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
주부로 산 지 16년이 훌쩍 넘었지만 식구들을 위한 식사 준비는 여전히 어렵다. 외식이 잦은 배우자의 건강 관리도 걱정이지만 한창 크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균형 잡힌 식사도 고민 중 하나다. 마음 같아서는 골고루 먹이고 싶은데 아이들은 가지가 너무 보라색이라 예뻐서 먹을 수가 없다, 고등어는 껍질이 너무 반짝인다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편식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아이들의 편식도 많이 줄었다. 평소에는 먹지 않는 반찬도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이 먹으면 호기심에 먹기도 하고, 우연히 집어든 반찬이 맛있어서 계속 먹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교 식단표를 살펴보니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 식자재를 선호하고 우리 농산물 우선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환경을 위해 반찬을 남기지 않고 건강을 위해 골고루 먹자는 말에 충실한 식단이었다.
함께 장보고, 만들고... 우리에게 찾아온 변화
가정에서도 학교 급식처럼 하면 좋겠지만 영양사, 조리사, 배식담당이 따로 없는 집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방학이면 급식이 사라지니 혼자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 자연스럽게 외식이나 인스턴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냉동식품이나 저장 반찬들 위주로 꺼내다 보니 아이들이 질려서 잘 안 먹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를 시도했다. 기준은 학교 식단표였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아 시간적으로 여유롭다는 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장을 함께 보며 제철 과채류와 물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먹고 싶은 것을 직접 고르면서 식자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었다. 학기 중에는 주말을 이용했고, 방학에는 주중 오전을 이용해 인근 협동조합이나 시장, 농협을 방문했다. 학교처럼 우리 농산물을 제일 먼저 살펴보고 수입품은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는 방향으로 하자고 아이들에게 권유했다.
학교처럼 친환경, 유기농 식자재 구입을 우선으로 했다. 아이들에게 아무 농산품이나 구입하여 베이킹소다나 식초로 표면을 깨끗이 닦으면 겉에 묻은 농약은 사라질지 몰라도 식물이 자라며 흡수한 농약성분은 우리가 먹는 부분에 그대로 남아있어서 몸에 좋을 것이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급변한 기후는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재배한 농작물을 먹어야 지구와 사람 모두에게 이롭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입해 남김없이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친환경 식품을 구입하면 세척 과정이 단순해진다. 물이나 소금으로만 닦아도 큰 문제가 없어서 아이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과일 씻기를 포함한 요리의 전 과정을 즐거워했다. 산딸기 같은 것들은 씻다가 집어먹는 것이 반이었다. 처음에는 쌀과 과일을 씻는 정도였지만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삶은 계란을 까던 아이들은 이제 계란프라이나 계란말이도 한다. 당근과 양배추를 썰어 볶음밥을 하고, 연어를 잘라 덮밥이나 초밥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려니 냉장고 정리도 신경이 쓰였다.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신선식품을 종류별로 투명한 용기에 담아 정리했다. 아이들은 조리 속도가 느리고 중간에 딴짓을 많이 하기 때문에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리, 법랑, 유기 용기에 음식을 담아 냉장보관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비닐이나 플라스틱 사용량이 줄었다.
식료품 후면의 원재료와 영양정보를 보며 우리가 즐겨 먹는 것들이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봤다. 최근에 작은 아이가 컵라면의 염분 그래프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컵라면들의 염분이 6,7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고민하다 염분이 4인 컵라면을 구입한 후 도자기 용기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 정량보다 물을 많이 넣어 먹었다.
싸고 흔한 식품에 존재하는 수많은 합성물질들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사람 몸에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은 이제 안다. 과자, 라면 같은 인스턴트를 신선식품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에서 인스턴트를 한 번에 끊을 순 없지만 건강을 위해 먹는 양을 줄이고 천연 식품 섭취를 늘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국영수사과'말고도 꾸준히 해야 할 일
아무리 싫어하는 재료라도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라면 최소한 한 번은 먹는다. 마, 가지, 아스파라거스를 그렇게 시작했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익숙한 식자재 가격이 비싸지면 가장 흔하고 저렴한 나물을 사서 나물밥을 지어먹었다. 밤이 흔할 땐 밤밥, 저렴한 감자로는 감자밥을 했다. 봄에는 화전을 하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강된장에 비벼 먹는 평범한 한 끼에 감사하며 밥풀 하나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함께 장을 보고, 조리하고, 식사하고, 정리를 나누는 날이면 집안일의 고단함도 줄어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블록마다 편의점이 존재한다. 학원이 많은 곳에는 특별히 더 많은 편의점과 간식 가게들이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가면 편의점 앞 벤치나 인도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라면을 먹으며 숙제를 하거나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유튜브 시청을 하며 학원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학원을 마치고 다음 학원을 가기 전에 집에 들러 식사할 시간이 없으니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하러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청소년인 첫째, 어린이인 둘째 아이가 지금 섭취하는 음식물은 성인이 된 후의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지구와 사람에 이로운 식사보다는 쓰레기가 나오더라도 간편하고 자극적인 식사를 즐길 가능성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식생활 없이는 미래의 건강한 삶도 유지하기 어렵다. 미성년자들이 제대로 식사할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부모와 기관의 몫이라 볼 수 있다. 적어도 초등학교 무상급식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아침과 저녁은 부모가 지켜줘야 할 부분이다.
신선한 과채류 섭취를 포함한 건강한 식생활은 비만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의 발현을 낮추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함께 오이채를 썰고, 고구마순 껍질을 까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사춘기 아이들과의 단절을 예방하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아이들에겐 '국영수사과'말고도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