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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는 소설의 결말과 반전,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정말 무덥다. 원래는 주말마다 여섯 살 쌍둥이 손자와 아파트 옆에 있는 근린공원에 가는데 이번 주에는 가지 못했다. 대신 가까운 도서관에 다녀왔다. 도서관에 어린이 열람실이 따로 있어서 아이들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도서관 열람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무더워서 도서관으로 피서를 온 사람이 많은지 일반 열람실이 만원이다.(왼쪽은 어린이 열람실, 오른쪽은 일반 열람실)
▲ 도서관 열람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무더워서 도서관으로 피서를 온 사람이 많은지 일반 열람실이 만원이다.(왼쪽은 어린이 열람실, 오른쪽은 일반 열람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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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책을 읽는 동안 2층에 있는 일반 열람실로 올라갔는데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요즘 사람들이 멀리 가지도 않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피서 간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신간 도서 코너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어서 꺼냈다. 순전히 제목에 끌리게 되었다. <기적을 담는 카메라>라니, 제목이 눈에 띄고 그 내용이 궁금해져 대출하게 됐다.
   
 
 '기적을 담는 카메라' 책표지, 요시쓰키 세이 지음, 김양희 옮김
 '기적을 담는 카메라' 책표지, 요시쓰키 세이 지음, 김양희 옮김
ⓒ 모모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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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적을 믿으시나요?"라는 질문을 누가 내게 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기적을 믿게 되었다고 답하겠다. 책은 어릴 적 백혈병을 알았던 아라타가 요양차 외가댁이 있는 해변 도시 우바라에서 소녀 엘라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엘라는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오래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런데 엘라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라타 주변에서 차례차례 신기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화상을 입은 할머니 상처가 사라지고, 넘어진 아이의 무릎이 치료된다든지, 암 환자인 민박집 손님의 병이 씻은 듯 낫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소설에서는 이후 엘라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진다. 사실 엘라는 기적을 일으키는 진짜 천사였던 것이다.

'기적을 담는 카메라'가 정말 있다면

소설은 지루하지 않아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글을 읽으며 우바라 바다가 그려져서 내가 꼭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소설에는 판타지 요소가 들어있지만, 현실에서도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엘라를 만난다면 무릎이 아파 고생하는 우리 남편 무릎을 기적을 담는 카메라로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소설 속의 말들은 생명력 넘치게 살아서 기적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아라타는 확실하게 살아있잖아. 살아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와."
-p.78

"힘내! 아라타! 너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야!"
-p.79

"신이 정말로 하는 일은 듣는 거야. 소원에 다가가는 일, 그리고 때때로 기적을 일으키지."
-p.84
 
주인공 아라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백혈병 재발로 포기했던 그 꿈이 결국 엘라의 말처럼 현실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의사가 된 아라타가 입원해 있는 여덟 살 소아암 소녀와 나눈 이야기도 마음에 오래 남는다.
 
"선생님은 신을 믿어요? 하지만 신은 매우 바쁘니까 나까지는 못 챙겨주겠지요. 세상 사람들이 날마다 신에게 소원을 빌 거 아니에요. 그래서 친구가 퇴원하면 '저 애는 신에게 목소리가 닿았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굉장히 운이 좋은 친구라고요."
-p.106
 
소설의 말미, 소녀는 사이토(아라타) 선생님께 편지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간다. 책을 읽으며 만약 엘라가 있었으면 기적이 일어났을 텐데 싶어 아쉬웠다.

소설 끝, 엘라에게도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엘라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무조건 기적이 일어나는 듯 전개됐는데 실은 반전이 있었다.

사진이 찍힌 사람의 병이 사라지는 대신 그 병이 엘라에게 돌아오는 거다. 즉 엘라가 기적을 일으켜서 고쳤다고 생각했던 병은, 엘라가 대신 떠안은 것에 불과했다. 결국 엘라도 병을 이기지 못하고 아라타 곁을 떠나 버렸다.

엘라가 자신이 시력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녹내장으로 곧 시력을 잃게 될 소년을 카메라로 찍고, 아라타와 우바라 바닷가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며 '예쁘다'를 반복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곧 눈이 안 보일 거라서 별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이다.

엘라가 떠나고, 엘라의 말대로 아라타는 의사가 되었다. 아라타는 엘라의 흔적을 찾다가, 자신이 열일곱 살 백혈병이 재발했을 때 이미 엘라를 만났고, 그때 사진을 찍어 기적을 만들어둔 아이 에미가 엘라와 동일인 이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처럼 '이 세상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기적이 넘쳐나는 곳'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어딘가에서 엘라가 기적을 담은 카메라를 들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기적을 베풀어 줄 것만 같다.

소설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작가는 어떻게 딱 알맞은 온도와 무게로 이야기를 구성했는지 놀랍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도 좋았다. 엘라가 남기고 간 카메라는 아라타 손에 들어오고 아라타는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아무리 슬픈 사람이라도 사진에 찍히면 웃는 얼굴이 되어 행복해진다.

요즘 뉴스를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 사고가 넘쳐난다. 뉴스를 보기가 겁날 정도다. 이런 암울한 시기에 <기적을 담는 카메라> 소설을 읽으며 잠시라도 기적을 꿈꿔보면 어떨까. 무더운 여름의 마지막,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기적을 담는 카메라

요시쓰키 세이 (지은이), 김양희 (옮긴이), 모모(2024)


#기적을담는카메라#오시쓰키세이#김양희#기적#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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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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