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반품수거예정입니다. 반품할 물건을 문 앞에 놓으시고 문자 한 통 꼭 부탁드립니다."
새벽 6시 25분에 택배기사님한테서 온 문자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이 시간에 문자를 보내려면 대체 몇 시에 출근한 걸까.
최근에 쿠팡 배송 기사가 과로사로 숨진 사건이 있었다. 새벽 배송 기사였던 고 정슬기(41)씨의 근무시간은 저녁 8시 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 고인의 책상 위에는 다 먹은 진통제통이 가득했고, 사망당일에 고인은 휴대폰으로 "팔이 저리고 숨이 안 쉬어진다"를 검색했다고 아내가 전했다.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배송되는 쿠팡 로켓배송. 200개 중 한 개라도 7시까지 배송하지 못하면 쿠팡으로부터 페널티를 받고 누적되면 계약해지가 된다. 그래서 새벽 배송 기사들은 뛸 수밖에 없다. 고 정슬기씨는 개당 900원의 수수료를 다 주면서까지 서브 기사를 고용했다.
"알바를 안 쓰면 내가 여기서 정리될 수 있어. 그래서 알바를 꼭 써야 돼."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서브 기사에게 보통 100개 미만의 물건을 주었는데 사망 당일에는 몸이 안 좋다면서 234개를 주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폭우 속에 새벽 배송을 하던 기사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한 연락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배송을 못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쿠팡 기사다.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악천우 속에서도 쿠팡으로부터 한 번도 작업중지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비가 너무 많이 오니 배송시간을 1, 2시간만 늦춰달라고 해도 무시당했다고 했다.
택배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 회사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사를 간접고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철 작가의 <까대기>와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 택배 회사가 어떻게 법망을 피해 노동자를 착취하는지 잘 나와 있다.
스스로 근무시간과 업무량을 정할 수 없는 근무환경을 개인사업이라고 할 수 없다. 고 정슬기씨가 쿠팡 CLS 직원에게 직접 지시를 받은 카톡내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쿠팡 CLS 직원 : 달려주십쇼 ㅠ
고 정슬기 :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누군가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힘들면 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말이다.
나는 학원 강사일을 오래 했다. 그중 2005년부터 2006년에는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수업을 했다. 방문 과외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수능 시험이 임박하면 새벽 1시에 수업을 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하기 어려웠다. 고등부 수업은 야자가 끝나고 10시 이후에 있었기 때문에 강사이력을 쌓으려면 밤과 새벽에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밤에 일을 하니까 퇴근 후에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학원 강사 온라인모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스터디 소모임을 신청했는데 모임 시간이 새벽 1시였다. 회원들은 2시간 스터디를 하고 새벽 3시에 밥과 술을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 혼자 수업하는 교습소를 운영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학원 시장이 호황일 때라 교습소 원장들은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낮밤이 바뀐 생활을 오래 해온 그분들은 한 눈에도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였다. 삼십 대인데도 안색이 어둡고 다크서클에다 전체적으로 몸이 부어 있었다.
2007년에 11시 이후로 학원 수업을 금지하는 학원 심야시간제한법이 생겼다. 이 법이 시행되자 학원장들은 사업 방해라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는 학생의 기본권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법이 적용되는 초기에는 기존의 이해관계가 엇갈려서 갈등을 일으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은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24시간, 365일 영업하는 것이 당연했던 대형마트가 자정에 폐점하고 의무휴업을 시행해서 마트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이 일부 개선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학원수업시간제한이 학생들은 물론 학원장과 강사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을 거다.
기사님이 보낸 문자 중에 '꼭'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고구마를 삶아서 종이봉투에 담고, 사과 하나와 커피를 반품할 물건 옆에 두었다. 그리고 메모를 써서 종이봉투에 붙였다.
"기사님 고구마랑 커피 드세요. 고맙습니다."
나는 스티로폼 박스와 아이스팩 때문에 가능하면 신선식품은 온라인구매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냉동블루베리가 마트보다 훨씬 싸게 나왔을 때 망설이다가 온라인주문을 했다.
1인가구인 나도 이런 형편이니 4인가족이나 바쁜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온라인 구매를 많이 할 것 같다. 다만 늘어나는 택배만큼 택배기사의 노동여건을 개선하는 법을 마련하고, 마트와 학원영업시간 규제처럼 정부가 강경하게 이행했으면 한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고구마를 삶아서 택배기사님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어쩌면 마음보다 여건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조금만 덜 바쁘다면 그래서 나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더불어 다른 사람의 건강에도 마음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사 검색을 하다가 쿠팡 규탄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 시위연설을 들었다. 연설 말미에 "천천히 와도 됩니다"라는 말에 내 목소리로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