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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속초에서 친구들 모임이 가졌다. 속초는 정말 오랜만에 들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설악동 야영장을 즐겨 찾았는데 첫째인 아들이 중학교 입학한 다음엔 야영을 접었다. 원주와 속초는 같은 강원도지만 대각선 끝에 있어서 오가는 거리가 제법 멀다. 2016년에 속초까지 고속도로가 이어졌으나 부지런히 달려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땐 강릉이나 주문진을 찾고 가끔 양양을 찾은 까닭이다.

이제는 친구들도 아이들이 다 자라서 부부끼리 함께 보기로 했다. 7월 말 8월 초는 한창 휴가철이라 고속도로가 매우 붐빈다. 주말이 아니더라도 애매한 시각에 출발하면 길에서 시간을 버리고 약속된 시각에 도착하기 어려울 듯해서 아침 일찍 떠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속초까지 갔으니 모임이 끝나면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동해안 자전거길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지난번에 양양 휴휴암과 강릉 경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크게 만족했기 때문이다.

여섯 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평소처럼 눈을 뜨니 이미 여섯 시가 훌쩍 넘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일곱 시쯤 출발했는데 다행히 수도권에서 출발한 이들이 원주까지 오기엔 이른 시각이라 영동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먼저 영랑호 둘레를 돌기로 하였다. 목적지는 영랑호 윗길 주차장으로 잡았다. 주차장은 생각보다 아주 넓다.

여행하기 좋은 길을 제주는 올레로 원주는 둘레길로 부르듯이 속초는 사잇길로 부른다. 영랑호길은 그 가운데 제1길인데 듣던 대로 자전거 타기에 참 좋다. 무엇보다 사람과 자전거 그리고 차가 다니는 길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 걷는 사람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일방통행하는 자동차도 대부분 매우 천천히 다닌다. 자전거길이 눈에 띄는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을 때 인도가 아닌 자전거길로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자전거 타기 곤란할 때가 잦다.

영랑호 둘레길은 약 7.6km로 20분쯤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두 바퀴 돌고 중간에 있는 농원에 들러 작은 수국 축제도 즐겼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4인용이나 2인용 자전거를 빌려서 탈 수도 있다. 고운 황토로 말랑말랑하게 만든 길도 있어서 맨발로 걷기를 즐길 수도 있다. 호수를 가로질러 띄워 놓은 다리에서 보이는 풍경도 참 좋은데 환경 보호를 위해 조만간 다리를 철거할 예정이라니 서둘러 가보아야 한다.
  
 자전거 타면서 보는 영랑호
 자전거 타면서 보는 영랑호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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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랑호 부교
 영랑호 부교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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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모임을 마치고 여름 햇살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려 오후 5시부터 속초 영금정에서 고성 천학정까지 자전거를 탔다. 처음엔 고성 청간정까지 다녀오려고 했는데 안내판에 있는 천학정 사진이 매우 멋져서 조금 더 타기로 했다. 거리는 4km라 만만하게 보고 나섰는데 중간에 가파른 고개도 있고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아내처럼 모르는 길을 달려본 경험이 많지 않다면 자전거 타기 쉽지 않은 구간이 있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곳이라 전쟁을 대비한 낙석 장애물을 설치한 고개도 있다. 표지판을 보니 이 구간의 이름은 평화누리 자전거길이다.
   
 전쟁이 나면 전차의 이동을 막을 낙석 장애물
 전쟁이 나면 전차의 이동을 막을 낙석 장애물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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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간정은 정철의 관동별곡에 등장한다. 처음 만들어진 때를 알 수 없으나 1520년 중수되었다는 기록으로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갑신정변 때 소실되어 1920년 복원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되어 최규하 대통령에 의해 1981년 복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판에 적힌 대통령 최규하
 현판에 적힌 대통령 최규하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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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대통령은 원주 출신인데 원주천을 건너는 다리를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아주 잠깐 대통령 자리에 있었는데 청간정 복원도 했다니 조금 놀랍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청간정에서 내려다본 풍경
 청간정에서 내려다본 풍경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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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포항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고성은 확실히 속초보다 찾는 사람이 적다. 중간에 아야진 해수욕장은 속초 해수욕장과 달리 텅텅 비어 있다. 심지어 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애완견과 함께 오붓하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워낙 파도가 잔잔한 날이라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권장할 일은 아닌 듯하다. 속초는 젊음을 즐기는 연인이나 신혼부부에게 어울리고 고성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하는 가족 모임이 어울리는 느낌이다.

천학정은 청간정보다 규모도 작고 만듦새도 떨어져서 조금 실망스럽다. 하지만 안내판에 있는 일출 사진을 보면 참으로 멋지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워낙 구석진 곳이라 동네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기서 일출을 본 사람은 매우 드물 듯하다. 정자는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기암괴석이 여러 가지 모양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천학정은 해돋이가 좋다고 한다
 천학정은 해돋이가 좋다고 한다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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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보다 고성은 더 북쪽에 있으니 속초보다 오기 더 힘들다. 청간정이나 천학정은 딱 한 번 왔던 듯하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속초 영금정에서 고성 천학정까지 거리는 13km쯤이다. 중간에 사진 찍고 구경도 하느라 갔다가 되돌아오는 데 두 시간 반쯤 걸렸다. 동해안 자전거길은 경치가 좋은 곳이 많아서 내내 자전거만 타기 어렵다.

아무래도 자전거 타기엔 봄이나 가을이 좋지만, 바다는 언제나 바람을 보내주기 때문에 준비만 잘하면 여름에도 탈 만하다. 안타깝게도 속초 시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차를 피하다 넘어져서 무릎을 다쳐서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가을에 아내와 함께 양양 휴휴암에서 속초 영금정까지 달려서 강릉 경포부터 고성 천학정까지 구간을 채우고 싶다.

#자전거#속초#고성#청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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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겐 편안함을, 친구에게는 믿음을, 젊은이에겐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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