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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해외 취업 실패했던 이유, 영어 아니라 이거였구나 https://omn.kr/29luu)에서 이어집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브랜드 파이낸스 (Brand Finance) 등 글로벌 평가에 따르면, 호주 도시 시드니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지난 5월,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의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당시 나는 장장 2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친 참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풍경이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잊게 만들 만큼 눈물나게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시드니의 아름다운 항구를 거닐었을 뿐인데도, 가슴이 벅차오르며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한국과는 다르게 흐르는 듯한 시드니의 시간
 
 호주를 대표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풍경, 지난 5월 19일 ~ 6월 2일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호주를 대표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풍경, 지난 5월 19일 ~ 6월 2일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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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로서 본 시드니는 약간 과장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여기서 꼭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는 시드니 항구를 따라 달리기나 산책을 할 수 있는 보도가 잘 마련되어 있고, 항구 주변 식당들도 즐비했지만 어지럽지는 않았다. 

러닝화에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항구 주변을 뛰는 현지인과 관광객은 한데 섞여, 각자의 목적에 맞게 아름다운 도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눈에 띈 것은 그곳에서 일하며 사는 현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바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여유가 넘쳤고,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늘 시간에 쫓기며 피곤에 절어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과 달리, 똑같이 매일 돈 벌고 일하며 살 텐데... 그럼에도 시드니 사람들에게선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호주 시드니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근쳐에서 삼삼오오 모여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호주 시드니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근쳐에서 삼삼오오 모여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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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시간은, 빠르고 효율적으로만 돌아가는 한국 사회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시드니에 다녀온 친구들은 시드니가 런던이나 파리처럼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적 명소가 많은 곳은 아니라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기는 어렵지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해져 치유되는 기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해 직접 내 눈으로 보니, 여길 먼저 다녀간 친구들 말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시드니 위원회(The Committee of Sydney) 조사에 따르면, 시드니 거주자 중 81%가 '내 삶에 만족한다'라고 답했다. 이는 다른 글로벌 메가 시티인 런던(76%)과 뉴욕(75%), 토론토(64%)보다 높다.

서두에 언급한 여러 글로벌 평가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시드니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인 이유로 4계절 내내 온화하거나 따뜻한 날씨, 깨끗한 자연환경, 다문화, 가깝고 아름다운 해변, 뛰어난 공공 의료 시스템과 교육 등을 꼽았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주택 공급 문제로 거주 비용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시드니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자주 꼽히는 건 왜일까. 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까이서 누릴 수 있는 깨끗한 자연환경, 좋은 날씨, 뛰어난 교육과 의료 시스템, 그에 더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 때문이 아닐까. 이 모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들이다. 

'당신 요새 돈 얘기만 해'

영국인 남편은 내게, 내가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그 즈음엔 집에서 오로지 '돈'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란 나는 최근 몇 년간의 대화를 돌이켜보았다.

왜일까. 한국 친구들과 만나면 우리가 나누는 얘기는 주로 재테크, 부동산, 아이 양육 비용, 연봉 상승 등 뿐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대화는 나도 모르게 내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했고, 누군가로부터 재테크를 배우거나 내가 받는 연봉을 올려야만 한다는 조바심으로 이어졌다.  

물론 경제적 지식과 이해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돈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선 자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유튜브 영상이 있다. 330만 구독자를 가진 경제 유튜버 슈카의 영상이다. 슈카는 금융 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뉴스, 주식 투자, 부동산, 가상화폐 등 다양한 경제 이슈를 쉽게 풀어 설명해 나도 즐겨 보는 채널이다.

그는 최근 국내 한 방송사와 함께 일본 저출산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을 다녀오면서, 그 여정 중 일본 정부 관료, 청년, 대기업 임원, 부부, 자영업자 등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한 후일담을 나눴다.
     
 슈카가 그의 유튜브 영상 '돈이 최고야'라는 영상에서 일본에 다녀온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유튜브 화면영상 갈무리.
 슈카가 그의 유튜브 영상 '돈이 최고야'라는 영상에서 일본에 다녀온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유튜브 화면영상 갈무리.
ⓒ 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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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는 일본의 오랜 저성장과 저출산 문제로 사람들이 비관적일 거라 생각했으나, 예상과 다르게 만난 사람들이 보여준 심적인 여유로움에 놀랐다고 한다. 특히 그는 일, 육아, 결혼 등에 대해 일본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모든 면과 모든 것을 돈으로만 치환해 바라보는 자기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90년 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에게 "대기업 들어가면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식당을 운영하냐"라 묻거나, 육아를 위해 정규직을 그만둔 여성에게 "수입이 줄거나 경력이 단절되는데, 힘들지 않냐"라고 질문하는 등 모습이었단다. 이는 삶의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단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통계청의 '우리나라 청소년 직업 선택 요인' 결과를 보면, 지난 10년 새 우리 사회가 물질 중심으로 변한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2013년에는 청소년이 직업을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적성(38.1%)이었지만, 2023년에는 수입(35.7%)이 최우선, 적성(30.6%)이 그 뒤를 이었다.

직업 선택에 있어 수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3년과 비교하면 10.2% 포인트 증가한 반면 적성·흥미는 7.5% 포인트 감소했단다. 장래희망에 순수하게 내가 되고 싶은 것을 꿈꾸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돈 얘기만 하고 돈 생각만 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전지구적인 행복의 나침반, 이것...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 꼽았다

2021년 미국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이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한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충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2021년 미국의 씽크탱크 퓨 리서치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에 대한 조사 결과. 17개 국 중 한국(밑에서 두번째)만 유일하게 '물질적 충족(material well being)'을 1순위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미국의 씽크탱크 퓨 리서치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에 대한 조사 결과. 17개 국 중 한국(밑에서 두번째)만 유일하게 '물질적 충족(material well being)'을 1순위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 Pew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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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충족은 가족 부양, 빚 없는 상태,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 등을 포함한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 중 '의미 있는 관계'가 우리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것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그 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38년부터 85년 간 진행된 하버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부, 명예, 학벌'이 아닌 '관계'에 있다고 한다(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 참고). 

여기 저기에서 '경제적 자유', '돈 벌어 조기 은퇴(파이어족)' 등을 외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물질주의가 갈수록 팽배해지면서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는 것 같다.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고독사, 고립 청년,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외롭고 고독해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한편, 부업, 투자, 부동산 등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사람들의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은 더 커져간다. 

나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물질적인 충족을 위해서라며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는 건 아닌지, 또 돈만큼이나 혹은 돈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삶의 가치들을 나도 모르게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호주 시드니와 일본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게 됐다. 사는 곳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인간으로서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 돈이나 소비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나눈 대화, 즐거웠던 독서나 여행,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찰이 담긴 대화들이 조금씩 피어나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enerdoheezer)에 최근 게재된 글을 보완해 작성했습니다.


#호주#일본#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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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까지 여권도 없던 극한의 모범생에서 4개국 거주, 36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영국인 남편과 함께 현재 대만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외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여행과 질문만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글을 통해 해외에서 배운 점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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