기다려 주세요. 저희도 장비를 좀 챙겨와서 제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벌 쏘이면 생명 위급할 수도... 증상 심하면 꼭 병원으로
 
말벌집이 있던 처마 밑 산이 인접해 있는 아파트 1층. 방충망 밖 오른쪽 벽에, 당시 소방대원들이 제거한 말벌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말벌집이 있던 처마 밑 산이 인접해 있는 아파트 1층. 방충망 밖 오른쪽 벽에, 당시 소방대원들이 제거한 말벌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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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채 집안에서 문을 닫고 그들의 활약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온 장비를 보며 입이 떡 벌어져 다물지 못했다. 뿌리는 살충제 몇 개와 긴 막대기, 그리고 배드민턴채가 전부였다.

'엄마, 저게 장비야?'

아이들도 의아했는지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벌집을 향해 끝없이 뿌려대는 살충제. 사납게 달려드는 말벌을 바쁘게 쳐내는 배드민턴 채. 높게 달린 벌집을 떼어낸 긴 막대기. 벌집 제거를 완수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 대원들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 안쓰러운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당분간 몇 마리가 집인 줄 알고 찾아올 거예요. 하지만 곧 사라질 겁니다."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연이어 말했다. 말벌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용맹함이 멋졌다. 화재 같은 심각한 곤란이 아님에도 한달음에 달려와 준 그 성의가 감동이었다.

벌에 쏘이는 일은 우리 집뿐 아니라, 자연과 맞닿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여름철 제초하러 갔다가도 생기는 일이라고 하니 예방 및 대처법을 미리 알아두면 좋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가면 안내가 잘 나와 있다.

벌에 쏘였을 경우, 가려움과 통증, 부종 등의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응급 상황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나타날 수 있단다. 증상이 가벼울 경우에는 비누와 물로 세척하고 얼음주머니를 15~20분간 대는 것으로 대처가 가능하다. 통증 완화를 위해서는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투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각할 때는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말벌은 꿀벌과 달리 수십 번 독침을 쏘는 데다, 그 독성이 꿀벌의 몇십 배에 이른다고 하니 섣불리 건드리기보다는 119에 신고해야 한다. 8월~10월에 개체 수가 급증하고 침의 독성과 공격성이 강해진다고 하니 더욱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

또한 '벌에 쏘이면 신용카드를 이용해 쏘인 부위를 밀면 독침을 제거할 수 있다'는 속설은 말벌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집에 말벌이 출연했거나 말벌에 쏘였을 때는 일단 119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가 아닐까 싶다.

요즘도 나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러 나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말벌집이 있던 곳을 올려다본다. 아직 그곳에는 벌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느 여왕벌이 또 저곳을 마음에 들어 하고 집을 짓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119를 또 눌러야겠지.

오늘도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달려가는 소방대원분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지만 본인들 역시 안전해야 할 시민임을 늘 기억하시길 바란다. 여름 한가운데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말벌퇴치#119#말벌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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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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