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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억이 없다. 우리집은 샐러리맨 남편 월급으로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4인 가정이다. 이런 집에 1억 있기는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랜선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들 그정도는 가뿐히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랜선에 오래 머물면 남는 건 자괴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성 랜선 방황증을 끊지 못하던 어느날, '운동으로 1억 벌기'라는 제목을 봤다. 어그로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내 엄지손가락은 본문을 클릭했다. 

50대 이후 근육 1kg는 1,300만 원~1,700만 원 정도 가치를 갖기 때문에 근육 7kg을 만들면 1억을 버는 일이다, 라는 논리다.
 
 근육 7kg은커녕 700g도 어렵다
 근육 7kg은커녕 700g도 어렵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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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쉽지, 근력 운동을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순수 근육만 7kg를 늘리는 건 정말 어렵다. 역시, 내 인생에 1억은 없는 건가 싶은데 알고리즘이 그런 내게 용기를 내라며 어떤 의사의 인터뷰로 이끈다. 

그 의사는 나이 들수록 코어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 아는 얘기인데 그 방법이 신박하다. 아빠다리, 혹은 양반다리로 불리다가 지금은 나비다리가 된 그 자세가 코어를 약하게 한다고 한다.

나비다리야말로 한국인에게 가장 편한 자세가 아니었던가. 멀쩡한 소파를 두고 바닥에 나비다리로 앉아 소파 다리에 등을 기대는 게 한국인 기본자세다.

좌식 생활이 무릎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나비다리 역시 그렇다라는 말은 얼핏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게 코어랑 연결된다는 말은 처음이어서 더 집중했다. 

나비다리는 허벅지 안쪽근육(내전근)을 약하게 만드는 자세인데 내전근은 코어와 밀접하다. 내전근이 약해지면 코어까지 약해진다고 한다.
 
 코어가 약한 채로 근력운동을 하면 다칠 수도 있다던데
 코어가 약한 채로 근력운동을 하면 다칠 수도 있다던데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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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식탁의자에서 나비다리를 한 채 밥을 먹었다. 나름 관리한다고 등받이에 꼬리뼈가 닿을 만큼 깊숙하게 앉아서 등을 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비다리는 무릎 앞 관절에 체중 7배의 하중을 준다고 한다. 밥을 천천히 먹은 날 무릎이 유난히 뚝뚝거렸던 이유가 다 여기에 있었다. 

수영 강습 중 평형에서 발차기 후 몸을 뻗어서 글라이딩을 꼭 하라고 한다. 나는 글라이딩 할 때 몸이 기우뚱한다. 강사는 코어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접영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것도 코어가 약해서라고 했다. 나는 수영을 좋아하는데 수영은 나를 안 좋아해서 코어는 애증의 단어가 됐다. 그런데 내가 나서서 코어를 약화시키고 있었다. 

코어 강화를 위한 방법이 또 있다. 걸을 때 배꼽을 등에 붙인다는 느낌을 가질 것, 항문에 힘을 줄 것, 귀와 어깨가 최대한 멀리 있다고 생각할 것, 이렇게 세 가지다.

2주 동안 걸을 때마다 이걸 생각했다. 해보니 중요한 발견이 있었다. 핸드폰을 보면서 걸으면 정확하게 이 세 가지를 반대로 하게 된다. 결국 2주 동안 도보 이동할 때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그게 뭐 별 거인가 싶었는데 매우 별 거였다. 첫 사흘간은 뭔가 빼놓고 온 것처럼 허전했다. 그 다음 사흘은 길에 다니는 사람들의 90프로가 걸으면서 핸폰에 코를 박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근육 7kg로 1억 가치를 창출하는 건 아직 자신없다. 나비다리를 버리고, 걸을 때 핸드폰을 버려서 코어를 지키는 건 해볼 만하다. 길가는 사람 90프로가 안 지키는 걸 나 혼자 지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가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몸과 마음에 작은 변화들이 스며들었다. 도로 위의 바쁜 사람들 속에서 나만이 홀로 비밀을 아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작은 변화를 누군가 알아차리게 될지, 혹은 그저 나만의 고요한 혁명으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한 습관 하나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깊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더 깊이, 더 넓게, 더 생생하게 채워진다. 1억은 우습게 번다는 랜선 속 이야기도 '그러시든지요' 하고 그냥 넘길 수 있는 단단함이 생기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SNS에도 올라갑니다.


#근력운동#코어#1억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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