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에 사는 강수돌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두고 "설명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라며 "이태원 참사가 그렇다. 지금은 처음부터 마지막 결과에 이르기까지 총괄적 책임을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게 없다"라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23일 마산YMCA 105회 아침논단에서 "대통령 거부권과 책임정치"에 대해 강의하며, 현정부를 현실부정과 거짓말을 예사로 반복하는 '중독조직'이라 평가하고, 회피와 부인이 아닌 직시와 응답의 책임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보면, 이승만 45회, 전두환‧김영삼‧김대중‧문재인 0회, 박정희 5회, 노태우 7회, 노무현 6회, 이명박 1회, 박근혜 2회였고, 윤석열 대통령은 14회다.
이를 언급한 강수돌 교수는 "이승만의 45회는 12년이라는 긴 기간이고, 윤석열의 14회는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행사한 것"이라며 "이승만은 연평균 3.7회였고, 윤석열은 연평균 7회로 거부권 챔피언이다"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12월 29일 대선후보 때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라고 했던 발언을 거론하기도 했다.
'거부권의 정당한 사유'에 대해, 강 교수는 "명시적 규정은 없고, 헌법학자들은 '헌법 위반 되는 법률'이거나 '집행 불가능성', '국익에 반하는 법률', '정부에 부당 압력 행사', '예산 부족과 재정 부담', '대통령 정책과 상충 법률'의 6가지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나라 경영의 기본철학이 '경세제민(살림살이 보살핌)', '국리민복', '견리사의(이익보다 사회 정의)', '견위수명(목숨 걸고 나라 구하기)'이라고 제시한 강 교수는 "대개 전쟁이 나면 보통사람들의 자녀들이 나가고 부자이거나 권력자의 자녀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를 기억한 강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편지를 썼다. 감옥에서 나오려고 하거나 사형을 면하게 하는 것은 욕되게 하는 것이다 라고. 사형을 당하는 게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어머니가 과연 아들에 대한 정이 없어서 그렇게 말을 했겠느냐"라며 "이런 정신을 가르치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이다. 대통령한테 이런 말을 하면 뭐라고 말할까"라고 했다.
또 강 교수는 "어렸을 때 사람들이 수출자유지역에 가서 일했다. 그때 어른들은 '수출자유'라 하지 않고 '자유수출'에 일하러 간다고 하더라. 거기서는 자유가 수출되어 자유가 없는 구역이었던 것이다. 노동권을 반납하고 무권리 노동을 하고,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공해산업이거나 저임금으로 할 수 없는 제품을 생산했던 것"이라며 "자본의 잉여가치를 늘리는 자기증식 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게 자유수출이다"라고 했다.
"판검사가 나오면 훌륭한 학교냐"
검사들에 대해, 강 교수는 "법기술자로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선서할 때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고 하는 자세는 어느 구석에도 찾을 수 없다"라며 "마산고 다닐 때 선생님들이 조회시간에 훌륭한 선배들로부터 좋은 말을 해주었다고 했다. 지금 시각으로 바라보니까 엉터리가 많았다. 그 속에는 범죄자도 많았다. 그래서 너무 서글프다. 학교 앞에 김기춘(마산중 졸, 전 대통령 비서실장)씨 이름에 '경축'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던 적이 있었는데 부끄러웠다"라고 했다.
이어 "소위 명문학교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식을 제대로 가르치고, 인류사회를 위해 작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물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서울대 법대 나오고, 판검사가 나오면 훌륭한 학교냐"라고 덧붙였다.
