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에에에~앰"
세종보 천막농성장 주변을 가득 메운 매미소리. 절기가 또 바뀌었다. 초복을 지나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언저리다. 장마 때문에 잠시 주춤한 듯 보이지만, 비가 그치면 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할 것이다. 한두리대교 밑 농성장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도심만큼 덥지는 않을테지만 바람을 한 줌 움켜잡아서 짜내면 물이 한 움큼씩 나올 듯 습하다.
밤에 들리는 바람소리는 휘파람 같기도 하다. 쉬지 않고 소리를 내며 텐트를 흔들어댄다. 매미들도 쉬지 않고 제 짝을 찾는지 밤새워 울어댄다. 텐트가 뒤집어지고, 단단히 동여맨 그늘막이 찢기고... 바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얼마 전에 경험했기에 더 긴장하고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불침번을 선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새소리와 거세게 황톳빛으로 흐르는 금강을 보며 한숨을 돌린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할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 이런 불안한 밤을 지새우면서 80일 넘게 금강을 지켜왔다. 강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달려온 이 시간들이 헛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매일 하루를 시작한다.
세종오월포럼, <삽질> 상영회 개최… 4대강사업 실체 더 많이 알려야
지난 19일 저녁, 세종오월포럼에서 4대강 다큐멘터리 <삽질>을 상영하고 김병기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임도훈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상황실장이 함께 참석해 천막농성장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아직 <삽질>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분들이 있기에 더 많이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사실 이 영화를 개봉할 당시인 2019년 11월에는 세종보와 공주보 수문이 막 개방되고 강이 회복되고 있는 시기였다. 정부 차원에서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2021년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이 확정됐다. 하지만 지금 4대강에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4대강 정책이 이명박 시대로 후퇴했다. 몇 사람의 권력욕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강이 계속 유린을 당하고 있다.
세종보 해체 등 금강 보 처리방안이 마련되고, 마지막 심의 의결 과정만 남아있던 시기에 세종시와 환경부, 국토부, 행복청 등이 협약을 맺고 추진한 것이 '금강 세종구간 자연성 회복 선도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세종보 철거의 단서조항이었지만 결국 시장이 바뀌고, 그 사업은 공중분해 되었다. 사용도 하지 않는 12억 원짜리 선착장 두 개를 만들고 끝이 났다.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과 행정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세종시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세종보 하나라도 철거한 뒤 강의 자연성 회복에 대해 말하고 이를 '자연친화 도시'로 내세웠다면 세종시는 그깟 오리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얻었을 것이다.
금강을 찾는 각양각색의 시민들… 반가운 사람들
지난 20일 밤, 늦은 시간인데도 딸과 함께 한두리대교 아래를 찾은 아빠를 만났다. 딸은 자전거 타기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갈 준비를 하다가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천막농성장에 다가와 바람이 세서 텐트가 괜찮겠냐고 물었다. 바로 앞에 파크골프장 안내 현수막 윗선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하니 놀란다.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그 마음이 따뜻하다.
킥보드를 타러 새벽 일찍 출동한 청소년들도 눈에 띈다. 한바탕 소란을 떨며 연습장을 도는데, 친구랑 놀고 싶다고 새벽같이 나가던 큰 아이가 생각났다. 야구 연습을 하러 온 이들도 만났다. 야구장을 일 년 넘게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엉뚱한 데만 헛돈을 쓰고 있다고 투덜댔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이구"하면서 아는 척을 했다. 오래전부터 교류하던 지인이었다. 세종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꼭두새벽에, 여기서 만나니 신기했다.
이렇듯 금강이 만남의 광장인 건 생태계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악취가 풍기는 강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혼자, 아이들과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는 공간이다. 세종보에 물을 가둬 이곳을 접근금지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깨는 일이다. 수문 닫는데 골몰한 환경부와 세종시는 도시의 강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알고 있을까?
"다리 밑에 꾀꼬리 있다."
꾀꼬리 한 마리가 다리 밑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를 못하고 몇 시간 동안 애가 타도록 운다. 아마 부모를 부르는 것 같은데 따로 오지는 않고 서로 우는 소리만 주고받는다. 어찌 된 사연인가 궁금했지만 새들의 일을 사람이 알 리가 없으니 답답했다. 다시 아침이 되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용기를 내서 부모 새들이 있는 자리로 찾아간 모양이다.
80여 일도 훌쩍 넘어 90일을 향해가고 있는 천막농성. 1~2주가 지나면 장마가 끝이 날 것이다. 이제 더위를 이겨낼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풍찬노숙하는 신세이기에 무더위를 넉넉하게 건널 세간살이를 들여놓을 수는 없다. 그저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는 게 전부이다. 다행히 환경단체 활동가뿐만 아니라 대전과 세종 시민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고 있기에 큰 걱정은 없다.
농성장에 있으면 새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물이 빠진 그라운드 골프장은 알에서 막 부화한 어린 새들의 비행장이자 놀이터다. 물떼새와 할미새, 꿩, 꾀꼬리... 어린 새들이 뒤뚱거리며 뜀박질을 하다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다. 어린 새들은 저마다 높은 곳에서 자기 몸을 떨어뜨려 날갯짓을 배우는 중이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을 던지지 않고서는 되는 일은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있는 금강을 위해 몸을 던져 농성장을 지키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새들처럼 흐르는 금강 위로 날아오르지 않을까. 세종보가 언제 재가동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