'낙수효과'와 관련해, 강 교수는 "나라 경제가 잘 되려면 대기업이 잘 되어야 한다고 하는 논리다. 위에 물이 고여 넘쳐서 아래 사람들에게 다 혜택이 흘러간다는 말이다"라며 "맞지 않는 논리다. 그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위의 그릇이 너무 넓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밤샘을 해서 99%를 채워놓으면 다른 그릇으로 만들어 다시 채워라고 한다. 또 아들, 딸, 며느리를 위해 문어발식 확장을 한다. 나머지 하나가 뒤로 구멍을 뚫어 빼내고 있는 것이다. 뒤로 빼어낸 물로 국회의원과 판검사들한테 나눠준다. 자기들 끼리 골고루 나눠 먹기에 아래로 흘러갈 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낙수효과 이론은 엉터리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경쟁을 시킬 게 아니라 자원을 골고루 배분하고 차이를 줄이면 되는 것"이라며 "그러면 엉터리 정치꼼수를 할 필요가 없다. 책임정치는 아이들이 성장할 때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교평준화 개념을 도입해서, 평등교육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끼가 있는 부분을 열심히 하도록 하며, 학교간 차별을 없애야 하는 것이고, 시선도 달라져야 하며, 나중에 직업까지 이어져야 수평‧평등 사회가 된다"라고 했다.
행복을 강조한 강 교수는 "우리가 어릴 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배웠다. 어디 정육점을 지나는데 간판에 '오늘 먹을 고기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써 놓았더라"라며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농업은 경제분야에서 가장 중요하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최첨단 과학기술 시대라고 해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 모든 것의 기본은 농사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니까 자유를 수출하는 공단에 가서 일하게 된다"라고 했다.
그는 "식량자급률을 보면 우리가 위험하다. 동물 식량까지 포함하면 통계상으로 우리나라는 자급률이 19%이다. 우리는 쌀이 거의 100% 자급인데 쌀을 빼고 나면 5% 이하로 내려간다"라며 "선진국은 식량 자급률이 100% 넘거나 육박하는 나라들이 많다"라고 했다.
이어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를 많이 파는 대신에 식량자급률은 아주 저조하다. 기후위기나 전쟁 같은 비상사태를 생각하면 자급률이 떨어졌을 때 호주머니에 돈은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팔지 않으면 먹을 게 없어지는 것이다. 논밭을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만드는 일은 하루 아침에 안된다.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생태여성주의(에코페미니즘)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다"라고 한 강 교수는 "각 나라마다 식량자급률을 70% 이상 올리고 나머지는 이웃사촌 개념으로 교류하는 것이 자율성을 높이면서 평화로운 교류를 할 때 세계 평화가 오는 것"이라고 했다.
"거짓을 이기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다"
'책임(responsibility 정치'를 설명한 강 교수는 "질문할 기회를 없애버리는 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질문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데 엉뚱한 대답을 잘하는 정치인이 있다. 드라마 <돌풍>에 나오는 명대사가 생각난다. 그것은 '거짓을 이기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이어 "설명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사태가 일어났다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앞뒤 설명이 안된다. 온전한 총괄적 책임은 과정과 결론에 대해 총괄적 책임을 져야 제대로 된 책임정치인데, 우리는 설명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가 그렇다. 지금은 처음부터 마지막 결과에 이르기까지 총괄적 책임을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게 없다"라고 덧붙였다.
함석헌(1901~1989년) 선생이 했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말을 거론한 강 교수는 "씨알, 백성들이 깨어나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한 것에서 탈공부하고 새로운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가 책 <악의 평범성>에서 했던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라고 했던 말을 거론한 강 교수는 "평소에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더라도 경계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악인으로 바뀔 수 있다"라고 했다.
'변화 과정과 사회연대'를 강조한 강 교수는 "우리는 지금까지 주입식 경쟁교육을 해왔다. 문제 하나를 더 맞히면 훌륭한 아이처럼 평가 받아 왔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지금 정치인들이 보여 준다"라며 "마을 공동체가 모여 인문학 공부를 하듯 더불어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나부터 인문학으로 출발해야 한다. 건전한 댓글을 통해 의견이 모아지다 보면 여론이 된다. 그러면 언론이 주목하고, 정치‧행정가들이 관심을 보여 법과 제도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비폭력적인 변화도 가능하다. 비폭력 평화주의운동이 옳다. (중략)참된 행복은 중독에서 벗어나 즐겁게 일하고 더불어 소박하게 사는 것이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